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시평

새로운 기의를 찾아서/ 고광식

주혜1 2006. 11. 29. 21:54
새로운 기의를 찾아서


1.

현대의 시세계는 불투명성과 불확정성이라는 시대의 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현실 사회주의의 파산은 20세기의 거대한 꿈이 실패했음을 증명했다. 20세기에 있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세계의 인식과 이해의 축으로 기능하며 대립과 갈등을 겪어왔다. 이제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동서양의 사상 대립으로 양분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동양의 공동체 정신과 서양의 개인주의 정신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에 있어서 주체도 목적도 없는 작품의 양산을 가져왔다. 리얼리즘 문학이 사회주의 붕괴로 타격을 입었으며, 문학은 주체와 목적을 잃고 정보사회 속에서 그 죽음을 예고하며 정보사회의 현상과 유착관계에 빠지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가 갖고 있는 변화와 욕망은 문학 내부에 있어서 뜨거운 존재론적 논쟁을 유발함으로써 문학의 본질을 교란했다.

시는 더 이상 정보화 시대에 현혹되어선 안 되며 가벼운 디지털 욕망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시는 시 고유의 본질적 힘을 되찾아 주체가 죽은 이 시대와 맞서 대응해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가 갖는 자본의 잣대로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대중성에 함몰되지 않고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미래의 방향성을 찾을 때 우리는 시에서 초월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정보사회라는 거울에 비친 문학의 상을 통해 문학의 존재를 파악해선 안 된다. 그것은 정보사회라는 타자를 통해서 비로소 구성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라캉식으로 말한다면 문학은 정보사회라는 거울의 상을 문학으로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떠나야 한다. 이와 같이 우울한 시대에 김주혜 김영남 두 시인의 시집, <아버지별>과 <모슬포 사랑>은 한국시의 새로운 기의로써 사유의 폭을 넓히고 깊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현대의 시가 동일한 형식의 틀로 상투적인 공간 확장에만 힘썼던 측면이 강했다면 두 시인이 갖는 기표의 방법이 새로운 의미를 구축했다는 사실에 미학적 성과가 있다.



2. 김주혜의 <아버지별> ― 은폐된 사랑의 계보학



김주혜의 시들은 가족사적 경험과 인식 체계에서 개인과 가족이 어떤 방식으로 연계되어있고 구별되며 그런 경험은 개인에게 어떠한 시적 효과를 얻게 되었는지를 계보학적으로 드러낸다. 유교문화권의 개인은 가부장적 거대한 틀에 예속되어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사회의 질서는 윤리적 덕목을 가치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게 되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나와 가족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구조적 틀을 갖고 있었다. 양에 해당하는 가족과 아버지는 음에 해당하는 나와 여성에게 끊임없이 억압하며 구속하는 권력구조를 갖게되고 그 구조 안에서 내재되어 부식되는 자아는 김주혜에게 있어서 시적 탐구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러면 개인은 유교 문화의 거대한 틀에서 어떻게 변화를 갈구하고 최종적 목표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아버지라는 거울 속에 비춰진 자아는 어떻게 표상되는가. 아버지에 대한 관찰과 경험은 김주혜의 시에서 아주 새로운 역동성으로 도입되었다는 데 기의적 의미가 있다.



그는 평생을 소리소리 지르며 살았다. 살잽이꽃 한 장 한 장 발뒤꿈치 밑에 깔고 으흐흥 으흥 으흥 흥타령으로 목청을 턴다. 결발부부 수십 년에 산 첩첩, 주름살 첩첩, 장지문에 들기름 쩔 듯 목구멍에 배인 육자배기, 칵, 가래 올리는 일갈로 휘몰이, 잦은몰이, 시원시원 넘어간다. 70평생 따라다닌 두두두두우 그 눔의 북소리가 웬수로다. 시절이 하 분분하니 일모청산 하직하고 눈 질끈 감고 떠나버릴 텐데,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관속에 들었건만, 나는 못 잊겠네. 푸너리 장단이 메너리조로 바뀌고 괭매, 괭매, 괭매 삘리리리이…… 산 설고 물 설은 이곳이 어드메냐. 궁글채 손에 들고 진양조로 넘어간다. 오매오매 우리 오매 불쌍한 우리 오매 알토란 같은 처자식 놔두고 나 혼자 어찌 가란 말이오. 으흥 으흥 으흐흥…… 소리소리 구절마다 가지색 살잽이꽃이 이슬에 젖은 눈가로 오슬오슬 가라앉는다.

