산문

윤석산교수의 '밥 나이 잠 나이' 시집 리뷰 /김주혜

주혜1 2009. 1. 20. 18:27

윤석산 시인의 [밥 나이, 잠 나이]리뷰

 

김 주 혜

 

 

‘내가 오늘 쓰는 나의 시가 문학사 속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무슨무슨 시’가 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시를 쓰는 재미를 누리지 못한다면, 나는 오늘이라도 시를 버릴 것이다. 아무런 미련 없이’

 

윤석산 교수의 여섯 번째 시집 [밥 나이, 잠 나이], <시작노트> 말미에 밝힌 이 말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참된 시인의 일갈이 아닌가. 윤시인은 그런 분이다. 윤석산 시인을 처음 뵙게 된 것이 1990년, 내가 시단에 첫발을 막 내디뎠을 무렵, 한 문학행사 자리였으니 근 20년 가까이 된다. 그러나 ‘시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을 읽어 내려가면서 윤시인과의 인연이 그 훨씬 전부터였음을 알고는 더욱 반가웠다. 윤교수가 약수동에서 자랄 무렵, 나는 을지로 5가에서 자랐으며, 경동고교 시절 성신여고 뒷산에 올라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시를 쓸 때는, 그 운동장 어디쯤에서 뛰놀고 있는 여학생 중에 필경 내가 있었을 것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윤교수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여 그를 두 번 만나면 벌써 십년지기나 된 듯 자칫 허물없이 대할까 저어될 정도다. 교수이면서 신춘문예에 두 번씩(중앙일보, 경향신문)이나 당선되었고, 당시 시협 사무국장이었으니 햇병아리 시인인 나의 눈에는 아득한 존재일 터였다. 그런데도 그런 권위의식 따윈 내색조차 하지 않고 늘 정답게 대해 주는 면면이 바로 윤시인의 인품이라 하겠다.

또한, 재치 넘치는 그의 화술은 가깝게 지내는 이상호, 박상천 두 교수 시인들과 어울릴 때면 더욱 돋보여, 좌중은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고, 우리들은 서로 그 세 분 시인 가까이 앉아 엿듣기를 즐겨할 정도로 인기가 짱이었다. 1996년 재미시인의 초청으로 LA에 갔을 때에도 그곳 시인들 사이에서도 윤교수의 인기는 누구보다 좋았으니 교환교수시절 그의 인품이 어떠했는지 짐작케 했다.

더욱이 윤시인의 종교가 천도교 (우주는 곧 모든 생명체와 유기적(有機的)인 연관을 맺고 있는 커다란 하나의 생명체라는 인내천人乃天 교리)임을 감안하면 그의 다정다감한 대인관계가 십분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윤시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사모님과 가끔 통화하며 안부를 묻고 진심으로 건강이 회복되기를 비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사모님과 한울님의 도움으로 건강을 되찾은 윤교수가 우리 앞에 여섯 번째 시집[밥 나이, 잠 나이]로 건강하게 나타났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번 시집에서도 ‘마음의 거울’인 특유의 겸허함과 달관적인 발화로 담백하게 시인이 겪었던 고통과 환희를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인생을 되돌아보고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으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병상에서 내려다본 작은 녹지대

늘 가고 싶었다.

 

회복이 된 첫날, 밝게 떨어지는 햇살따라

그곳으로 가 보았다

어느 병동의 창틀마냥

나의 병실 유리창도 반쯤 열려진 채

그렇게 올려다보였다.

 

녹지대, 그 벤치 주변으론

흩어져

나뒹구는 담배꽁초며 종이컵들.

 

- 문득 그들이 목메이게 그리웠다.

-부재 전문

 

병원에 가면, 병상 창문 앞에서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는 환자들의 표정을 볼 때면 가슴이 후들거린다. 유리창 밖에서 병실을 올려다보는 녹지대 세상(늘 가고 싶은)과 환자복을 입고 내려다보는 병실 유리창안의 세상. 서로 대칭점을 이루고 있는 그 두 세상 중 어느 세상을 목메이게 그리워하는지 혼동케 되지만, 아마도 견제하는 두 세상이 서로 협동하므로 그 모두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잘 있거라 불빛 번쩍거리는 거리

술 취한 카페, 고만고만 모여앉아

세상의 열정 모두 지닌 듯

그러나 각기 다른 주머니 하나쯤은

챙길 줄 아는 이악함

(중략)

고개 숙여 나는, 그러나 눈물은 감추며

오늘 결별을 고한다.

