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자 교리방

고해성사

주혜1 2011. 10. 1. 21:27

1. 신앙생활의 바탕인 성사

오늘의 교리를 시작하기 전에 지난 주에 배운 교리를 잠시 살펴 보기로 합시다. 지난 주 우리는 성사에 관해 살펴 보았습니다. 세례성사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성사들입니다. 교회에는 몇 가지의 성사가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성사는 모두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칠성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중 지난 시간에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살펴 보았습니다.

여러분 왜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해 인도받고자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례는 하느님께서 준비가 된 사람들을 받아들여 준다는 표현이고 동시에 세례를 받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께서 주신 새 생명에 참여하고 신앙 공동체인 교회 안에 받아들여 집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택하셨습니다. 나는 그분을 위해 살아가고, 이 세상 안에서 그분께 봉사하고 그분만을 증거합니다. 나는 그분의 친구이자 제자로 받아들여졌기에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고 그분의 이름만을 간직하면서 영원토록 그분만의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도 이렇게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을 모시고 살아 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박고 그 터전 위에 굳건히 서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 넘치는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십시오(골로 2, 6-7)."라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례성사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2. 신앙의 힘을 주는 견진성사

여러분 세례성사를 통해 얻은 새 생명을 우리는 성장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 새 생명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신앙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 힘을 충만케 하는 것이 바로 견진성사입니다. 견진성사는 하느님의 성령이 각 그리스도인을 움켜잡고 움직이시는 것을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견진이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하는데 그 뜻은 '힘을 돋우어 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성사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탄생한 새 생명을 성숙시켜 주는 것이 견진성사입니다. 그래서 견진성사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성사로 말미암아 세상을 위한 일을 해 나감에 있어 더욱 강하게 해 줍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견진을 받는 이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바를 살아가게 하시며, 전적으로 하느님을 위해 살고 위임 받은 대로 다른 이들을 위해 생활하도록 용기와 자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옛날부터 그리스도교의 입문성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성사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성사이고 모든 성사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운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오늘의 과제를 살펴 보기로 합시다. 모두들 성서를 가지고 오셨으니 루가 복음 15, 11-32의 '잃었던 아들'을 펴주시기 바랍니다. 저기 계신 형제님께서 읽어 주십시오.

네! 감사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제나 저제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당신께 돌아오길 간절히 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전 개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성사가 고백성사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크고 작은 잘못을 범하거나 되풀이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죄에 대한 어원을 살펴보면 죄는 '화살이 빗나아가다, 과녁을 맞추지 못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유래합니다. 그래서 죄란 하느님의 의도와 목적에서 빗나간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인 자유를 남용한 인간 스스로의 빗나간 선택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의 목적에서 빗나간 삶을 살 때, 그 사람의 마음과 육체가 상처받음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이러한 죄를 용서하시려고 우리를 당신의 사랑에로 부르고 있습니다. 조금 전 우리가 들었던 복음 말씀도 죄를 회개하고 하느님께 다시 돌아오길 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응답, 진실로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응답은 화해의 성사인 고백성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다.

죄라는 개념은 하느님 앞에 그리고 인간 사이에 저질러진 허물을 의미합니다. 악으로 기울면 기울수록 사태가 막중하면 막중할수록 죄는 무거워집니다. 어떠한 일에 있어 명백한 판단을 내린 후 자유로운 결정을 짓고 하느님의 뜻에 '아니오'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는 하느님을 거스리고 그 분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거스렸는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알고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삶은 이미 착한 일을 행하고자 하는 길에 들어서 있는 사람입니다. 유혹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또 악한 행동만으로 죄를 범하는 경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행하지 않는 것도 죄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생각이나 말로써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문제되는 것은 우리가 행한 것 자체 보다는 어떤 의향을 가지고 행하였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용서하시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죄는 없습니다. 어떠한 대죄인 이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에 힘 입어서 새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 죄와 공동체의 관계