― 「아버지별·5 ―살잽이꽃」전문



으흐흥 으흥 으흥, 두두두두우, 삘리리리이, 으흥 으흥 으흐흥…… 등의 기표가 갖는 기의는 시대적 권력 앞에 순탄치 못한 아버지의 삶이 어떻게 파편화되어 주관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버지가 누리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도피로써의 자유로 표상되고 있다. 억압당한 주체가 시대의 권력 앞에 어떤 방식으로 출구를 찾는가가 김주혜 시의 길찾기이다. 화자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는 또 하나의 권력 주체를 형성하고 있다. 아버지의 어쩔수 없는 행로는 '결발부부 수십 년에 산 첩첩, 주름살 첩첩, 장지문에 들기름 쩔 듯 목구멍에 배인 육자배기, 칵, ' 가래 올리는 울분으로 나타난다. 이 시의 특징은 시대의 권력을 산 첩첩으로, 그 앞에 예속되는 개인의 주체를 주름살 첩첩으로, 시대와 대응하는 개인의 행위가 육자배기, 칵, 가래 올리는 울분으로 나타나는 점층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미지의 연결과 역동성이 신음소리화되고 있는 표현기법에서 우리는 한국시의 방향성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이 '살잽이꽃이 이슬에 젖은 눈가로 오슬오슬 가라앉는' 서정적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 또한 우리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미학적 깊이를 김주혜 시인이 감각의 촉수로 더듬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시적 이미지의 방향성이다.



광릉 숲속에서 사슴풍뎅이를 보았다. 투명한 밤색 뿔이 마치 뱃머리처럼 휘어졌고, 찌르찌륵 짝짓기를 하다 뿔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는 그 눈이 오래비를 닮아 있었다. 불쌍한 오래비. 물대접에 젓가락을 담고 노 젓는 시늉을 즐겨 했다던 신동 오래비를 잃고, 어머니는 나팔꽃처럼 오므라들었다. 아궁이의 불꽃은 시야를 어지럽혔다. 잊어버리세요, 어머니. 오래비 잡아먹고 너는 뭐 될래? 나는 슬그러니 뒤로 물러난다. 기집애 동생만 여덟이나 보다니. 어머니의 눈에는 먼지와 나무가루가 소용돌이친다. 나 때문에 대가 끊긴 우리 집의 짐을 벗기 위해서 나는 평생을 어머니 어깨 위의 어둠을 걷어내야만 했다. 찌르찌륵 사슴풍뎅이는 짝짓기를 끝내고 붕붕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있다. 나팔꽃이 활짝 피어 있는 새벽에.

― 「아버지별·15 ―사슴풍뎅이」전문

유교 문화의 권력이라는 통로를 지나와 화자는 광릉 숲속에서 사슴풍뎅이를 보게 된다. 외재적 위치에서 내재적 문화의 계보를 보는 시인의 눈은 사슴풍뎅이의 '뿔'에 주목하게 된다. 뿔이 갖는 남근적 이미지에서 유교 문화의 잔영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음을 화자는 '오래비를 닮았다'는 표현으로 담론화한다. 동격의 이미지로 나타나 있는 어머니를 통해서 화자는 유교 문화가 이뤄낸 계보적 아픔을 대가 끊긴 우리 집이라고 말한다. 사슴풍뎅이가 짝짓기를 끝내고 붕붕 어디론가 사라져 가는 모습에서 ' 두두두두우 그 눔의 북소리'로 70평생 따라다닌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사슴풍뎅이와 아버지가 일체가 되고 어머니와 화자가 일체가 되는 동일성은 문화와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술적 문제들로 흥미를 유발하는 상징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주체의 죽음이 담론화되는 현대는 주체의 존재를 지속 가능한 정체성 있는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가능성을 과거의 문화에서 현재의 존재를 반성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김주혜 시인의 역할에 우리는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