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아큐 정전

주혜1 2008. 10. 24. 22:03

루신「아큐정전」 (낭송 박기산, 장용철, 박현미) 2008년 10월 23일 댓글 (1)

 

 

 

「아큐정전」 루쉰

 

그가 두 번째로 목책문으로부터 끌려나온 것은 이튿날 오전이었다.

 

대청의 광경은 모두 전과 같았다. 상좌에는 여전히 까까머리 늙은이가 앉아 있었다. 아큐도 역시 어제처럼 꿇어앉았다.

 

늙은이가 부드럽게 물었다.

 

“더 무슨 할 말은 없느냐?”

 

아큐는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할 말이 없었으므로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를 가지고 와 아큐 앞에 놓고 붓을 그의 손에 쥐어주려고 했다. 아큐는 이 때 거의 혼비백산하도록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의 손이 붓을 쥐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떻게 쥐는 것인지 정말 몰랐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한군데를 가리키며 그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저는……저는……글을 쓸 줄 모르는뎁쇼…….”

 

아큐는 붓을 덥석 움켜잡고는 황송하고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그러면 너 좋은 대로 동그라미 하나 그려라.”

 

아큐는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했으나 붓을 잡은 손이 떨리기만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를 위해 종이를 땅 위에 펴주었다. 아큐는 엎드려 평생의 힘을 다 쏟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워 동그랗게 그리려고 마음 먹었으나 이 밉살스런 붓이 지나치게 무거운 데다 또 말을 듣지 않아 떨면서 간신히 그렸다. 거의 완성하려 할 때 붓이 위로 솟구쳐 수박씨 모양이 되고 말았다.

 

아큐는 자기가 동그랗게 그리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으나 그 사람은 문제 삼지도 않고 재빨리 종이와 붓을 가지고 가버렸다. 여러 사람들이 또 그를 재차 목책문 안에 처넣었다.

 

그는 두 번째로 목책문 안에 들어갔어도 그리 고민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때로는 감옥에 들어가는 일도 있을 게고, 또 때로는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동그라미가 동그랗게 그려지지 않은 것만은 그의 일생에 하나의 오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곧 마음이 풀렸다. 손자대가 되면 동그라미를 아주 동그랗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 출처 :「루쉰 소설전집」,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6 (146-147쪽)

 

● 작가 : 루신- 1881년 중국 저장성 사오싱현에서 태어나 1918년 『신청년』에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함. 소설집 『외침』『방황』, 산문집 『열풍』『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등이 있으며, 1936년 작고함.

 

● 낭독: 박기산- 배우. 연극 <심판> <로미오와 줄리엣> <난타> <삼류배우> 등에 출연.
장용철- 배우. 연극 <진짜 신파극> <햄릿> <문득 멈춰서서 이야기하다> 등에 출연.
박현미- 배우.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사랑을 주세요> <바다와 양산> 등에 출연.

 

● 음악 : 나비

 

 
   

소설을 쓰느냐, 직장에 다니느냐 고민한 적이 있어요. 스물일곱 살 무렵에. 앞으로 소설만 쓰겠어, 라고 맹세하려고 폼만 잡아도 앞날은 캄캄해지더군요. 인생, 뭐 별 거 있겠어?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회사에 취직했어요. 그게 쉬워 보였거든요.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서 죽을 고생을 다 했어요. 다들 알겠지만. 그 다음에 깨달았죠.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괜히 편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고생하느니 아예 기대를 접자. 그 뒤로는 편해 보이는 길과 힘들어 보이는 길이 있으면 무조건 힘들어 보이는 길을 선택했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는 별 불만이 없어요. 역시 아큐와 상관없는 얘기지만 그게 죽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우린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죽을 권리가 있답니다. 남들처럼 살기도 싫지만, 남들처럼 죽기도 싫어요. 저 멋진 아큐처럼.

 

2008. 10. 23. 문학집배원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