사람이 살아가면서 악을 원해 악행을 일 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악이란 순간적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기에 가끔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럴 듯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손해를 끼치는 일이 됩니다. 우리가 남의 물건을 슬쩍 가져오면 다른 삶의 소유물을 훔치는 게 됩니다. 또 모든 이의 소유인 그 어떤 것을 자기 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사사로운 것은 아닙니다. 비록 처음에는 아무도 해를 입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것은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특히 죄는 악에 대해 무딘 감정을 갖게 합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모방하고 싶은 유혹이 될 수 있고 또 전염케 하는 것이 죄입니다. 이는 교회의 신앙의 품위를 떨어 뜨리게 되고 하느님의 뜻, 즉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이야기하는 하느님의 명령을 거스르면서 그런 태도를 고집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그 어떤 자리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화해와 용서가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공동체 자체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준 이는 하느님께 용서를 청해야 할 뿐 아니라 모욕을 당한 그 사람에게도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타인의 재산을 훼손시킨 사람은 뉘우침이나 후회만으로 부족합니다. 손해를 끼친 몫을 기워 갚아야 합니다. 기워 갚을려고 하는 의향이 회개의 기초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용서를 청하는 이를 용서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 본 사람들은 동료의 잘못을 용서할 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우리 죄를 용서 하소서"

2. 죄와 참회

이제는 죄와 참회에 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죄는 단순히 이웃에 대한 실수나 거절 혹은 냉대와 과격한 행동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을 거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많이 알수록 죄가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런데 죄라는 것이 고의로 하느님을 거스리는 것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그르치게 하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생각하는 만큼 하느님께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죄입니다. 우리의 죄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방해하는 것이며, 이것이 고의이든 우발적인 것이든 우리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마치 하느님께서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처신합니다. 마치 하느님의 뜻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또는 그분의 뜻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다시 말해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나 세상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내어놓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하여 신앙인의 공동체를 연약하게 하고 거룩한 교회에서 자기의 몫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항상 새롭게 용서의 선물을 보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싫어요"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얘야 여기 있다"고 하시면서 용서의 선물을 주시고자 합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든지 하느님은 용서해 주시는 분임을 깨닫게 되면 그는 그분에게 압도당하고 자신의 옳지 않게 행하였을 때 스스로 애석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읽었던 복음 안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렇게 자신이 걷고 있던 잘못된 길을 포기하고 다시금 하느님께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회심이 쉬운 것도 아닙니다. 이는 오래 끄는 것이고 또 전 인격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새 출발을 원하는 그 사람 안에서는 이미 벌써 하느님께서 먼저 새롭게 출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는 그 의지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3. 죄에 대한 반성과 용서의 행위들

1) 죄에 대한 반성

개인에게 있어 무엇이 죄인지를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그 누구도 판단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마땅히 자기자신의 삶을 꿰뚫어 보아야 하고 자신의 양심에게 물어봐야 하며 자신의 행동과 하느님 앞에서의 태만 여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순수한 양심을 지닌 사람은 비록 다른 사람들이 과실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기적이고 죄스러운 것임을 느낍니다. 신앙이 성장할 수록 죄에 대한 인식도 깊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이 짓는 죄에 대한 죄목록이나 죄에 대해서 세세하게 열거하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참회나 양심성찰은 신앙인에게 신앙생활을 반성하는데 매우 좋습니다. 이것은 인정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것들을 깨닫게 해주고 명료하게 구별하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친구나 경험이 많은 사람, 사제와의 대화도 크게 도움을 줍니다. 하느님 면전에서 자신의 삶을 항구하게 점검하는 사람은 좋은 결실을 얻어 누리게 됩니다. 행위는 물론 생각과 말 조차 더 잘 해낼 수 있는 계기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디서나 자기자신의 양심이 스스로 고발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2) 용서의 행위들

