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타타타(如如)놀이/ 박제천

주혜1 2017. 5. 6. 11:16
  1. 박제천/ [타타타(如如) 놀이]
    지난여름 배코를 쳤다. 삭도나 삭발기를 사용하지 않고, 면도기만 이용해도 충분했다. 멋이 아니라, 뒷머리칼만 조금 남아서 이발을 하자니 그렇고, 안하자니 지저분하다. 일단 깎아치웠더니, 시원하고 깨끗해서 좋았는데, 가을이 깊어가자 머리통이 선선해지기 시작...한다. 실내에서도 모자를 써야 한다. 만사에는 이렇듯 일장일단이 있다. 배코친 다음에 쓴 신작시는 문예지 발표 후에 보여드리고, 여기서는 오래 전 작품을 소개한다. 이때는 언젠가는 배코를 칠 걸 예감하고, 미리 상상해서 쓴 작품이다. 제목의 타타타는 불교용어로 진여(眞如)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다. 하지만 나는 같은 뜻의 여여(如如)를 많이 쓴다. 굳이 ‘타타타’를 제목에 내건 것은 그 음(音)이 당구알이나 바둑돌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2. 당구를 처음 배울 때는 사람들 머리가 당구알로 보였어요
    바둑을 배울 때도 사람들 머리가 바둑알로 보였지요
  3. 머리털을 밀고 거울을 보았더니
    반짝반짝 빛나는 내 머리통이 당구알 같기도 하고
    바둑알 같기도 했어요
    배우고 싶은 무엇이 더 있어서가 아니었건만
    누군가 내게 더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나 봐요
  4. 그래서 딴사람들 머리부터 살펴 보았어요
    그랬더니 목 위에 있어야 할 머리통을
    엉덩이에 매달고 다니거나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더군요
    아예 금고에 넣어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만나보았어요
  5. 그런데, 사람과 달리
    나무며 꽃들은, 바위며 산들은, 물이며 바람들은
    골치아픈 머리통을 그냥 잊어버리고 살더군요
    천삼라 지만상처럼 그냥 그렇게 제자리에 살더군요
  6. 두두물물 모두가
    눈 마주칠 적마다 그저 여여하게 살라 합디다
    그래서 나 역시
    반짝이는 내 머리통 따위는 잊어버리기로 하였답니다
    --박제천/ [타타타(如如) 놀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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