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아버지별.19 -집으로

주혜1 2006. 11. 24. 18:04
 

집으로



 아까부터 할머니께서 부르신다. 꼼짝 않고 책만 판다. 창밖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사과 궤짝 위 삼국지마저 오들오들 떨고 있다. 며칠 전부터 뱃속에 넣은 거라곤 멀건 흰죽뿐이다. 오늘은 그 흰죽조차도 없다. 배고플 텐데 뭐라도 먹어야 공부가 되지. 할머니의 해소기침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양손으로 귀를 막는다. 고무신짝 끄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할머니 손에서 바가지를 뺏는다. 그 집 애가 내 짝이란 말야. 볼멘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간다. 한참이나 서성이다 말없이 바가지를 받아들고 골목길을 뛰어나오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소복소복 내린 눈에 파묻혀버린 쌀알들……. 흐린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내리는 이 눈이 모두 쌀이었으면. 야속한 함박눈이 펑펑펑 내리는 섣달 그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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