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꽃다발을 말리면서/ 이 향 아

주혜1 2007. 6. 13. 11:43
꽃다발을 말리면서 - 이향아


누가 내게
이와같은 슬픔까지 알게 하는가.
꽃이 피는 아픔도 예사가 아니거늘
저 순일한 목숨의 송이 송이
붉은 울음을 꺾어다가
하필이면 내 손에서 시들게 하는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처럼
꽃은 매달려서 절정을 모으고
영원히 사는 길을 맨발로 걸어서
이렇게 순하게 못박히나니
다만 죽어서야
온전히 내게로 돌아오는 꽃이여
너를 안아 올리기에는
내 손이 너무 검게
너무 흉하게 여위었구나.

황홀한 순간의 갈채는 지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빈혈의 꽃과
무심한 벽과
굳게 다문 우리들의 천 마디 말뿐
아무것도 없다.

죽어가는 꽃을 거꾸로 매다노라면
물구나무서서 솟구치는
내 피의 열기,
내 피의 노여움,
내 피의 통곡.
꽃을 말린다, 입술을 깨물고
검게 탄 내 피를 허공에 바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