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슈아, 드쿠르 야티.
“Yeshu‘, dkur yāti.”
“예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교회력으로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오늘, 우리는 이 한마디가
골고타 언덕에서 마지막 숨처럼 흘러나오던 강도의 기도를 다시 듣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터져 나온 이 애절한 목소리는 시간을 넘어 오늘 우리 마음에도 깊은 울림으로 스며듭니다.
십자가 셋이 세워져 있던 골고타.
못이 살을 찢고 피는 흘렀고 조롱과 침묵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참혹하고 잔혹한 순간에도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두 강도도 그 기도를 들었습니다.
같은 고통, 같은 십자가, 같은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서.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서로 다른 문을 열었습니다.
한 사람은 끝까지 저주했습니다.
고통 앞에서 원망만 자라났습니다.
용서의 기도가 그의 귀를 스쳐 갔지만 그의 마음은 닫혀 있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 오른쪽 강도는 달랐습니다.
그는 용서의 기도를 들으며 침묵 속에서 흔들렸습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르다.”
그는 처음으로 사랑을 보았습니다.
평생 힘으로 빼앗고 두려움으로 살았던 그가 지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예수님에게서
가장 충만한 생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죄인이었습니다. 변명할 것도, 가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기억해 달라고,
예수님의 마음 속 작은 자리 하나만을 구했습니다.
그 고백은 절망 끝에서 피어난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는 기억됨을 구했지만 예수님은 함께함을 약속하셨습니다.
언젠가를 구했지만
예수님은 오늘을 주셨습니다.
저 멀리 문 밖을 원했을 뿐인데
예수님은 그를 낙원의 중심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시는 사랑.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는 자비.
우리가 자격 없을 때 가장 먼저 빛나는 하느님의 마음.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나는 어느 십자가 옆에 서 있는가.
저주의 언어를 붙잡고 있는가,
아니면 은혜를 향해 돌아서는가.
예슈아, 드쿠르 야티.
이 짧은 기도는
그 옛날 강도의 절규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숨이고 울음이며 희망입니다.
주님께 기억된다는 것,
그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새로운 길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주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우리의 낙원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천박한 신앙/ 양승국신부 (0) | 2025.11.27 |
|---|---|
| 빈방의 미학/ 조광호신부 (1) | 2025.11.24 |
| 가난이 가르치는 두 개의 문/조광호신부 (1) | 2025.11.17 |
| 돈, 돈, 돈, 퉤,퉤 퉤. 돈 귀신 물러가라 ㅡ조광호신부님 (0) | 2025.11.17 |
| 강화... / 조광호신부 (0) | 2025.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