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주혜1 2009. 11. 20. 16:50

주말에 본 영화 <내사랑 내곁에>는 10년도 넘은 옛날에 읽은 책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마 주인공 종우가 치유가 불가능한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http://blog.daum.net/hira-qa/737). 루게릭병은 앞서도 적었지만 우리 몸의 운동을 관장하는 신경세포가 원인 모르게 죽어가는 병입니다. 몇 가지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지만 병증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입니다(http://blog.daum.net/hira-qa/728).

 

미국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미치 앨봄이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대학시절 은사님을 매주 화요일 방문해서 그의 마지막 강의를 정리해서 책으로 묶어낸 책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입니다. 공부를 마치고 스승과 작별하고서 다시 만나게 되는 제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만, 많은 제자들이 투병하고 있는 모리교수를 만나러 오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드리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정말 훌륭한 스승의 표본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리교수는 대공황기에 잠깐 경험한 공장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모습을 보고서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가르침의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1959년부터 루게릭병으로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게 된 1994년까지 35년 동안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했는데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학생들과 생각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투병과정에서도 삶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아 루게릭병과 죽음에 대한 아포리즘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ABC TV의 ‘나이트라인’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의 투병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침 나이트라인을 보게 된 미치 앨봄이 대학을 떠나면서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떠올리게 된 것이 매주 화요일 모리교수를 방문하게 되었고, 방문을 통해서 나눈 인생에 대한 토론을 정리하여 발표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방송은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시점에까지 모두 3차례의 인터뷰가 방송을 탔는데 사실 죽어가는 사람을 인터뷰하기가 쉬운 일이었음에도 흔쾌히 수락한 모리교수의 초연한 삶의 자세를 알게 합니다.

 

모리교수가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것이 1994년 8월이었고 그가 생을 마감한 것은 이듬해 가을이었으니 투병기간이 1년 정도 되었으니 다른 환자에 비하여 진행이 빨랐던 것 같습니다. 미치는 매주 화요일 디트로이트에서 매사추세츠 웨스턴 뉴턴에 있는 모리교수님의 집에서 듣는 마지막 강의에 출석한 것이 14번이었으니 3개월여 동안 세상, 자기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나이 드는 두려움, 돈, 사랑의 지속, 결혼, 문화, 용서 등을 주제로 하여 교수님의 미치의 생각과 모리교수의 언급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보통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구절을 표시를 하게 됩니다만, 책을 다 읽고나서 무슨 말을 골라서 소개할까 선뜻 집히지가 않습니다.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구절이 있습니다. “의미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반은 자고 있는 것 같다구. 그것은 그들이 엉뚱한 것을 쫓고 있기 때문이지. 자기의 인생을 의미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헌신해야 하네.” 모리교수가 제자들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보여주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구절도 있습니다. 바로 미치가 모리교수에게 들려준 루게릭선수의 성대모사입니다. “오오오늘……저저는……이 지구상에서……가장 복많은 사아람이……된 기부운입니다아아…….” 그렇습니다. 루게릭환자는 마지막에 발성마저도 빼앗기게 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지수가 춤을 추는 동안 종우는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루게릭환자는 운동신경이 죽어나가기 때문에 근육이 밭아지게 됩니다. 결국은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남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환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됩니다. 이 점에서도 모리교수는 특별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의존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점이야. 이젠 사람들이 날 옆으로 눕히고 짓무르지 말라고 크림을 엉덩이에 발라주는 게 즐겁단 말일세. 혹은 눈썹을 닦아주거나 다리를 마사지해주는 게 좋아. 난 그걸 만끽하지. 눈을 감고 거기에 빠지는 거야. 그럼 아주 익숙한 일로 여겨지거든.”

 

그런데 저의 선친께서는 그러지 못하셨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길지 않은 시간을 병상에 누워계시면서도 당신의 몸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습니다. 당신의 몸이 구속되는 것에 화를 내셨습니다. 내가 그런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만, 아마도 선친처럼 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마지막 열네 번째 화요일에는 미치가 모리교수께 작별인사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강의는 열세 번째 화요일이었습니다. 이날 강의 가운데 가슴와 닿는 대목은 바로 화해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죽어가면서 평화로울 수 있다면, 마침내 진짜 어려운 것을 할 수 있겠지. 살아가는 것과 화해하는 일.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가 죽음을 두고 소란을 떠는 것은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기 때문이지. 인간이 자연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면 착해진다는 우리네 말이 있습니다. 죽음이 예정되면 주변을 정리하게 됩니다. 그것이 해보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한 일이 될 수도 있고, 평소 마음에 걸려있던 인간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도 마지막까지 남겨 놓은 리스트는 누군가와 화해하는 일이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9472741). 저 역시 먼저 세상을 뜬 누군가와 화해를 했어야 하는데 아직 삶을 정리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분은 저와 화해할 생각이 없었던 듯 그냥 떠나셨지요.

 

죽음을 앞에 두고 초연할 수 있는 마음을 배우게 하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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