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이야기

[스크랩] 제갈량과 사마의의 스승님

주혜1 2012. 1. 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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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량과 사마의의 스승님

 

세상에서는 제갈량과 사마의(司馬懿) 두 사람을 원수 지간으로 알고 있지만 어렸을 때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한 동창생 사이였다.

후한 말엽 조정은 썩을 대로 썩고 군웅이 다투어 일어나 천하가 난리 속으로 빠져 들어 갈 때

그들은 이름 있는 스승 밑에서 같이 공부하며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관계였다.

그때는 스승님 집에서 숙식도 같이하며 지난는 것같다.

 

그들의 스승은 옛날부터 전해 오는 천하의 기서(奇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책은 천문 지리, 병법의 용병 포진,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 등의 온갖 내용이

담겨 있는 귀중한 책 이였다.

 

그런데 그 스승은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그 책을 물려 줄만한 제자를 찾아서 줄려고

생각 하고 있었다, 잘 못 전해 주면 백성을 해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뜻과도

어긋나게 될 것 같아서 그 책을 읽고 바르게 쓸 인제를 찾고 있었다.

제갈량과 사마의 두 사람도 스승의 의중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은 두 사람을 데리고 뒷산에 올라가 용병 포진 법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저쪽 산 비탈에서 한 나무꾼이 발을 헛디뎌 대굴 대굴 굴렀다.

그것을 지켜 보고도 스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르침을 계속 했고

사마의도 태연히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곧장 산을 내려가 일으켜 주고 주위에서 약 풀을 뜯어 입으로 씹어

상처에 발라 주고 자기 옷을 벗어 상처를 싸매 주었다.

사마의는 그제사 산을 내려와 제갈량과 나무꾼을 부축해서 집까지 대려다 주었다.

 

그리고 얼마쯤 뒤 제갈량의 아버지가 중병으로 앓는다는 연락이 와서 제갈량은 울면서

스승과 학우에게 작별을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 가서보니 병세는 나날이 중해

부친은 돌아 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스승에게 돌아 왔다.

 

그 후 얼마가 지난 다음 이번에는 사마의에게 그의 모친이 중병 이라고 오라는 전갈이 왔다.

그러나 사마의는 가지 않았다. 가고 난 후 혹시나 스승이 기서를 제갈량에게 물려 줄까 싶어서

편지만 몇 번 띄우고 말았다.

 

그런 후 한달 쯤 후에 스승은 감기가 들어 몸저 누웠다.

두 제자는 약을 달이고 열심히 스승을 보살폈으나 스승의 병세는 더 깊어 지고

어느날 제갈량이 스승에게 달여줄 약초를 캐러 간 사이에 사마의 혼자서 스승의 간병을 하였다.

사마의는 몰래 서재로 들어가 작은 상자 하나를 찾아내어 열어 보니 의심할 여지 없이 기서였다.

옳지 이때다 싶어 사마의는 병든 스승을 버려둔체 그 상자를 짊어 지고 도망 쳤다.

 

제갈량이 약초를 캐 가지고 돌아와 보니 스승은 깨어나 있었다.

스승은 침상 밑에 감추어 두었던 상자 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주면서

내가 죽으면 이 집과 나를 함께 불태워 버리고 될수록 빨리 멀리 떠나 거라

하는 말을 남기고 바로 숨을 거두었다.

 

제갈량은 비통한 심정으로 스승의 집과 유체를 불 태운 후 책을 지니고

멀리 남양까지 갔다. 거기서 열심히 독서에 힘썼다.

 

한편 사마의는 훔쳐온 책을 펼쳐 보니

 나라를 안정 시키려면 반드시 백성을 사랑 해야 하고 효도를 다 하려면

양친을 함께 봉양 해야 하거늘 그렇지 못한 자에게 어찌 책이 전해 질 수 있을 것인가?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진짜 기서가 전해 진 것을 알고는 스승의 집으로 바쁘게 향했다.

 

기서를 빼앗기 위해서 살인이라도 저지를 각오로 갔으나 당도 해보니 스승의 집도 스승도

불태워 지고 제갈량은 어디론가 간 후 였다.

 

제갈양은 역사에 드문 신하요 장수요 지략가였다.

죽기 전에 후주 유선에게 저는 성도에 뽕나무 800주와 자갈밭 15경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식구 의식에는 충분합니다. 더욱이 저는 출정 중이니 별로 쓸일도 없습니다.

저에 대한 것은 관에서 지급 되고 있습니다 사리를 취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죽은 뒤에 집안에 분에 넘친 재물을 축적하여 폐하의 뜻에 거슬리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고 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출정해서 진중에서 죽었다.

 

유비가 유언으로 내 아들이 시원치 않거든 그대가 왕위를 차지하라고

쿠테타를 허락 했지만 끝까지 어린 황제의 신하 자리만 지켜 충성을 다했고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지연혈연 동기동문 등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는 졸장부가 아니였다.

모든 권력을 떡 주무르듯이 막강한 권력자였지만 그가 죽은 뒤 조사해 보니

그의 재산은 그가 말한, 뽕 나무 800그루와 자갈밭 몇 백평뿐 재산을 탐낸 소인배도 아니고

어떤 사람들처럼 대권을 노린 불한당도 아니었다.

그의 묘역도 그의 유언대로 섬서성 면현 동남쪽 정차산에 간소하게 묻혔다.

*자료참고: 중국야사, 제갈공명 평전

출처 : 마산고 25기 동문회
글쓴이 : (허주)최병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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