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 문학과지성사 | 2012-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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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어의 끝이다. 언어가 달리고 달려 종착했을 때 시가 된다. 종착한 언어의 모습은 그것이 일반적으로 취했을 보통의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것은 모두 버린 채 깨끗한 정수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열매와 꽃과 나무를 버리고 씨앗으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볼 때 범인은 놀라지 않는다. 똑같이 보이는 씨앗들이 수북히 담긴 자루를 보며 감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시를 볼 때 슬퍼지는 범인도 있다. 열매와 꽃과 나무를, 죽었다 깨나도 하나의 씨앗으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의 첫 시를 읽자마자 시집을 사버렸다.
첫 시 '외계(外界)'에는 양팔 없이 태어난 화가가 나온다. 화가는 양팔이 없어 입으로 붓을 문다. 입에 문 붓을 움직여 그는 종이에 바람을 그려 넣는다. 바람엔 형체가 없기에 종이에 남긴 흔적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화가는 절벽을 기어올라(두 팔이 없는 화가가 어떻게 절벽을 올랐을까? 입술은 부르트고 이빨이 다 깨졌겠지) 몇 달 씩 입을 벌렸다. 입 속에 바람을 머금고 붓을 물면 바람이 그려진다고 생각했을까? 그러다 문득 화가는 자기가 그리는 것이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이었음을 깨닫는다.
보통 사람인 나는 이 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시뿐만아니라 시집에 수록된 거의 모든 시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시는 비문에 비문을 엮어 만든 미로 같았다. 뒤의 단어는 앞의 단어의 의미를 지우기 위해 애썼고 뒷 문장은 앞 문장의 진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시집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바람을 그리는 화가의 모습에서 아무도 이해못하는 시를 쓰는 시인의 그림자를 봤기 때문이다.
나는 시인의 외로움을 안다. 이것은 외계의 존재지만 내계에서 태어나버린 자의 숙명이다. 외로움은 시인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드는 게 이 외로움이기에 시인은 죽을 때까지 외로워야 한다. 시인에게서 시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간단히 엉터리라고 경멸한다. 그러나 명백히 앞에 있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에 쏟아내는 시인의 분노도 헤아려보자.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시를 그것도 두 번이나 꾹꾹 마음 속에 눌러 담은 이유는 시인의 분노가 그의 삶을 까맣게 불태울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자궁 안에 두고 온 그의 두 손을,
꼭 붙잡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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