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341

그 불길은 타오르고/ 조광호신부

그 불길은 끝없이 타오르고*"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주 예수님, 당신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하셨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첫 숨을 내쉬던 그 순간, 당신께서는 제 영혼 깊은 곳에 한 줌의 불씨를 심어주셨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내면의 은밀한 골짜기, 영원한 생명이신 당신의 숨결로 살며시 그러나 분명하게, 내 작은 심장과 팔닥이는 숨에 당신의 거룩한 그 불을 지피셨습니다. 그 불은 뜨거웠고, 그 불은 거룩했으며, 그 불은 제 영혼 가장 깊은 곳 불변의 제 양심에 살아 있는 불씨로 은밀히 숨어 계신 당신의 신비로운 현존이었습니다.그러나 주님, 현란한 세상의 유혹에 눈길이 가고 마침내 번뇌의 사특한 욕망의 불길로, 교만과 무지와 나태와 성급함으로 영혼의 눈이..

스토리1 2025.06.06

고요한 물, 타오르는 불

고요한 물, 타오르는 불 ㅡ조광호 신부– 물과 불, 그 침묵과 사랑의 연금술동서의 옛 선현들은 물을 바라보며 수행을 했습니다.물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일입니다.그 흐름 앞에 오래 머무를수록물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내 안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거기엔 두려움도, 흔들림도,말없이 응시하는 진실이 있기때문입니다.이와같이동서양에서 관수(觀水)를 통해무심함을 배우고, 무상을 체득하며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지향해 왔습니다.그러나 물은 그저 고요하기만 한 존재가 아닙니다.그 속에는 생명을 길러내는 숨은 불꽃이 있습니다.불처럼 타오르지는 않지만,조용히 살리는 힘으로세상을 적시고, 움직이고, 변화시킵니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말했습니다.“우리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놓으신 불꽃에서 왔고,그 불..

스토리1 2025.05.30

존재의 여백

존재의 여백: 종이에 대한 성찰ㅡ조광호신부종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의 존재 방식은 기이하게도 자기 소거를 통해 완성된다. 종이는 스스로를 은폐함으로써 타자의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역설적 존재자이다. 그 위에 펼쳐지는 무수한 서사들—사랑의 고백, 미움의 선언, 용서의 간청—은 모두 종이라는 매개체의 투명성에 의존한다. 종이가 자신을 주장하는 순간, 그 위에 새겨진 의미들은 색바래진다. 종이는 완전한 타자에 대한 환대의 공간이다. 그것은 어떤 내용도 거부하지 않으며,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전쟁의 명령과 평화의 노래를 동등하게 품는 이 무차별적 수용성은,시간의 누적된 흔적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러나 종이의 시간성은 과거를 단순히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로 재생산해낸다.종이 위의 글쓰..

스토리1 2025.05.27

계란후라이와 닭알부침

분단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2018년 8월 행사를 마지막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중단됐고 지금은 북한이 모든 대화 채널을 끊은 상태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공덕역 근처 빌딩의 한 층을 쓰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는 제86차 남측편찬위원회 회의 및 공동회의 20주년 기념 자체 평가회를 조촐하게 가졌다. 물론 북측에 연락할 방도는 없었고, 그쪽 편찬위원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김대중 정부 때 햇볕정책으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추진됐고, 노무현 정부 때 업체 입주가 시작됐다. 남과 북의 문화·관습·체제 같은 것이 많이 달라 이질감이 큰데 언어마저 다르면 화합을 위한 논의조차 불가능하게 될 거라는 걱정을 남쪽의 학자들이 했고 북쪽의 학자들도 동의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 ..

