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40분동안 정말 '거대한 침묵'을 마주했었다.
그 침묵에 제대로 잠기기 위해, 추웠지만 밤까지 기다렸다.
참 놀라운 작품이라는 말 밖엔...
프랑스 알프스에 자리잡고 있는 이 대수도원(The Grande Chartreuse)은
카르투지오회(칼투시안이라고 부르는)의 모원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처음으로 공개된 이 곳의 수도생활에 관한 필름이다.
음악도 전혀 없고, 조명도 일절 쓰지 않았다.
그래서 빛이 부족한 곳의 화면입자는 엄청 거칠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의 장면이 보여주는 빛과
눈내리는 소리까지 들릴만큼 섬세하게 전달해주는 음향은
그 어떤 효과보다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아... 침묵이 어떤 빛을 띠고 있는지,
침묵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느꼈다.
사실 보는 시간 내내 그 침묵에 압도당했다는 것이 맞으리라.
그들의 모습은 알프스처럼 높은 산꼭대기,
가장 첨예하게 깍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서서
하느님을 부르는 풀이요, 나무들 같았다.
그들의 모습은 내가 대하는 인간이라기 보다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 같다.
내리는 눈, 동그랗게 퍼지는 빗방울의 물결,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천천히 산을 감싸는 구름,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
겨울을 지나 생명을 만끽하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는
세상과 사물 하나 하나는
사람과 동일한 무게의 존재감을 지닌다.
모든 것이 똑같이...
그분 앞에 절대적으로 "있음"을 드러낸다.
침묵의 위대한 힘이다.
모든 것 안에 깃들여진 존재의 신비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해서
(아마도 부활소풍을 나온 것이 아닌지...)
함께 나들이 했을 때, 그들의 자연스런 대화 소리를 처음 들을 수 있다.
아직 한국말로 번역이 안되어서, 그냥 짐작만 할 뿐이지만,
어쩌면 그들의 목소리도 자연의 일부로 그냥 둘 수 있어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작품에서는 언어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언어는 깊은 침묵 가운데 소멸되고,
오직 '말씀'만이 드높이 살아서 숨쉰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감독 : Philip Groening
홈페이지 http://www.diegrossestille.de
단순함과 침묵…봉쇄수도원 일상 162분 | |
다큐영화 ‘위대한 침묵’ 조용한 센세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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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기자 | |
바쁘고 소란스런 일상에 부대끼는 사람들은 곧잘 어디 조용한 산사나 피정센터에서 며칠쯤 세상만사를 잊고 쉬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홀로 그런 곳에 간 세속인은 너무도 고요해 지루하기 그지없는 그 일상에 적응하지 못해 그토록 벗어나려고 했던 세속을 그리워하며 ‘고요한 침묵’ 밖으로 금세 뛰쳐나오고 만다.
그처럼 현대인에게 분주하고 소란스런 삶은 가깝고 단순과 침묵은 멀다. 연말연시는 지나간 해에 대한 성찰과 다가올 해에 대한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 더욱더 삶을 단순화하고 내면을 고요히 할 것을 요구하지만, 다른 때보다 더 소란스럽게 보내야 할 필요충분조건이 풍부한 때이기도 하다. 극장가에도 짜릿함에만 열광하는 연말 관객을 동원하기 위한 블록버스터의 유혹은 더욱 거세다.
다큐를 시종일관 채우는 것은 알프스산맥 1300m 고지의 가톨릭봉쇄수도회인 카르투지오수도원의 자연과 일상뿐이다. 어떤 윤색도 없다. 봉쇄수도원이란 그야말로 외부와 단절돼 자급자족하며 하느님과만 통교하는 수도자들만의 공간이다. 죽어서 뼈조차도 나올 수 없이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그곳에 머물며 자신을 가두는 곳이다. 이 다큐는 조명도, 음악도, 대사도 없다.
독일 출신 필리프 그로닝 감독은 의학과 심리학을 전공해서도 마음속의 침묵을 맛보지 못했던지 ‘침묵을 다룬 구름 같은 영화’를 찍겠다면서 영화감독이 돼 카르투지오수도원에 촬영 허가를 신청했다. 그로부터 무려 19년이 지난 뒤 촬영 허가가 떨어졌다. 그런데 스태프 없이 감독 혼자서만 들어와 독방에서 일상생활을 수도사처럼 함께하며 일체의 조명 없이 수도생활을 방해하지 않고 촬영하라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2년6개월간 촬영한 것이 이 다큐다. 상영시간 162분의 대부분은 수도사가 기다랗게 매달린 종을 잡아당기는 모습과 이어 알프스를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수도원의 산하 위에서 구름의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고요히 앉아서 기도하거나 성서를 읽거나 일을 하는 수도사들의 일상이 그대로 보일 뿐이다. 자극제라곤 없는 2시간42분은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시간이다.
그런데 북촌의 씨네코드 선재에서 지난 3일 단관 개봉한 이 영화는 98%의 좌석점유율을 보이며 12일 만에 관객 1만명을 넘어섰다. 그래서 2주 한정 상영 예정이던 영화는 24일부터 일반 극장으로 확대 상영될 예정이다.
‘인공적 자극제’ 없는 그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한 것일까? 수도사들의 지극히 단순한 삶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지만 마침내 관객의 내면에서 깊은 울림을 가져다준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도록 해준 시력 상실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라며 늙은 장님 수도사가 평화로운 미소를 지을 때, 수도사들이 모처럼 눈 쌓인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면서 순박한 웃음을 터뜨릴 때, 어두운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의 내면에도 빛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마침내 알프스 수도원의 명상은 고요한 객석의 명상으로 이어진다.
바쁜 연말 지방에서 버스까지 전세내 이 다큐를 찾는 사람들에게 단순과 침묵은 ‘잃어버린 고향’인지 모른다. 우리는 왜 그 고향을 찾아야 할까.
소백산의 ‘산위의 마을’ 촌장 박기호 신부는 “평소 말과 행동을 내보내는 데만 급급하면서 살게 마련이지만 침묵은 내보는 게 아니라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을) 듣고, 느껴서 자연의 질서와 신의 섭리를 깨닫는 것”이라며 “트라피스트수도회 같은 곳에서 노동을 하면서도 침묵하게 하는 것은 움직이면서 행동과 말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도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수다와 번뇌를 잠재우고 고요히 내면과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때다. 모든 이의 고향, 침묵 안에서.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위대한 침묵, 하느님의 자비...내 안에서 먼저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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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위대한 침묵/필립 그로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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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느님만', 침묵 속에서 들리는 부드러운 소리
전통적인 엄률봉쇄수도원, 샤르트뢰즈 카르투시안 수도원
하루 한 끼 식사, 미사도 은수처에서 혼자 봉헌
한편 카르투시안 수도원에선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 오후에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산악 행군을 한다. 이는 기분전환이나 레크레이션 차원이 아니라, 운동 부족을 보충하기 위함이다. 비가 와도 취소되지 않는 이 산악행군 때에는 침묵을 깨고 말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주로 영적 대화에 몰두해야 한다. 신학 과정에 있는 수도승들은 수도원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다. 특정 분야의 권위자가 없을 경우, 외부에서 신학교 교수를 초빙한다. 그러나 시험을 치르고 점수를 받는 제도는 전혀 없기 때문에, 일정 시간에 마쳐야 할 진도도 없이 각자의 역량대로 학업을 해나가도록 개별적으로 지도한다. 강의는 주입식이 아니며 철학과 신학을 가슴으로 느끼도록 고무된다.
관상은 보는 것 이상이다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존재하는 여러 방식
하느님께서 너도 몰래.. 너를 보살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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