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정미경, 뭉크
Teile Dich Nacht (밤이여 나뉘어라)
소프라노와 실내 앙상블을 위하여

수록음반 (4 번째 트랙)
Three poems by Nelly Sachs for soprano and chamber ensemble
Dorothy Dorow (soprano),
Ensemble Intégration Saarbrücken, Hans Zender
# 사춘기
...낯선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파리한 소녀의 눈빛이 불안
하게 흔들린다. 발가벗은 소녀는 두 팔을 늘어뜨려 벗은
몸을 가리려 하고 있다. 이미 몸에서 움트는 관능의 기운
을 감추기엔 팔이 너무 가늘다. 오므린 무릎을 벌리면, 비
릿한 첫 생리혈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릴 것만같은 소녀 ...
M이 옆에서 중얼거린다.
"난, 이게 뭉크의 자화상이라고 봐"
"그래? "
"일생을 신경쇠약과 죽음에 대한 강박증에 시달린
뭉크의 표정이 저러지 않았을까"
(...중략...)
...삶의 모퉁이에서 가끔 M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M의 얼굴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그녀의 긴 팔이다.
흰 반소매 교복 아래 칠 센티쯤 보이던 ... # 마돈나 마돈나는 그러니까.
내 마누라가 마돈나야
벗으면 똑같아
절정에 이르게 해주면 꼭 그런 표정을 짓는다니까?
(...중략...)
P는 입을 길고 동그랗게 벌린 채 눈을 부릅뜨고는
두손으로 귀를 틀어막는다.아아, 소리 지르듯 목을
길게 뽑으며.벌린 입을 쳐다보고 있자니
내 귀에만 들리지 않는절규가 실내에 가득 찬 것 같다.
M은 못 본 척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매혹적인 인형극의 무대 뒤를 우연히 보아버린
어린 소년처럼 나는 발바닥이 간지럽다.
(...중략...)
낮에 들렀던 그 미술관에 도난 사고가 있었다 한다.
<절규>와 <마돈나>, 두 점을 가져갔는데,
한낮의 미술관에서 총기를 든 그림 도둑들은 순식간에 그림을 떼어내서
그야말로 절규하는 관객들 틈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한다.
너무도 유명해서 팔지도 못할 그림을 왜 가져갔을까?
욕망과 어리석음이 없다면, 세상은 클라이맥스 없는 흑백의 무성영화 같겠지.
# 절규
"절규는 왜 없지?" 실내를 둘러보며 나는 그 그림을
찾아보았다. "<절규>는, 많아." 절규는, 많아.
그 말은 어쩐지 비장하게 들린다.절규가 많다니.
마지막 방에 이르러서야, M이 절규는 많아,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하얗게 칠해진 채
관람객을 위한나무의자 하나 없는 그 방은 온통
절규의 방이었다 (...중략..)
교실만 한 그 방엔 모두 <절규> 시리즈로 채워져 있다. 단색 판화. 혹은 채색 판화. 조금씩 색채의 톤이 다른 회화작품. 연필 스켓치, 큰 <절규>, 작은 <절규>, 그리다 만 <절규>. 무채색의 <절규> 붉은 <절규>, 검은 <절규>, 희미한, 손바닥만 한, 고막을 찢을 듯한, <절규>.한순간, 나 역시 그림 속의 그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귀를 막고 싶다. 그 방은, 너무 날카로워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고음역의 절규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중략...)
정말 견딜 수 없을 땐,
차를 달려서〈절규>의 방에 가서 서 있다 오곤 했어.
내가 여기서, 누구 앞에서 울겠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늘 울었어.
소리 내어 엉엉 울면서,
붉은 신호등 앞에선 브레이크도 밟으면서, 눈물이 턱에서
모여 허벅지가 뜨뜻해지도록 뚝뚝 흘러내리는데,
지나가는 사람은 없나, 좌우도 살피면서,
그렇게,
그래도 살겠다고 운전을 해서 저 길을 다시 돌아오는 거야.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1863.12.12~1944.1.23)
2006 이상 문학상 제 30회 대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 - 정미경
프롤로그 같은 작가의 글 본문의 行 그대로 마저 쳐 올립니다 - (어감이 이상허네...;;)
--오랜 세월 머나먼 독일 땅에서 평생을 살다간 윤이상. 그는 처절한 조국 상실의
심정을,북구에 망명 중이던 유대시인 넬리 작스의 시 <밤이여, 나뉘어라>에 곡을
붙여, 불멸의 음악시극으로 남겼다. 내가 이 시극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 음울한
외침과도 같은 발성과, 신경을 긁어대는 듯한 불협화음에서, 이 작중인물들이 내
면에서 자아내는 절규를 들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텍스트의 장본인 넬리 작스(Nelly Sachs 1891∼) 시집
'Teile dich Nacht' (밤이여, 나뉘어라) 에 나오는 시 3 편 같이 올립니다
1.Diese versch Tu"r (굳게 닫힌 문)
그 뒤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너는 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본다.
너의 두 눈은 네 몸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가?
아니면 이미 죽음 속에 있는가?
죽음은 열려 있고?
비밀들은 그 뒤에 비로소 살아있다.
2.Vor meinem Fenster (내방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
말라붙은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
너는 그 새를 본다
너는 그 새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다르게
나는 그 새를 본다
나는 그 새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다르게
똑같은 태양계 안에서
하지만 다르게
3.Teile dich Nacht (밤이여 나뉘어라)
너의 빛나는 두 날개는
경악으로 떨고 있다.
나는 이제 떠나려 하고
네게 피비린내 나는 밤을
돌려주게 될것이기에
2006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밤이여. 나뉘어라> 는
10 페이지에서 48 페이지 까지의 짧은 단편이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나서
포스트 올리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읽었습니다
(1인칭 주인공 직업이 영화감독)
한 여인을 추억하는데 얼굴보다 흰 반소매 교복 아래 칠 센티쯤 보이던 긴팔이
될 수도 있다는 작가의 눈이 신선하고 예리하다 느끼던 기억이 되살아나네요
포스트 잇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이 부분은 왜 붙였지?
다시 떼어 다른 귀절에 붙이기도 하면서...
역시 冊을 읽어야겠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좋은 게 많네요
전경린, 함정임, 김영하 등등...
어울리지 않게 오전 내내 창 열어둔 채
독서삼매경에 빠져 이제사 정리하여 올립니다
P.S:
윤이상 선생님 자켓들입니다...
오래 전부터 자켓 그림 찾아보는 것도 취미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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