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이야기

왜 문사철인가?

주혜1 2010. 12. 28. 16:21

지난 9 월 2일 관훈 클럽에서 있었던 송복 교수의 왜 문사철인가?의 발표회를 요약한

하역석님의 글을 옮깁니다.

 

왜 인문학(人文學)인가

하영석

 

 

 

"인문학 왜 해야 하는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어제(9/2) 관훈클럽에서 한 특강 제목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는 2시간 가까운 강의 내내

지성의 산실이라는 우리나라 대학에서 '인문학'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해 냈습니다.

 

 

때로는 그런 현실에 대해 분노하고, 때로는 '인문학이 살아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고 절규했습니다.

다른 나라엔 이런 화두조차 없다고도 했습니다.

시인이 직업일 수 없는 나라가 부끄럽다고도 했습니다.

그 분의 강의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혹시 직접 들으신 회원도 있을 실텐데

잘 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 주세요)

 

 

- 먼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첫째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직업을 위한 학문은 많은 지식을 얻을 순 있지만 지혜는 얻을 수 없다.

지식은 진보하지만 지혜는 진보하지 않는다.

지혜는 변하지 않는 고전 속에 담겨있다.

 

 

둘째는 어휘구사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며칠 전 유력일간지 머릿기사에 '진보학계의 거장 000교수 운운'하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巨匠이란 예술계 인사들이나 손재주가 많은 장인들에게 쓰는 말이지

인문학을 하는 사람에겐 쓰지 않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 필요한 창의력은 아이디어에서 나오고,

이 아이디어는 상황에 대한 개념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며,

이 개념은 곧 어휘에서 나온다.

 

 

이 어휘를 높이기 위해선 시와 소설을 읽어야 한다.

시와 소설은 새롭고, 세련되고, 품위 있는 고급언어를 생산하는

공장이기 때문이다. 시와 소설에서 나오는 언어는 곧 직관의 언어,

감동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지금은 '하이테크'보다 '하이타치'가 성공을 좌우하는 시대다.

 

 

- 왜 역사인가?

 

역사는 통찰의 언어, 지혜의 언어를 제공하는 '경험의 공장'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의 경험이 축적된 것으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역사 속에는 기나긴 인류역사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사건 사고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교훈이 들어있다.

 

 

잘 못된 일들에 대한 분노를 통해 올바른 방향을 잡아 나갈 수 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이른바 '과격파'가 된다.

사회는 절대로 한 번에 개혁될 수 없다. 아주 서서히 점진적으로 바뀐다.

프랑스혁명에서 과격파가 주도함으로 프랑스 사회는 오히려

뒷걸음질 했다. (이 부분은 프랑스역사에 조예가 깊은 방장께서

할 말이 있을 것 같소)

 

- 왜 철학인가?

 

哲, 正也明也思也智也라고 바르게 살고, 밝게 살고,

깊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쓴 책은 모두 철학이다.

철학은 '초월의 공장'이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내 입장,

내 처지, 내 위치'에서 바라보지 않고 멀리 떨어져 볼 수 있는 힘이 된다.

 

 

철학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의심이라 함은 '지적 의심'이다.

의심을 깊게하는 것이 곧 深思熟考다.

요즘 대학생들은 기교경쟁만하지 생각은 경쟁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학생들이 시 300편, 소설 300권,

역사서적 200권, 철학서적 100권을 읽어야한다.

 

 

이상이 저의 짧은 기억력을 추스려 정리한 송복 교수님의 특강내용입니다.

저 역시 이런 인문학기초가 짧아 늘 부족하고,

삶의 여유나 풍성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주제에

어찌 젊은이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만 토론의 본을 보여야 할 국회에서

품위 있는 말보다는 시장잡배들이나 쓰는 욕지거리가 오고가고

드라마나 영화 또한 아름다운 대화나 대사보다는 거친 말이 주를 이루고,

인터넷에선 거의 원수 끼리나 주고받아야 할 막말이 쏟아지고,

그 말로 인해 상대방이 목숨을 잃어도 얼굴을 숨긴 채 좋아하는

지금의 풍토는 정말 아니다 싶습니다.

 

 

올해가 망국 100년이라고 해서 나라가 떠들썩하지만

정작 미래의 주인공들인 대학생들 대부분이 한일합방이 왜 일어났고,

언제 일어났는지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대학입학을 위한 수능과목에서 역사는 선택입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보다는 무조건 남보다 앞서가야 된다는

Digital시대의 젊은이들, 공동체 의식보다는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한 젊은이들을 보면서 못살아도 꿈을 키우며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이 때로는 그립습니다.

 

 

미완성을 위해 연가를 부르는 시인 김승희 님처럼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위해서도,

무더위 속에서도 불철주야 글방회원들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는

방장님의 기대처럼 '글방의 글 모두가 詩로 쓰여 질 그날'을 위해서도

송복 교수님의 외침이 구체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영석/방송인/동아방송예술대 학장, 대전MBC사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