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뭐야! 겨우 하나뿐이잖아?”
1945년 8월6일 아침7시15분, 히로시마 하늘에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B-29 한대가 천천히 지나가자 지체 없이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폭격기 편대의 융단폭격에 익숙했던 일본사람들에게 그날 아침은 축복받은 날처럼 보였다.
무서운 B-29가 달랑 한대만 날아오고 그나마 그냥 지나갔으니........
한 시간 후 다시 사이렌 소리 요란한 중에 또 하나의 비행기가 나타났다.
좀 전에 한 대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던 터였으므로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하늘을 쳐다보았으리라.
몇 시간 전인 새벽 2시45분 남태평양의 티니안 섬을 떠난 에놀라게이호. 조종사 폴 티베츠 대령의 어머니 이름으로 명명한 그 비행기의 탑재 화물은 단 하나 뿐. 2500만 달러짜리 4.5톤 무게의 신형 폭탄, little boy.
이 손님을 태우기 위해 승무원들은 자살용 청산가리를 휴대하고 유서를 써 놓았다.
비행기에는 68톤의 연료를 주입했기에 이륙이 어려워 승무원들은 무게를 줄이려고 무진 애를 썼단다.
오전 8시 15분 폭탄투하 명령이 하달되었다.
폭탄의 위력을 아는 승무원들은 폭탄 투하 후 43초 동안 전속력으로 도망쳤지만 번쩍하는 오렌지색 섬광에 이어 밀려오는 충격파로 모두 비행기 안에 나둥글었다.
아마 히로시마 시민들은 하늘을 처다 보며 오늘은 폭탄 단 한개만 떨어지니 참 운수 대통한 날이라고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8월9일, fat boy라는 또 하나의 선물을 받은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를 석권하고 러시아와 미국영토까지 넘보던 군국일본의 콧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원폭투하.
승승장구하던 조조의 10만대군 군사들이 장판교에서 필마단기, 장비의 호통에 놀라 저절로 무너지며 자기들끼리 짓밟아 숱한 사상자를 내며 십리나 도망쳤던 사건이 1700여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일어난 것.
일찍이 관운장으로부터 내 아우 장익덕은 적장의 목 베기를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하는 무서운 장수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 잘 알고 있던 조조는 이일로 장비가 무서워 도망친 장수라는 웃음을 샀다.
그러나 그는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끝내 3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1700년 후 또 하나의 장비, 첫 번째 폭탄의 가공할 위력을 직접 목격하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일본 군부는 두 번째 폭탄까지 얻어맞고서야 겨우 정신 차려 무조건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역사의 교훈이다.
두 번째 교훈의 중심에는 불행하게도 한국이 두 마리의 거대한 고래사이에 끼인 새우로 등장한다.
지금 강대국들이 가진 핵무기는 약 3만여 개라고 하는데 실제 쓰인 것은60년 전에 사용한 단 두개뿐이다.
그렇다면 핵무기는 절대, 아니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전시용일 뿐일까?
주먹다짐이 일어나기 전에 항상 무력시위가 있게 마련이다.
힘없는 사람이 조폭을 만나면 주먹으로는 당해낼 방법이 없다.
우락부락한 불량배가 두 손의 손가락을 우두둑 소리 나게 꺾으며 힘을 과시하면 거짓말로라도 삼촌이 경찰서장 쯤 되는 권력자의 집안임을 과시해야 균형이 맞는다.
한동안 입씨름으로 탐색전을 하다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으로 슬그머니 물러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옆에서 어떤 사람이 집안에 누가 있다는 것이 공갈이라고 고자질하는 순간 불같은 주먹이 날아들 것은 뻔 한 일이다.
팽팽하던 균형이 깨어지는 것.
지금 우리 정부가 하는 꼬락서니가 변변치 않은 우리 뒤를 감싸주던 이웃사촌 같은 전시작전 통제권을 환수하여 한미동맹을 깨트리고 얼마 전에는 핵우산까지 치워 놓을 테니 이제부터 사이좋게 잘 지내자고 불량배에게 악수를 청하는 꼴이다.
주머니 두둑한 놈 잡아 술 한 잔 먹고 싶은 생각 간절했어도 뒷배 봐주는 놈이 있어 크게 손대지는 못하고 푼돈이나 우려먹던 불량배에게는 더 없는 희소식.
이제 자기들끼리 사이가 틀어졌으니 겁날 것 없게 된 것.
한참 어려울 때 도와준 이웃에게 이제 형편이 좀 피었다고 껍적거리다 못해 흰소리하고 한눈팔고, 그것도 모자라 딴죽 걸면 누가 좋아할까?
심심풀이삼아 삼국지라도 한번 읽어보시기를 바랄뿐이다.
핵과 미사일은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장난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