스토리1 2025.02.18

신은 모든 곳에....!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중에서 류시화 / 정채봉 엮음꿈에서 어머니를 만나면 나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친다. "엄마. 엄마가 살아 계셨네. 엄마가 살아 계셨네!" 어린아이처럼 어머니에게 매달려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 하고 불안해 하며, 말을 멈추면 그새 어머니가 사라질세라 연신 이야기를 한다. “엄마, 이제 우리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 이제부턴 내가 정말 잘할게"- 배금자 어머니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내 거처로 불쑥 찾아오신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그때 내 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상을 차려드렸다. 혼자 사는 아들의 음식 솜씨를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그날로 산을 내려가셨는데, 마침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가기 위태로웠다. 나는 바지..

스토리1 2025.02.05

찰나 같은 이 세상...!

찰나같은 이 세상, 섬광처럼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한달전 이미 지난 해와 작별인사를 하고 새해를 맞이했지만, 오늘 설날을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마음, 새로운 각오로 새출발을 할 수 있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새해 벽두를 맞이할 때 마다 드는 한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야속하게도 세월이 어찌 이리 빠른지, 돌아보니 그야말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빠르게 건너온 세월입니다. 다들 한분 한분 먼저 떠나가시니, 이제 곧 내차례겠지, 하는 생각에 인생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깨닫습니다.그래서 설날 때 마다 새롭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꽃같이 좋은 시절 만끽했으니, 미련이나 아쉬움 내려 놓고 이제 남은 날들 하루하루에 감사하면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스토리1 2025.01.30

나는 세상에 칼을. ..!

“나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10,34) ?예수님이 어찌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예수님은 어느날"나는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복음 10장 34절)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선포이 가져오는 분열과 갈등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칼"은 문자적인 폭력이 아니라, 진리와 복음이 세상에서 가져올 충격적인 분리와 결단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예수님은 하느님의 진리를 세상에 가져오셨고, 그 진리는 기존의 죄와 불의한 체계, 인간적 욕망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삶은 필연적으로 세상의 가치관과 대립하며, 이로 인해 갈등과 분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이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그분을 따르..

스토리1 2025.01.23

궤변의 꽃

궤변의 꽃이 만발한 공화국에서우리는 어떻게 궤변에서 진실로, 분열에서 연대로 나갈 수 있을까?궤변(詭辯, sophistry)이란 얼핏 들으면 옳은 것 같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둘러대어 논리를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의 변론을 말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말도 안 되는 말을 가리켜 ‘궤변’이라 해야 할 것이다.온갖 거짓말이 참말로 둔갑하여 온 나라를 들쑤셔 대고, 선한 사람들의 양심에 무서운 빨대를 꽂아 착혈과 수혈을 서슴지 않고 있다. 혼란과 혼란이 거듭되는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 경제, 사회적 무질서 속에서 끊임없이 위기 경고를 보내고 있다. 끝없는 갈등과 대립으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국가가 되고 있다. 이 불안정으로 주가는 급락했고, 환율 불안정은 외환 위기가 코 앞에 와 있어 경제는 끝없이..

스토리1 2025.01.04

슬픈 시대의 괴물 출현기

2024년 겨울 묵시록- 조광호신부때는 2024년 12월 3일. 엄동의 한밤중무궁화 나무에 썩은 오징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이 무슨 해괴하고 불길한 징조인가?오징어 게임 영화에 나오던 ‘얼굴 큰 여자’를 쏙 빼닮은 외눈박이 큰 얼굴,아니, ‘외눈박이 얼큰’이 아닌가?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이게 무슨 일인겨?잠자리에 든 온 국민에게 ‘오징어 게임’ 비상을 거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 궁 화 꽃 이 피 었 습 니 다.지금부터 내 맘에 안 드는 놈들과 나를 괴롭히며, 까부는 놈들은 모두 꼼작 마라움직이면 가만 안 놓아둘 거다’아직도 잠이 덜 깬 사람들과 달콤한 선잠에 취한 사람들은서로 어깨를 흔들며 내 정신이 옳은가?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눈을 비비고 코를 비비며하하 저놈..

스토리1 2024.12.18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전문

폐하, 왕실 전하, 신사 숙녀 여러분.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작은 군중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 이었습..

스토리1 2024.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