교회는 여러가지의 죄 사함을 청하는 방법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다른 이를 돕는 것을 거절했다가 후에 진심으로 돌봐주거나 다른 이를 교회에 입문시키면서 자신도 세례의 의미를 재확인할 때 회개를 하는 외적행위가 되고 죄사함을 받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또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죄사함을 받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가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해" 흘리신 피라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또 일과를 마치면서 하루를 되돌아 보며 진지하게 반성의 기도를 하는 것도 하느님께서 자신을 용서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사들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에 물든 인류를 구하시고 그들을 하느님의 편에 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사하는 하나의 성세를 믿으며"하면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죽음에 직면한 신앙인은 병자성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습니다. 세례 후 이 세상 삶을 마치기 전까지의 그리스도인은 고백성사를 통해서 항구하게 하느님과 화해하고 죄의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4. 고해성사

이처럼 인간은 본성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기에 인간의 나약성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하느님은 당신에게 돌아가는 참회의 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를 위해 고백성사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성사는 인간의 필요성에 대한 하느님의 은총이며 자비입니다. 이 은총의 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한 회개와 죄를 피하고 착한 생활을 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이 성사를 통해 조건없이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 이 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이웃과의 우정을 되찾으며, 교회 외의 내적 일치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다시 얻어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이웃과 화해하게 해주는 성사라는 의미에서 화해의 성사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1) 고백성사의 설정과 기원

구약성서를 보면 죄를 기워 갚고 하느님께 용서받는 예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 16장을 보면 사제가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어 백성이 지은 모든 죄를 염소에게 뒤집어 씌우고, 그 다음에 그 염소를 죄와 함께 황무지로 내쫓아 버리는 예식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구체적인 고백성사의 형태는 아니지만 화해와 속죄의 예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16, 13-19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사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그를 으뜸제자로 삼으시면서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라고 사죄권을 주셨습니다. 또 요한 복음 20, 23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남의 죄를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 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고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2) 고백성사와 그 구성요소

세례를 받은 후 범죄한 그리스도인이 성신의 인도를 받아 고백성사를 받으려 할 때에는 먼저 마음을 대해서 하느님께로 회두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통회와 새 생활의 결심을 내포하는 이 깊은 회심은 교회에 고백하고 마땅한 보속을 하고 생활을 개선함으로써 표현되어 집니다. 하느님은 사제들의 직무로 일하는 교회를 통하여 죄를 사해 주십니다.

(1) 성찰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알아내어 성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통회

이 성사를 받는 사람이 해야 할 의무 중 중요한 요소가 통회입니다. 이는 "범한 죄에 대한 아픔과 미움에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겸한" 마음의 자세입니다. 진정한 참회는 이 마음의 통회에 달려 있습니다. 회개는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날로 더욱 깊이 비추어 주며 점차로 더욱 그리스도를 닮게 해 주는 것입니다.

(3) 고백

하느님 대전에서 자신을 참되게 인식하고 죄를 뉘우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죄의 고백이 고백성사의 일부입니다. 이같은 마음의 깊은 반성과 외적 고발은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백은 고백자의 편에서는 사제에게 자기의 마음을 열어 보이려는 의향을, 사제 편에서는 죄를 풀어 주거나 매어 놓는 권한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판단을 내리는 영신적 재판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특히 개신교 신자들이 어떻게 인간인 사제에게 죄를 고백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고백성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것입니다. 또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였는데 사제가 이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의 역사상 여태까지 사제가 고백의 죄를 발설한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사제에게 있어서 고백의 비밀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 고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사제가 목숨을 바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안심하십시오.

(4) 보속

참된 회개는 죄의 보속과 생활개선과 끼친 손해의 보상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5) 사죄

성사적 고백으로 사제에게 자신의 회개를 표시하는 죄인에게 하느님께서 사죄의 표지로써 당신의 용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로써 고백성사는 완성됩니다.

종 합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를 용서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우선 자기자신이 용서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용서하는 힘과 하느님, 그리고 사람들 앞에 저지른 잘못과 허물을 자백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때 이 일은 쇄신과 해방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사함을 받고 새 출발을 하게 되며 하느님을 향하여 더욱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일이 오늘 배운 참회와 화해의 성사라고 하는 고백성사 안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 성사는 쇄신과 기쁨, 그리고 하느님과 신앙공동체인 교회와의 화해를 위해 마련되어 지는 것입니다. 죄인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죄의 용서를 체험하는 것은 보람된 일 입니다. 이 성사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인류와 세상을 쇄신함에 있어 독특한 방법으로 기여합니다.

