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10월말의 일요일.
박진홍 화백의 관훈 갤러리 개인전.
박진홍 화백과의 처음 느낌은 혼란스럽고 소름끼친다는 느낌이었다.
사람의 얼굴의 형상이지만 나이프로 긁혀진 붓자국이 형상 자체를 더욱 알아보기 힘들게 하였다.
하지만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는 순간, 작품은 깊은 심연, 신비스러운 색의 변화, 어두움, 고뇌, 허무, 마음 속 깊이 내재된 갈망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에게는 뭉크의 절규를 연상케 하였다.
박화백은 5년전에 산 속에서 2년동안 그림만을 그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폐쇄된 공간에서의 작업에서는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대부분의 작품이 자화상을 의미하지만, 작가는 모든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그림 옆에 붙여진 제목 때문에 보는이가 작품에 집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무제"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무제" 자체가 엄청난 제목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품에서 제목에 의해 편견이나 선입견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특별했고, 작품 자체에 몰입하도록 하는 순수한 작가정신이 느껴졌다.
뭉개어진 사람의 얼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신 건지 집요하게 물었고, 작가님은 "나 자신도 무엇을 그린 것인지 묻고 싶다.",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내 작품이다" 라는 말을 했다.
작가는 세상에 대한 부조리를 느끼며, 작품에는 사회성이 담길 수 있다고 했다.
박화백은 작가들은 광대와도 같다고 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처럼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의 작품활동이 광대와 같은 것이라면, 그의 실제 내면은 작품과 다른 것인지 말이다.
실물 피아노위의 바이올린의 작품.
고풍스러운 피아노와 함께 바이올린을 든 사람의 형상이 더욱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뭔가를 사색하는 듯한 사람의 얼굴
작가는 보는 이들이 이거 나무 위에다 그린 것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나무같은 느낌을 살려서 그렸다고 했다.
그가 산 속에서 2년 동안 작업을 한 것, 세상에 대한 부조리, 그리고 자연에 대한 동경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목재라는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특이한 것은 전시실 내에서 장중한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는데, 그 중에는 반젤리스의 음악이 있었다.
작품을 그릴 때도 그런 음악을 들으면서 그린다고 한다.
작품의 느낌과 비슷하게 비장하고 장엄한 음악이 시종일관 울려나오고 있었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 한 초상화를 보고 굉장한 충격과 감동을 받아서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 그의 작품의 대부분이 "자화상"인 것도 그런 영향이 아닐까 한다.
미카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이라는 작품을 인상깊게 읽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심연, 신비, 어두움, 절망, 다양한 색의 조화, 복잡한 감정의 얽힘과 같은 다면적인 느낌을 받게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작품이 어두움에서 다양한 색채를 시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해를 보는 사람 ( 이 작품도 제목이 없으나, 어둠에서 빛으로 움직여가는 시점이라고 작가가 설명해 준 제목이었다. )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자화상과 상반되게 이마 부근에서 밝은 광채를 느낄 수 있는 작품.
어둠에서 빛의 세계로 전환해가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나이프로 긁는 기법은 대학 시절, 그림을 그리다가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안들어 칼로 긁어내는 습관이 있었는데, 작품을 칼로 긁어내다보니 어느 순간 긁혀진 그림 그 자체가 작품이 되어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는 붓터치를 하고 칼로 긁어내고 이런 작업을 계속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작품과 자신이 소통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붓을 놓는다고 한다.
박진홍 화백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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