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시평

삶을 감싸 안기 그리고 하나 되기 / 신덕룡

주혜1 2006. 11. 29. 21:51
시인이 한 해에 한 권의 시집을 내는 예는 매우 두물다. 한 해에 시집 한 권 분량의 시를 쓰기도 힘들거니와, 대부분의 시집이 기왕에 발표되었던 시를 중심으로 엮어진 것임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이는 한 권의 시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시간적 거리는 시인에게 있어 정신적 변화과정으 한 단계를 포함한다. 새삼스럽게 시간적 여우를 운운하는 것은 신인의 첫시집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신인에게 있어서 첫시집은 변화과정이 아닌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보이는 데 의미가 있다. 데뷔 이후 첫시집 사이의 시간적 거리는 시인으로서의 그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간에 해당된다. 우리는 여기서 데뷔 이후 그간의 작업결과를 평가하고, 시의 방향을 예견할 구체적인 단서를 찾게 된다. 이런 점에서 김주혜의 첫시집[때때로 산이되어]는 시인 자신에게 있어서나 독자인 우리에게 있어 상당한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이 설레임은 새로운 시 앞에서의 흥분으로 인한 즐거운 떨림이다. 더우기 90년[민족과 문학]가을호에 [스트레스로 등단한그가 데뷔한 지 1년 정도 지나 다시 한 권의 시집을 우리에게 내놓는다는 것은 시에 대한 녹록지 않은 자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주혜 시의 가장 큰 특징은 그가 대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세계를 열어간다는 것과 극히 일상적인 하찮은일에서 발견하는 삶의 진실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는 <때때로 산이 되어>가 도시적 삶에 바탕을 둔 시나, 민중적 삶을 노래하는 시와는 달리 전통적인 서정에 바탕을 두고 시직업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삶에 대한 내성적 관찰에 집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후자의 경우는 그의 시가 구체적 현실에 뿌리를 내린 견고한 구조를 바탕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견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두 가지 축면을 중심으로 그의 시를 살펴보자.

<때때로 산이 되어>에 수록된 많은 시편들은 자연과의 교감이나 자연의 일부로서의 삶이 주는 기쁨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여름이 간다
빗물에 흔들리는 가지
가지 끝에 하늘이 모인다
하늘은 날개를 달고
긴 침묵으로 기다리고 있다
종이 되고 싶었다
땅속 깊숙이 흩어진
숨겨진 불씨의 이야기
뿌리마다 털어내어
까만 눈빛으로 알알이 박힌
소리하지 않는 악기가 된다
닿는 대로 휘어잡는 가지 춧리며
허리 굽은 가지 사이
흐르는 향기로 남는다.
-열매 전문

위의 시는 자연의 오묘한 섭리 속에서 빚어지는 생명현상을 놀라운 이미지의 변용을 통해 노래한다. 이 생명현상은 [빗물에 흔들리는 가지]끝에서 일어난다. 가지 끝은 하늘이 모이는 공간이며 침묵속엔[종이 되로 싶었던]소망과 [땅속 깊숙이 흩어진/ 숨겨진 불씨의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다. 내적 성숙의 계기로서의 침묵이고 잉태된 생명이 결실로 다가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쳐[소리나지 않는 악기]가 되고 향기로 전환된다. 여기서 시인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단적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자연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속에 들어가 생명의 변화과정에 참여하고자 한다.
자연과 나 사이에 어떠한 틈새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일체를 향한 그의 시심은 다음과 같은 일체감의 세계를 보여준다.
(ㄱ).그 때 나는 그의 눈빛 저 너머로 자주빛 불기둥을 보았다.
그 빛이 부채살처럼 퍼지며 나의 온 몸을 부태웠다.
나는 내 타버린 살점들을 그의 가슴에 묻으며
오랫동안 닫혀져 있던 결빙의 문을 열었다

초록으로
< 때때로 산이 되어 바라보는 까닭> 10-15행

(ㄴ)나는 왠지 자구 허기가 졌다.
목이 말랐다. 목마른 사과나무가 되어
그늘진 빛 사이 바람의 숨결을 듣는다
피리소리도 들려왔다
손가락 마디마다 푸르른 즙액이 튀었다
목소리, 작은 목소리들이 들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가을, 사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6-12행

(ㄱ)시에서 보듯 겨울은 더이상 죽음의 계절이 아니다. 얼음과 추위와 눈보라로 모든 생명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던 겨울은 계절의 겉모습일 쁜이다. 오히려 겨울은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고, 얼음속 깊숙이 생명의 씨앗을 튀우는 계절이다. 시인이 [눈빛 저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의 큰 움직임을 보고, [결빙으 문을]여는 것은 자연으 숨겨진 이치를 밝혀냄으로써 가능하다. 자연으 이법에 자신으 삶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한걸음 나아가 자연과 나의 일체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ㄴ)의 시가 자연과 나의 일체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편이다. 여기서 시인은 자연과의 교감 속에 얻어지는 생의 기쁨을 보여준다. 이 기쁨은 자연의 풍요로움에서 온다.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서 성장에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갈증은 자연의 샹명력을 받아들이려는 욕구이기도 하다. 여기서 화자는 돌연 한그루의 사과나무가 된다. 나와 사과나무와의 동화현상은 생명이 지님 온갖 비밀을 스스로 체험하는 관덩이 된다. 이 신비 체험의 순간은 [아무도 없었다] 라는 절대적 상황으로, [바람의 숨결ㄱ]과 [피리소리]를 듣는 고요에서, 또 스스로 [프르른 즙액]을 지닌 나무가 되어 있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따라서 완전한 일치를 통한 환희는 성숙의 기쁨으로 나아간다. 나와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이 움직임의 결실로서의 사과가 새로운 존재로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요즘과 같은 혼탁한 세상에 자연을 자연으로 바라보기도 힘들다. 맑은 햇살과 흘러가는 구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 숲속을 가로지르는 청량한 바람 그리고 결빙의 상태에서 시작디는 생명의 신비로운 변화.....이를 바라보고 자연과의 교감을 맛보는 일조차 먼 과거의 기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김주혜는 이를 바라보고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데서 나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