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崇禮門)
봄 길 - 詩 : 정호성, 곡 : 김희갑. 노래 : 이동원국보 제1호이며 현존하는 조선왕조의 제일 오래된 건물인 숭례문이 방화범에 의해 소실되었다.
천민 자본주의!
방화에서 부터 소방까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총집합된 느낌이다.
전란에도 살아 남은 국보 1호를 평화시기에 우리 손으로 불태워 없애 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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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고를 계기로 문화재 관리에 대한 냄비 근성을 버리고 근본적인 개선이 있었으면 한다.
언론도 맨날 사건 사고만 사후 약방문격으로 다루지 말고 빈구석을 미리 지적하고 선도하는 역활을 할 수 없는지?
이제는 600년 역사의 숭례문 모습들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사진으로 남은 것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숭례문은 1396년(태조 5) 창건되어 1448년(세종 30) 개축되었다.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 정궁인
경복궁의 방향에 의해 남문인 숭례문이 정문이 되었다. 풍수지리에 의해 편액도 다른 문들과는 달리 세로로 쓰여졌다.
이는 서울 남쪽에 있는 조산(祖山)인 관악산이 북쪽의 조산인 북한산보다 높고 산의 모양도 불꽃이 일렁이는 듯하여
관악산의 화기를 맞불로서 꺾기 위한 것이며, 오행에서 남쪽을 가리키는 예(禮)를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아 숭례문이라
이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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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숭례문 모습 >
성내 쪽에서 바라 본 숭례문.주변은 포목상등 상가건물로 이어졌고 거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남대문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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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전차길 >
일제 초기에는 서울 성곽이 허물어지지 않아서 전차가 남대문 대문 한가운데를 통과하여 다녔다. 왼쪽에 전차선로와 전봇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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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전차길을 옆으로 >
그 뒤 지금의 모습으로 성곽이 허물어 지고 전차길을 숭례문 옆으로 돌렸다. 처음에는 대문 동쪽으로 전차길을 낸 것을 알 수가 있다. 길에는 차가 다니지도 않고 갓 쓴 인력거꾼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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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숭례문 모습 >
내가 처음 숭례문을 본 것이 625전해인 1949년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외가집(동자동)에 다녀 가면서 구경한 것이 처음이었다.언제인가 선로를 서쪽으로 옮겼네! 그리고 이제는 제법 자동차들이 보인다. 당시 남대문 전차 정거장이 남대문 서쪽(지금 상공회의소 방향)에 붙어 있었고 지하도를 통하여 남산쪽과 시청방향으로 올라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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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직후의 일부 훼손된 모습 >
임진왜란과 625의 참혹한 전란을 겪으면서도 살아 남은 국보를 우리 손으로 없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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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개방식 >
1966년 김현옥시장 때 자동차가 늘어나므로 전차를 철거하였고,2006년 3월 이명박시장 때, 숭례문이 일반인에게 폐쇄된지 만 99년만에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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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직후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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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야경 >
2005년 10월 UN Day날 서울 시청에서 현 정부의 반미친북을 규탄하는 집회를 마치고 찍은 숭례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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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5일 >
용산전쟁기념관을 출발 615남북성명 규탄 행진이 숭례문에서(사진에 보이지 않음) 성명서 채택, 만세삼창으로 해산할 당시의 모습이 가장 가까이서 본 마지막 모습이 됙고 말았다.숭례문(崇禮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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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이 쓴 편액>
<숭례문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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