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이야기

[스크랩] 아침에 만나자/ 존 웨인 쉴레터

주혜1 2012. 1. 2. 09:33

지혜가 많으신 엄마 덕분에 난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았다. 엄마는 내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가장 훌륭

한 선생님이셨다. 나와 헤어질 때마다 엄마는 밤에 잠자리에 들

때 하는 인사든 아니면 밖에 외출할 때 하는 인사든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침에 마나자."

 

엄마는 그 약속을 한번도 어기지 않으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목사이셨다. 그래서 신도들 중 누군가 세상

을 떠나면 관 속에 넣어지고 꽃으로 장식된 시신이 목사 사택에

안치되곤 했다. 엄마는 그때 무척 어렸었다. 아홉살 먹은 여자아

이에게 그것은 더없이 무서운 경험이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엄마를 데리고 사택 안으로 들어갔다. 사

택 안에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최근에 죽은 허드슨 씨의 관이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엄마를 벽 쪽으로 데려가 벽에 손을 대

고 감촉을 느껴 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는 물으셨다.

 

"어떤 감촉이니, 바비?"

 

엄마가 대답했다.

"음, 딱딱하고 차가워요."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엄마를 데리고 시신이 놓여 있는 관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바비야, 난 지금 너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시킬 것

이다. 하지만 네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넌 다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다. 자, 손을 들어 여기

관 속에 누워 있는 허드슨 씨의 얼굴을 한번 만져 보거라."

 

엄마는 할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신뢰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지시대로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자, 어떠냐? 무슨 느낌이지?"

 

엄마가 대답했다.

"벽을 만질 때와 똑같은 느낌이에요, 아버지."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맞다. 이 시신은 허드슨 씨가 살던 옛 집과 같은 것이지. 지

금 우리의 친구 허드슨 씨는 그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단다. 바비야, 누군가 살다가 떠난 집을 두려워할 이유란 아무

것도 없단다."

 

이 교훈은 깊이 뿌리를 내렸고 엄마의 전생애에 걸쳐 더욱 풍

성해졌다. 엄마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우리를 떠

나기 8시간 전 엄마는 무척 예외적인 부탁을 했다. 우리가 눈물

을 참으면서 임종의 자리에 둘러서 있는 동안 엄마가 말씀하셨

다.

"내 무덤에는 어떤 꽃도 가져오지 말아라. 왜냐하면 난 그곳에

없을 테니까. 이 육체를 떠나면 난 곧장 유럽으로 날아갈 거다.

너희 아버지는 날 한번도 유럽에 데려가질 않으셨어."

 

병실에선 웃음이 터져나왔고, 그날 밤 우리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우리가 키스를 하고  굿나잇 인사를 할 때 어머니는 미소를 지

으면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만나자."

 

그러나 이튿날 아침 6시 15분에 나는 의사로부터 전화를 받았

다. 엄마가 이미 유럽으로 날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이틀 뒤 우리는 부모님이 사시던 아파트에 들러 엄마의 물건

들을 정리하다가 엄마가 쓰신 매우 많은 분량의 글들을 발견했

다. 그 글들이 담긴 봉투를 여는 순간 종이 한 장이 바닥에 떨어

졌다.

그것은 한 편의 시였다. 난 이 시를 엄마가 쓴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작품인데 엄마가 애송하던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바닥에 떨어진 종이가 이 한 장뿐이

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그 시를 적는다.

 

                     유  산

 

내가 죽었을 때 내가 남긴 것들을 네 아이들에게 주라.

울어야만 하거든

네 곁에 걷고 있는 형제들을 위해서 울라.

너의 두 팔을 들어 누구든지 껴안고

내게 주고 싶은 것들을 그들에게 주라.

난 너에게 무엇인가 남기고 싶다.

말이나 소리보다 더 값진 어떤 것을.

 

내가 알았던,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아라.

네가 만일 나 없이는 살 수 없거든

나로 하여금 너의 눈, 너의 마음,

너의 친절한 행동 속에서 살게 하라.

너의 손으로 다른 손들을 잡고

자유로울 필요가 있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줄 때

너는 나를 가장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은 죽지 않지. 사람들도 그렇고.

따라서 내가 너에게 남기는 것은 오직 사랑뿐....

내 사랑을 모두에게 주어라....

 

시를 읽으면서 아버지와 나는 미소를 머금었다. 엄마의 존재

가 바로 곁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침이었다.

출처 : 성신여자고등학교 13회 동창회
글쓴이 : 김정순(주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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