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마지막 인사

주혜1 2009. 11. 20. 16:51

젊어서 즐겨보던 소설보다는 비소설류의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것도 나이 들어가면서 변하게 된 독서습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젊어서는 책표지를 열면 끝장까지 독파하곤 하던 독서버릇도 변하게 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건설부차관을 지냈던 이건영 중부대총장이 오랜만에 문단으로 복귀하였음을 알리는 소설 <마지막 인사>는 최근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김모할머니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하여 법원의 판단을 구하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존엄사(최근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은 ‘존엄사’보다는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안락사는 눈초가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먼저 소설이 의사가 주인공이며 병원을 무대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안락사문제를 다루고 있는 점에서 의사가 아닌 작가로서 다루기 쉽지 않았을 것임에도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 하는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다양한 형태의 안락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진호가 인턴수련을 받을 때 직장암에 걸린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에 이르도록 적극적인 연명치료를 제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장이 멎은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는 소극적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과거 수련받을 적에 병실에서 환자가 사망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심장을 되돌려 놓아야 했습니다. 진호의 동료 김덕수 선생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는 적극적인 안락사를 시행하게 됩니다. 바로 직장암으로 사망한 환자의 딸 은영과 결혼하게 된 진호는 임신한 아내에게 악성뇌종양인 수모세포종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게 하지만, 결국은 아내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게 됩니다. 암으로 인하여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아내에게 치사량의 진정제를 투여하여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합니다. 적극적인 안락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투병을 하고 있었고, 의사인 가족에 의하여 죽음을 맞게 되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넘어가게 됩니다.

 

시카고에서 종양병리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한 진호는 완치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제공하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 은영을 죽음으로 몰고 간 수모세포종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노인환자에게 다량의 모르핀을 처방하여 통증을 완화시켜주지만, 환자가 쇼크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진호의 처방을 받아 환자의 죽음에 간여한 간호사 신애가 심적 부담 때문에 사직하게 되고 그녀의 집을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신애와 재혼을 하게 됩니다.

 

진호의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적극적인 철학은 결국 교통사고로 뇌출혈을 일으킨 노인이 회생불가능한 상태에 빠지게 되자 부인의 부탁을 들어 생명유지장치의 전원을 꺼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문제는 환자의 아들이 부친의 사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진호의 행동의 정당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구하게 됩니다. 결국은 진호의 행위는 유죄판결을 받게 되어 의사면허가 박탈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바로 1997년 12월 낙상으로 인하여 뇌출혈이 생겨 서울 보라매병원으로 후송된 환자에 대하여 응급수술을 시행한 뒤, 보호자 강력한 요구에 의하여 퇴원을 승낙한 의사와 보호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이 내려졌던 세칭 ‘보라매병원사건’이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사회적인 논란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근의 세브란스병원 사례에 대하여 법원은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하여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의사가 제병을 모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진호 역시 자신의 몸 안에서 간암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말기에 이른 다음에서야 알게 되는데, 수술과 화학치료 등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와 같은 그의 판단은 적극적인 치료로 얻을 수 있는 여생의 질과 암과 공존하면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질을 비교하여 후자를 선택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는 약물을 사용하여 죽음을 선택하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진 싸움이야. 난 암과 싸우기보다 암과 친해지려고 그래. 그러다 보면 아마 암이 나를 놓아줄지도 몰라. 이제 남은 일은 좋은 일만 생각하는거야.”라는 말을 종양전문의 덕수에게 하는 진호의 말에서 스스로를 포기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환자의 의지가 치료에서 중요한 몫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암을 치료해온 의사가 너무 쉽게 자신의 적에게 투항하는 것이 옳은지도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명치료의 중단은 곧 한 생명이 마감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는 상황, 예를 들면 극심한 통증을 견디며 연명하는 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존엄하다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명치료의 중단은 복잡다단한 사회학적 현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사로서 진호의 선택은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공식적으로 안락사를 인정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에도 회복불가능 상태를 판단하는 데 있어 적어도 전문가 2사람의 판단이 일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판단오류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료현장을 실감나게 전달하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작가는 소설 전반에 걸쳐 의학용어를 영어로 적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은영의 뇌종양을 메둘로부라스토마로 적고 있는 것(물론 수모세포종이라는 우리말을 괄호 안에 넣기는 했지만 독자들은 알 수 없는 용어입니다.)은 물론 환자를 치료할 때 사용되는 여러 가지 처치 역시 영어로 적고 있어, 상황이 급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전혀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진호가 레지던트 3년차에 청혼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은영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체적으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은영의 뇌종양 수모세포종은 대부분 20세미만의 청소년에게 발생하는 종양으로 예후가 그리 좋지 않은 녀석입니다. 그야말로 희귀한 케이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도 진호가 다량으로 모르핀을 투여했던 수모세포종의 사례는 그보다 더 확률이 떨어지는 노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산부에서 악성종양으로 화학치료를 하게 되면 대체적으로 치료적 유산을 실시하고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항암제가 태아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하겠습니다.

 

어떻든 회복가능성이 적은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관련 전문가들이 중지를 모아 지침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인사>는 적절한 시기에 출간되어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