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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몰래 핀 베란다 선인장꽃

주혜1 2011. 7. 23. 08:24

 언제나 그랬다

볼 품 없이 생긴 이 선인장은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베란다 한 구석에 묵묵히 가시 돋힌 채 있는지 족히 20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이 선인장이 어느날 봉오리 같은 줄기를 길게 뽑는데도 지리한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긴 시간을 꽃봉오리를 매단 채 애를 태우더니

아무도 몰래 밤중에 이렇게 눈부신 백옥 같은 살결을 한

우아하고 아릿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처음 이 선인장이 꽃봉오리를 매달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 있는 모습을 보고 꽃이 피면 한동안은 볼 수 있으려니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단 하루도 피어있지 못하고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마는 게 아닌가

어찌나 허전하고 허무하고 아쉬운지...!

우리의 젊음 또한 한순간의 꿈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처럼....!

 

그 다음부터 꽃이 피길 기다려 사진기를 들이대며 순간을 담기로 했다

헌데, 올해는 이렇게 밤중에 몰래 피고 있었다

아마도 사진으로 남는 것조차 싫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어쩐담? 네가 싫어한다고 내가 그냥 널 놓치고 싶지 않은 걸?

단 하루 피는 선인장 꽃!

아직 나는 이 선인장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이름을 안들 무엇하랴. 통성명할 사이도 없이 가버리는 걸..

아마도 너도 나처럼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는가 보구나

그냥 애처러운 백옥의 처녀성을 간직한 채 스러져가는 너를 위해 나도 고개를 숙일 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몰래 피고 가는 섬섬옥수를 붙잡고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을 남긴다

내 눈에 내 가슴에...1

가버린 그 누군가를 생각하듯이.....

새벽에 눈 뜨자마자 베란다로 달려가 보니

어김없이 너는 혼을 놓은 채 고개 숙이고 있구나.

잘 가거라.

내년에 또 찾아와 줄 거지?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