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에곤 실레와 크림트

주혜1 2008. 10. 26. 21:45

예술가들이 행한 자기 묘사를 우리는 자화상이라 합니다. 자화상은 화가가 자신을 하나의 주제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화가들은 곧잘 이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자화상 속 자신의 눈을 통해서 감상자를 바라봅니다. 자화상 속 화가의 눈과 자화상의 눈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눈은, 단지 바라다보는 감상 이상의 것입니다.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그림 속 자신의 눈을 통해 감상자에게 자신의 내적 고백을 은밀히 전달하고 자신의 감정을 전이시킵니다. 그리고 감상자는 화면 속 화가의 눈을 통해 그 화가의 환희와 고통, 분노와 두려움, 희망과 그리움을 그리고 화가의 영혼까지도 전달 받습니다. 실레 자화상의 특징은 관객으로 하여금 실레의 자화상을 통해 그를 바라보게 만들며 실레 역시 여러 포즈로 관객을 관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자화상은 자신 내면의 풍경과 흡사하여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키는 거울이었습니다.

표현주의 작가인 에곤 실레는 19세기말  20세기 초에 함스부르크 제국의 몰락과 함께 비관적이고 무질서한 오스트리아 빈 사회 전반에 그리워진 이중적 윤리의식을 자신의 정신적 고민과 아버지의 패륜적인 죽음의 비극을 통해 혼돈의 상황을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한 화가입니다.

그는 감정적, 육체적으로 소외, 고통스럽던 어린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감하고 에로틱한 인체묘사, 거칠고 뒤틀린 터치, 자폐적인 자화상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의 자화상은 에곤 실레가 비틀린 바깥세상과 인연을 맺는 자신만의 방식이었습니다.                    

큰 이미지 보기   - 벌거벗은 자화상 1910년 -

저는 특히 클림트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남다른 색채감과 표현력이 정말 뛰어난 화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클림트는 에곤실레의 스승입니다..

에곤실레의 작품을 보면 클림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의 황혼 무렵이라고 할 수 있는 1890년 6월 12일 도나우 강변의 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살이 되기 전에 이미 무언가를 그려내기 시작했고, 일곱살 무렵엔 두툼한 노트 하나 가득 철도역의 기차를 드로잉 해 낼 정도로 실레의 미술적 감각은 탁월했습니다.

실레가 어릴 적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와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실레는 16세 되던 해 자신의 대리인이던 삼촌과 무관심한 어머니가 마음내켜하지 않았지만 비엔나 미술학교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이곳에서도 특별한 재주를 보였지만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교육자들은 그의 재주를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스승은 실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악마가 너를 내 수업에 들여보냈구나. 어디가서 내가 너의 선생이라 말하지 말거라." 그는 이런 아카데미식 교육을 달가와 하지 않던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중도에서 포기합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07년, 실레는 당시 비인 분리파의 수장격이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주변을 엿보며 그에게 접근할 기회를 찾습니다.

그를 만난  클림트는 실레의 드로잉을 작품을 보고 나서 "재능이 있군요. 너무 많아요."라며 그의 비상한 재능을 인정해줍니다.

이후 실레는 클림트의 막대한 영향(아르 누보 양식과 소재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실레는 클림트도 분명히 가보고자 했으나 결코 갈 수 없었던 영역까지 밀고나감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실레가 클림트와 달랐던 것은 클림트가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하고 두리뭉실한 에로티시즘으로 포장한 것을 실레는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기 때문입니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여성은 비록 남성의 잘린 목을 들고 있더라도 정사 중인 여자처럼 만면에 홍조를 띠고, 몽롱한 눈초리로 타인에게 시선을 건넵니다.

섹스 어필이란 점에서 만 보자면 클림트의 그림들은 후대의 핀업 걸(pin up girl) 사진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실레의 그림들은 클림트에 비해 훨씬 더 도발적입니다.

그는 여성의 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거나 심지어 수음을 하고 있으며, 그런 자신을 어쩔 수 없이 훔쳐보게 되는 입장에 처한 관객들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봅니다.

<빨간 블라우스를 입고 등을 대고 누운 발리>를 보면 그렇습니다.(마치 '이 저질들아!' 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는 당시 비엔나 사람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현실과 꿈의 간극 속에 감춰진 불안과 중산층 부르조아지들의 허위의식을 파헤쳐 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런 위선들을 증오한 것은 아닙니다.

그 자신이 오히려 이런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인간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의든 아니든 감추고 싶은 상처를 들추어 낸 사람은 어느 세계에서나 미움을 받기 마련입다. 그는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살아있는 내내 그런 적개심을 품은 사람들로 인해 고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