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내가?
'선택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이가 들어 자는 중에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 나는 ALS로 죽는 것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서른셋 한창 나이인 대학 영어강사 달시 웨이크필드(Wakefield)는 2003년 10월14일 '루 게릭' 병으로 알려진 ALS 진단을 받습니다. '근위축성 측상경화증'이라는 이 난치병은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제대로 걷거나 움직이지 못하고, 나중엔 음식을 삼키는 것은 물론 말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채식주의자인데다 달리기를 좋아하던 그녀로서는 날벼락같은 선고였습니다.
"왜 하필 나지?" 막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만났고, 아이를 낳고 싶은 희망에 사로잡혀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긴 겁니다. 그녀는 내일 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헛되이 사는 대신, 남은 날들을 기쁘게 보낼 것을 다짐합니다. 그리고 아이 낳는 일에 도전합니다.
이번 주 나온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달리기》(랜덤하우스)는 웨이크필드가 발병하면서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남긴 기록입니다. 그녀는 운명을 원망하는 대신,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아있어서, 아침에 일어나 혼자 옷을 입을 수 있어서, 내 손으로 청바지 지퍼를 올릴 수 있어서, 셔츠에 머리를 넣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갈퀴로 나뭇잎을 긁어 모을 수 있어서, 변속레버를 움직이면서 차를 몰 수 있어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어서, 전등을 켤 수 있어서 정말로 감사하다. 심지어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조차 감사하다. 예전엔 이 모든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웨이크필드는 2004년 9월12일 3.7㎏의 건강한 아들 샘을 낳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도 거의 나오지 않고, 손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그녀는 '내가 말하고 걷는 법을 잊어버리는 사이 샘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법과 미소 짓는 법, 다리를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고 썼습니다. 웨이크필드는 컴퓨터에 의지해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이 책의 최종 교정을 보면서 생의 마지막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책이 나온 지 두 달 뒤인 2005년 12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논픽션은 그렇고 그런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마음을 가다듬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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