나의 신실하지 못한 육신과

어눌한 눈매와 시답잖은 웅변을

탓하며, 잘 있거라

오늘 나는 이 거리 저 휘황한 불빛에

불빛을 걸어 결별을 고한다.

 

이 시를 쓰면서 시인은 얼마나 고독했을까. 눈물은 감추었다고 하나 휘황한 불빛으로 보면 눈물범벅인 채로 쓰지 않았나 싶다. 결별을 고하리만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를 위로해 주는 건 아무데도 없었을 것이다. 참담하게 홀로 된 고독 속에 서서 카페의 불빛을 그리워하며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탓하며, 부러운 불빛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는 시인. 완전무결하게 가지고 있는, 그 웅변의 감각과도 결별을 고한다. 아무 죄도 없이 병마로 인해 쫓겨나야만 하는 결별의 손짓을 불빛에 걸어 고하는 시인이 처절하게 아름답다.

 

일산이 여기서 어딘데, 정말 저 배추를 일산에서부터 가

지고 왔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그 아저씨

가 일산에서 키운 배추라고 외치면, 우리는 모두 한 조각

의심도 없이 그렇다고 믿었다.

(중략)

우리는 영광이라는 흑산도라는 강원도라는 영덕이라는

상징을 먹고 산다. 오늘 우리는 다만 상징으로만 남아

있는, 상징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상징은, 상징은

곧 우리 모두의 실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징과 실재

 

상징이란 인과적으로 산출되는 것이 아니면서 그 다른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영악해진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는 인과적도 실재도 아닌 임의적인 상징을 먹고 살아가야만 한다. 인내천(人乃天)을 강의하며 천국이라는 현실에 살고 있는 윤석산 시인은 이미 그가 살아가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평생 마음속으로 들어보는 반 손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상징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융합할 수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틀렸소. 이렇게 소리 높여 세상을 꾸짖지도 못하고 눈치나 살피며 병을 앓고 있어야 하는 세상의, 세상의, 그 세상의 일들에게 연민의 정을 쏟아내며 상징 같은 시대를 우러러 보아야만 하는 아이러니 속 시인의 여리디 여린 마음을 엿보는 독자도 아프다.

 

-사람들이 그저 이름값이나 하고자 일 년에 한두 차례 으레

들러서 어쩌고저쩌고 떠들며 가는 꼴이라니 그래서 오늘 나

스스로 불타기로 했다. 스스로 몸뚱이 불 지르는 소신공양,

2008년 2월 10일, 600년의 나를, 스스로 나 불 지르고 말았다.

-자문자답 숭례문 일부

 

불은 천년 고찰 낙산사를 태워 버리고 말았다.

보물 동종이 고리만 남아 잿더미 속에서 뒹굴었다.

함추무간 떨어져 버린 육신

어디 세상에 죄업 한 번 짓지 않은 사람 있겠느냐마는

아직 이승 떠나지 못한 마음 하나

검은 흙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 산불 전문

 

국보 1호, 서울의 관문, 그리고 천 년 고찰 양양의 낙산사가 불타고 말았다. 시인은 그들이 스스로를 불질러 자살하고 말았다고 한다. 6백 년을 지킨들, 천 년을 지킨들,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무엇을 더 지킬 것인가. 더 이상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하고 함추무간으로 떨어져 버린 그 육신에게 그래도 살아있는 마음 하나(시인 자신)가 향불 되어 사죄하고 있다. ‘한두 차례 들러 어쩌고저쩌고 떠들고 가는 사람들’을 향한 촌철살인의 표현이다. 이성을 지닌 인간이 존엄하다면 그렇지 못한 자연의 모든 것은 한낱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도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는 것, 인간이 얼마든지 이용하고 파괴해 버려도 되는 대상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물질이 지배한 곳에서는 냉철한 이성적 판단도 불건강한 것, 억제해야 할 부정적인 것이 되어 버렸으니 소신공양이나 해야 할뿐이었던가.

 

체내를 빠져나온 검붉은 피들은

헐떡이며,

투명한 비닐 튜브관을 돌아, 빽빽이 그물망 드리워진

투석기를 돌아,

돌아, 돌아서

이제는 다소곳이 숨죽인 모습으로

다시금 몸 안으로 돌아, 들어서고 있구나.

