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어개 너머의 삶- 장이지

주혜1 2008. 10. 24. 21:55
25. 장이지「어깨 너머의 삶」 (낭송 장이지) 2008년 10월 20일 댓글 (1)
어깨 너머의 삶 장이지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소매 끝이 닳은 양복이 한 벌 있을 따름이다.
그 양복을 입고 딸아이의 혼인식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평생 개미처럼 일했으며 비좁은 임대 아파트로 남은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굽은 등 투박한 손을 들키는 사람이다.
그는 그 거대한 손으로만 말을 할 줄 알았다.
언젠가 그가 소중하게 내민 손 안에는
산새 둥지에서 막 꺼내온 헐벗은 새끼 새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새근대고 있었다. 푸른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어두움의 음습한 숲에서 홀로 빛나던 새는
지금 어느 하늘을 꿰뚫고 있을까.
그의 손에 이끌리어 가 보았던 하늘 구름 바람 태양 투명한 새.
그는 그런 것밖에 보여줄 줄 모르던 사람이다.
그의 내민 손 안의 시간.
그의 손에서 우리는 더 무엇을 읽으려는가. 그는 손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진짜 그를 한 번도 보지는 못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내민 손에 있지 않았다. 어깨 너머에 있었다.
닳아빠진 양복을 입고 선술집에 앉아
그는 술잔을 앞에 둔 채 어깨 너머에서 묵묵했다.
그 초라한 어깨 너머를 보고 싶은데 차마 볼 수 없는,
엄두가 나지 않는 그는 어깨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다.
● 출처 :『작가와사회』 2008년 봄호 ● 詩. 낭송 - 장이지 : 1976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2000년 『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 등단. 시집 『안국동 울음상점』이 있음. 때로 사람의 손은 입술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우선 손의 생김새 자체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지요. 그리고 손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미묘한 감정 상태까지 읽어낼 수 있어요. 손 자체보다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그 사람의 이미지는 달라집니다. 돈을 세고 있는 손보다는 새를 보듬고 있는 손이 아름답고, 무엇을 움켜쥔 손보다는 모든 걸 내려놓은 빈 손이 한결 자유로워 보이겠지요. 어깨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우리는 어깨 너머로 적지 않은 것을 읽어냅니다. 우리가 살면서 얻은 지혜의 팔할이 실은 어깨 너머 배운 것들이죠. 2008. 10. 20. 문학집배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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