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348

상상력, 창조의 불꽃/조광호신부

상상력,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심어주신 창조의 불꽃하나 — 상상력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임을 드러내는 능력하느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상상력으로 세계를 엽니다. 이 상상력은 하느님의 창조에 대한 내면적 응답이며 참여입니다."하느님은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27)이 말씀은 인간이 단순히 도덕적 존재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인간은 창조하는 능력, 즉 무에서 유를 길어올릴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토마스 아퀴나스는 상상(imaginatio)을 감각과 이성 사이를 연결하는 영혼의 활동이라 설명하며, 이 상상력은 영혼이 신비에 접근하는 문이라고 보았습니다.기도란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마음에 그리며 말을 거는 행위입니다. 즉 신앙이란 상상력을 통해 신비를..

스토리1 2025.07.12

이성을 넘어선 사랑의 자리

이성을 넘어선 사랑의 자리에서/조광호신부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완벽한 이성의 건축가였습니다. 세 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고, 여덟 살에 라틴어를 익혔으며, 열두 살에는 이미 논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아버지 제임스 밀의 엄격한 교육 아래서 자란 그는 감정보다는 이성을, 직관보다는 논리를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그의 《자유론》과 《공리주의》는 오늘날까지도 서구 사회의 기본 원리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그에게 종교란 진리가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는 도구였고, 하느님은 인간이 만들어낸 고상한 이상에 불과했습니다.그런데 이상합니다. 그토록 완벽한 이성의 시스템을 만든 밀이 20대에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삶의 의..

스토리1 2025.07.05

왜 시를 쓰는가 ㅡ조광호신부

사람들은 왜시를 쓰는가우연히수 십 년 전해묵은 노트에서습작 시 하나를발견했다계절에 어긋난 서정이지만그냥버리기 아까워폐친들과 나눈다ㅡㅡㅡ사람들은왜 시를 쓰는가영원히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사라져버릴 감정들을 언어로 박제해서 영원히 간직하려는 아주 오래 된인간의 갈망철저히유한 속에 갖힌 인간에게.어쩌면이 욕망은처절 하기 그지 없는 끝내 해갈치 못하는욕망이기에 아름답다ㅡ어쩌면 슬퍼서 더 아름답다눈이 내린다밤새위눈이 내린다동토의 산하를적막으로 덮더니낡은 초가 같은내 혼의 추녀 끝에그윽한신의 숨소리 밤 새워 눈이 내린다

스토리1 2025.06.30

고통의 신비

고통의 신비ㅡ썰물 지난 자리다시밀물이 들고있다목마른 갯벌에 생명이 넘실댄다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되는 위로의 변주곡이 시작된다*하나 : 신앙의 신비에서 고통의 신비로우리는 매일 미사 중 성찬례를 앞두고 "신앙의 신비여!" 하고 노래합니다. 그 순간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하는 놀라운 신비 앞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런데 제단을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서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신비와 마주하게 됩니다. "고통의 신비여!" 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현실 말입니다.갑작스러운 병, 예고 없는 사고, 무고한 자연재해와 전쟁, 이유 없는 상실과 설명되지 않는 아픔들이 우리 삶에 불청객처럼 찾아옵니다. 고통은 문을 두드리는 손님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이웃처럼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고 머뭅니다..

스토리1 2025.06.28

흐름 위에서 / 조광호신부

흐름 위에서— 사랑, 그 애도의 꽃물비늘 위를 조심스레 건너는 햇살처럼, 사랑은 언제나 가장 여린 떨림으로 내게 왔습니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말보다 먼저 스며드는 고요한 침묵으로사랑은눈빛 하나에 조용히 흔들리는 환희의 *알아차림*이었습니다.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유한 속에 무한을, 시간 속에 영원을 꿈꾸는 우리의 사랑은 이 세상의 중심에서부터, 아주 오래 전부터 슬픔을 품은 채 피어나는 꽃이었다는 것을. 나는 당신의 만남 가운데숨은그림자를 통해예감처럼 미리 엿보았습니다.사랑은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물처럼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흐름이며, 스스로 사라짐으로써 타인을 살리는 눈물처럼 투명한 열정이었습니다.그리하여 나는, 기쁨이 솟구치는 순간에도 어렴풋이 이별을..

스토리1 2025.06.27

음악에 대한 헌사

음악에 대한 헌사 조광호신부 이 짧은 *음악에 대한 헌사*를 말 없는 위로와 영혼의 손길로 수십 년간 연주회에 초대해 주신 피아니스트 신수정 선생님께 바쳐 드립니다.존경하고 사랑하는 신수정 선생님, 선생님의 건반 위에 내려앉은 음표들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선생님의 생애를 조용히 품어 안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손길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연주는 말보다 깊고 침묵보다 분명한 언어였습니다. 세상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곳에서 영혼과 영혼이 마주하는 그 순간을 넘어,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일으켜 세워 주는 손길이었습니다.한 음 한 음, 선생님의 손끝에서 피어난 선율은 시간을 잊게 했고 슬픔조차 아름답게 하였으며, 삶의 피로를 한 겹씩 벗겨내며 마침내 고요한 내면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생명이었습니다. 선생..

스토리1 2025.06.22

용서, 상처 위에 피는 꽃

용서상처 위에 피는 꽃/ 조광호신부**복수하지 마라, 썩은 과일은 스스로 떨어진다**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며 상처받습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 순간을 기억하실까요.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그 순간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넘겼을지 모르나, 밤이 되면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 느끼게 되는 그런 시간들을. 혹시 베개에 얼굴을 묻고아무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혼자서 삼켜야 했던 그런 아픔들을 기억하시는지요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는 사람들, 사무실에서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아파트 복도에서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이웃들을 보며 문득 생각해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차가워졌을까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

스토리1 2025.06.11

그 불길은 타오르고/ 조광호신부

그 불길은 끝없이 타오르고*"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주 예수님, 당신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하셨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첫 숨을 내쉬던 그 순간, 당신께서는 제 영혼 깊은 곳에 한 줌의 불씨를 심어주셨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내면의 은밀한 골짜기, 영원한 생명이신 당신의 숨결로 살며시 그러나 분명하게, 내 작은 심장과 팔닥이는 숨에 당신의 거룩한 그 불을 지피셨습니다. 그 불은 뜨거웠고, 그 불은 거룩했으며, 그 불은 제 영혼 가장 깊은 곳 불변의 제 양심에 살아 있는 불씨로 은밀히 숨어 계신 당신의 신비로운 현존이었습니다.그러나 주님, 현란한 세상의 유혹에 눈길이 가고 마침내 번뇌의 사특한 욕망의 불길로, 교만과 무지와 나태와 성급함으로 영혼의 눈이..

스토리1 2025.06.06

고요한 물, 타오르는 불

고요한 물, 타오르는 불 ㅡ조광호 신부– 물과 불, 그 침묵과 사랑의 연금술동서의 옛 선현들은 물을 바라보며 수행을 했습니다.물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일입니다.그 흐름 앞에 오래 머무를수록물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내 안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거기엔 두려움도, 흔들림도,말없이 응시하는 진실이 있기때문입니다.이와같이동서양에서 관수(觀水)를 통해무심함을 배우고, 무상을 체득하며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지향해 왔습니다.그러나 물은 그저 고요하기만 한 존재가 아닙니다.그 속에는 생명을 길러내는 숨은 불꽃이 있습니다.불처럼 타오르지는 않지만,조용히 살리는 힘으로세상을 적시고, 움직이고, 변화시킵니다.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말했습니다.“우리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놓으신 불꽃에서 왔고,그 불..

스토리1 2025.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