 

순치될 수 없는 불뚝이는 나의 붉디붉은 욕망들

공손하라, 겸허하라, 그리고 머리 숙여라.

널브러진 내 육신을 향해, 아 아 사각으로 우뚝 서서

근엄함 음성으로

기계는

그 묵시의 훈계, 묵묵히 돌려내고 있구나.

-기계론 전문

 

역사는 돌고 돈다. 몸 안의 피돌기도 이성으로 억눌러야 할 한계를 지나 기계의 힘을 빌어 비로소 돌아가고 있다. 백 마디 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것을 단어 하나로 감동시킨다. 시인은 그 정밀하고 냉철한 기계마저 차디찬 물질로만 보지 않고 ‘불뚝이는 욕망’들을 향한 신앙, 도덕, 합리성과 같이 당연히 받아드리는 훈계로 듣고 근엄하게 고개 숙일 줄 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수많은 경험과 사색이 쌓이고 숙성된 뒤에 튀어나와 다시 새로운 피돌기는 시작되고 냉엄한 현실 앞에 수그러들지 않는 시인의 정신만 오롯하다.

 

꽃나무 환한 그늘 아래 잠이 들었네

온통 꿈속 꽃잎 휘날리고

 

누군가 가만히 와서 흔드는 손길

나는 오래도록 깨어나고 싶지 않았네.

-묘약 전문

 

지하철 의자에 웅크린 채 잠이 든다.

꿈은 발치에 덮여진 거적때기

악몽이듯 때로는 악다우리 지옥이듯

오늘도 웅크린 잠 속

파고들며, 다만 부려 놓는 수많은 발길.

그러나 꿈속, 나의 열차는 오늘도 당도하지 못한다.

-쪽잠 전문

 

 

 

 

어제는 늘어지도록 낮잠을 잤다. 며칠 동안 소모시킨 육

신 다시금 되돌려 놓았다. 잠시 세상의 물밑 현란한 듯

일렁이었다. 햇살들 떨어지며 비로소 마당 위 반짝이며 눈 뜨

고 있었다. 멀리 상수리나무 기지개를 켜며 다시금 푸르른 숲

이루고 있었다.

-낮잠 일부

 

시와 음악을 좋아한 시인은 어릴 때 집근처 산에 올라 고독과 사색을 즐긴다. 그러나 감성적이고 열정적인 그에게 현실은 커다란 짐으로 다가와 병마는 육신의 생명력을 잃게 하고, 비실비실 잠들게 한다. 쪽잠이든 낮잠이든 이성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육신을 버리고 꿈속의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 그런데 결코 깨어나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누군가 ‘묘약’을 들고 자꾸 흔들어 깨운다. 건강하지 못한 생에서 일으켜 세우는 손길은 그가 섬기는 한울님이 아니었을까? 하여,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나니 다시금 새로운 눈이 뜨이고 ‘푸르른 숲’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어둠의 저 켠 버려진 채, 묵묵히 녹이 스는 비수. 그리하여 더욱 퍼렇게 살아나는 은닉의 칼날. 알 수 없는 심연의 깊이로 조용히 가라앉는 앙금이듯 그리하여 이내 뜨거운 침묵으로 결속하는 우리의 항변이듯 그렇게 나는 살아가리라.-

- 견딤에 대하여

우리는 가끔 이런 물음에 잠입하곤 한다. 누구처럼 살고 싶은가? 누구의 삶에 나는 경도傾倒되는가?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야 하는가?,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야 하는가? 어떤 것이 더 훌륭한 삶의 태도일까? 모순처럼 생각되어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디에도 전략과 실천의 문제를 통쾌하게 밝혀둔 이야기를 나는 알지 못하다. 삶의 전략을 세워 준비할 때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원대한 꿈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준비는 그러한 광대무변함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하나하나 실천할 때는 ‘내일은 없다’는 결론 앞에 다다르고 만다. 윤시인은 그 모든 물음에 답을 알고 있다. 그는 묵묵히 견뎌내면서 ‘녹이 스는 비수’와 ‘은닉의 칼날’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침묵으로 항변하며 영원히 살 것을 계획하며 지혜롭게 삶의 방향을 조용히 밝히고 있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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