고백성사는 하느님과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화해의 길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찬의 음식을 나눌 수 있게 합니다. 신앙 공동체는 죄인을 단죄하는 것을 능사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용서해 주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시는 가운데 만나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그에게 보여줍니다.

고백성사는 하느님께서 인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새롭게 출발시켜 주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죄 자체를 관대히 보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 분은 죄를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죄 지은 것을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죄를 용서해 주실 때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루가복음도 이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 의인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루가 15, 7).

1. 성사의 필요성과 유익성

개인이나 단체가 죄로 입은 상처가 여러 가지인 것 같이 회개가 우리에게 갖다 주는 치유도 가지가지 입니다. 대죄로 하느님의 사랑을 못받게 되었던 사람이 고백성사로서 잃었던 생명을 회복합니다. 매일 같이 자신의 나약함을 체험하면서 소죄에 떨어진 사람은 고백성사를 반복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위한 힘을 회복하게 됩니다.

2. 고백성사의 효과를 얻기 위해

대죄를 범한 사람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양심의 성찰로 기억나는 모든 대죄들을 낱낱이 사제에게 고백해야 합니다. 소죄를 위해서도 고백성사를 성의껏 자주 받는 것이 매우 유익합니다. 이것은 세례의 은총을 완성하려는 항구한 노력이며 우리의 몸에서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심 화

이제 모두 눈을 감고 우리를 한 없이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께서 이 은총의 성사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의 지나온 생활을 반성해 봅시다.

여러분들은 진정 깨끗한 마음으로 생활을 개선하고 하느님과 더욱 깊은 사랑을 맺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하느님을 다른 모든 것들보다 더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에 충실할 것을 약속 드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이웃을 진실한 사랑으로 이해하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가정 안에서 인내와 사랑으로 가족들의 선익과 기쁨을 도모하고 있습니까?

응용 실천

여러분들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 세례도 받지 않았는데 이거 교리를 배울수록 앞으로 생활이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고 힘든 일이구나 하고 망설이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너무 근심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멋진 삶으로 초대하고 이끌어 주시고 있습니다. 아직 세례성사를 받지 않았으니 고백성사는 나와는 관계가 먼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들은 세례성사를 받은 후에 고백성사를 자주 보아야 하지만, 오늘부터 하루의 생활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하느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을 하였으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이렇게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가 진정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으며, 자신의 잘못에 대한 회개의 마음과 생활을 개선하여 하느님과 더욱 깊은 사랑을 맺으려고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다음 교리시간까지 적어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침 기도

우리를 한 없이 사랑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주님, 오늘 교리시간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기 위해 고백성사를 만들어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나약함이 자주 주님의 사랑을 외면하게 하고 외면하려는 마음이 앞서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더욱 주님의 사랑에 가까이 나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성사생활

□ 고해성사 양식 □

1. 먼저 지은 죄를 모두 알아내고,

2. 진정으로 뉘우치며,

3.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4. "고백 기도"와 "통회 기도"를 바친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 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 아멘

♤ 고해한 지(몇 일, 몇 주일, 몇 달) 됩니다.

(알아낸 죄를 낱낱이 구체적으로 고백한다)

죄를 고백한 다음

-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사제는 고백자에게 훈계하고 보속을 준다. 필요하다면 고백자에게 다음 통회기도를 바치게 할 수 있다.

⊙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사제는 고백자 머리 위에 두 손이나 오른 손을 펴들고 사죄경을 외운다).

†사죄경 :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려고 성령을 보내주셨으니,

교회를 통하여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는 성부와 †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아멘.

† 주님을 찬미합시다.

⊙ 당신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 감사합니다.

(「가톨릭 기도서」 25-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