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벼운 산책길

주혜1 2013. 9. 30. 08:34

가벼운 산책길

              김주혜

이제 널 놓아줄게
너를 둘러싼 사각의 벽,
굳게 닫힌 문
혈관을 들쑤셔대던 바늘 끝에서
이제 널 놓여나게 해줄게
참기 힘든 외로움의 끝에서도 놔줄게
네가 끝내 놓지 못한 시어들의 그물도 거두어줄게
너는
수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리는
예수님의 손에서 낚시의 찌를 얻으려 했고
外島, 천국의 계단에서는
삼십 년을 더 살 에너지를 채워 넣었다고 하더니
너 혼자 자유인이 되어 거듭나러 가니?
연두가 좋다며, 투명함이 좋다며
너만 아는 새로운 세계의 열매를 맛보려고
시와 함께 보낸 그 모든 애착과 열망, 바람들에
빗장을 걸고
전생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려 하는 이 참에
하필 혼을 떼어놓을 게 뭐냐?
네 말대로 가벼운 산책길이라도 오르는 줄 아는 게냐?
그래, 그게 가볍다면 가거라
그리 오랜 항해는 아니었다마는
네가 버거워할 여행이었다면
미련일랑 한쪽으로 비껴놓고
얼룩이 묻은 옷소매랑 벗어버리고
초조해하지도 말고
속삭이듯이 떠나렴.
너를 위해 마련해 놓은 하늘의 정원엔
지금쯤 장미꽃 송이송이 만발해 있을 거네.

이 시는 얼마전 함께 활동하던 동인의 타계를 슬퍼하면서 바친 시입니다. 그랬는데....
어제, 친하디 친한 여고동창생이  그것도 그제 동창회에서 만나, 

예뻐졌다며, 젊어졌다며, 보톡스했냐며 질투서린 목소리로 한껏 놀림을 던지며 헤여졌는데

그랫던 친구가 갔다는 전화를 받고 그 황당함에 펑펑펑 울며울며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을 찾아 입관하고 돌아와

황망히 이 시를 찾아 올려봅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 라고 건넨 인사말이 무색하게스리

입관식의 그녀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다만,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

헌데...! 얼굴을 가리고, 칠성판 위에 뉘어 관 뚜껑을 닫을 때.

내 안에서 짐승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한 마리 짐승이 되어

꺼이 꺼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다 부르다

마지못해 보내주어야만 했습니다. 잘 가! 라는 한 마디로.

 

세상에나 이런 일까지 겪어야 내 갈 곳으로 가는 날이 오는가 싶기도 하더군요

살아서 전철 갈아타고 걸으며 걸으면서도 이것이 살아있는 것인가 싶었습니다.

분명, 어제 건강하게 깔깔대며 웃었던 친구가 오늘 갔답니다.

백억 이상이나 되는 재산도 과학자인 그녀의 남편도 교수이며 박사인 두 아들과 성악가인 사위 그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었더란 말입니까? 내가 부러워한 그녀의 삶이 이것이라면....!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묵주알을 돌리며, 비신자인 그녀의 영혼을 거두어 위로해주시라는 맥없는 기도의 의미는 남았을까요?

 

하루 하루를 정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황혼이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의 황혼도 그처럼 아름다워지려면,?

욕심없는 삶, 봉사하는 삶, 베푸는 삶,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떠난 그녀가 위대하다고, 훌륭하다고, 불꽃같이 살다 갔다고는 햇으나

과연 그녀를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편과 자식 부모 형제들에게는 큰손이었던 그녀의 행색은 어떨 땐 노점상 아줌마엿으니..!

한 번은 손때 묻은 그녀의 비닐 가방이 돈가방처럼 보여서 가방 좀 바꾸라고 했다가 무안을 당했더랬습니다.

그녀의 그 백억이나 되는 재산가에다, 내 친구의 행색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참고 참고 있다가 넌즈시 건넸더니

고개를 획 돌리며 싸구려 라고? 하면서 가방의 편리함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순간, 무안함에 아무 것도 없는 외톨이인 내가 어줍잖게 충고를 했다 싶어서 내 오지랖을 나무래고 말았습니다만,

그렇게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간

우리의 위대한 삶의 달인 이춘영! 무엇이 그리 맨날 급하고 바쁘고 늘 할 일이 많았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녀는 갈 길이 바빴던 것입니다. 나처럼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공간을 죽이며 머리속에서 하루종일 보내는 무의미한 삶

이 아닌 그녀만의 세계에서  바쁘게 살면서 많이 남기고 급히 갈 일이 있었던 겁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추억해 봐도 그녀는 남다른 삶을 살다가 간 것만은 분명합니다

위대하고, 훌륭하고,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춘영이 우리의 친구!

그녀를 위해 깊이 고개 숙여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