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 충돌인가, 종교 갈등인가/최재완
영국인 고고학자 조지 스미스(George Smith 1840-1876)는 갑자기 책상에서 일어나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면서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이렇게 미친 짓을 하지 않고서는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밤낮없이 풀어오던 점토판 설형문자의 기록을 완벽하게 해석해낸 것이다.
그가 해석을 끝낸 점토판은 1872년 티그리스 강변의 한 왕궁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세상을 뒤집어놓을 만큼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점토판에는 BC2000년 경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oth)가 적혀 있었다. 길가메시는 BC2800년 경 고대 수메르의 우르크(Urk)시를 통치한 왕이었다. 그는 만년에 현자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을 찾아나섰다. 우트나피시팀은 태초의 홍수에서 살아남아 영생을 얻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시팀에게서 들은 대홍수 얘기는 이러했다. “신들은 교만해진 인간들을 멸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우트나피시팀에게만 방주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하라고 말해주었다. 우트나피시팀은 목수들과 함께 7일 만에 배를 만들었다. 그는 방주에 가족과 온갖 짐승을 태웠다. 그러자 거대한 폭풍우가 일어났고 세상은 멸망했다. 홍수가 그치고 7일이 지난 후 우트나피시팀은 비둘기, 제비, 까마귀를 날려보내 물이 빠졌는지 확인했다. 까마귀가 방주로 돌아오지 않자 그는 물이 완전히 빠졌음을 알았다.”
점토판에서 확인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길가메시는 실존인물이고,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의 생존 후 800년이 지난 BC 2000년경에 기록된 서사시다. 구약성서가 본격 작성되고 기록된 시기는 BC 6-5세기부터다. 그러니까 길가메시 서사시는 구약성서보다 최소한 1500년이나 앞선다.
그렇다면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방주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다. 이 유사성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고고학자들과 사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 얘기는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얘기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여러 민족에게 구전된 ‘대홍수’ 얘기를 유대인들이 슬쩍 빌려서 자기들 얘기인 것처럼 꾸며 구약에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 구약에 기록되기 1500년 이전에 이미 있었던 “죄지은 사람들을 물로 심판한다”는 메소포타미아 설화를 유대인들이 주인공만 우트나피시팀에서 노아로 바꿔서 구약에 옮겨놨다는 얘기다.
조지 스미스의 이 발견으로 19세기말 유럽사회와 기독교(카톨릭+개신교)는 커다란 충격과 함께 일대 위기를 맞았다. 구약에만 유일하게 존재해야할 ‘대홍수’ 심판이 이미 그보다 15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구전돼온 흔한 얘기였음이 기록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대한 믿음과 유일신 사상에 큰 흠집이 생겼다. 노아의 방주 얘기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복사판이었다.
이 발견 이후 기독교계와 유럽사회는 우물쭈물 사태를 못 본 척하며 넘어갔다. 그 이후 1·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이 사건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더 이상 이 사실을 후속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길가메시 서시시에 관한 고고학적 발견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을 듯 하다. 특히 우리나라 개신교 교도들은 더욱 그러리라 생각된다. 설령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도 부정했을 것이다. 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성서에 거짓이란 있을 수 없어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한 부분을 이루었고, 기독교는 이스라엘에서 잉태된 종교이므로 메소포타미아 대홍수 얘기를 빌려와서 구약에 담았으리라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실제 그 같은 일이 벌어졌음이 고고학적 발견으로 증명됐다.
AD 476년 서(西)로마가 멸망한 이후 유럽 문명을 떠받친 두 기둥은 히브리즘(Hebraism)과 헬레니즘(Hellenism)이다. 히브리즘은 야훼를 숭배하는 기독교를 말함이고, 헬레니즘은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고대 그리스 문명 - 특히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세계화한 그리스 문명 -을 뜻한다. 그리고 이 두 요소는 모두 오리엔트, 즉 동양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BC 3200년 경 오리엔트 문명, 즉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상한 뒤 이 문명은 에게해의 미노아 문명으로 흘러들었고, 미노아 문명은 다시 그리스 문명을 꽃피우게 했다. 12-15 세기의 르네상스도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가치를 되찾아 재조명하자는 유럽의 개화운동이었다.
헬레니즘 역시 오리엔트 지방에서 꽃피워 아시아·유럽지역으로 전파된 세계화된 그리스 문화였다. 그리고 헬레니즘은 동서양 문명·문화를 한 차원 더 승화시켜 연결한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에 따라 2000년 전부터 동서양은 서로 상대에게 의존해 상호보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갔다. 종교, 역사, 문화, 철학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학문과 가치가 그러했다.
기독교 역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태어났고, 성경 이론의 상당 부분이 동양의 힌두이즘 및 불교와 그 유사성이 매우 가깝다고 한다. 어떤 종교든 그것이 글로벌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면 그 종교의 경전은 동서양의 모든 가치를 포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결국 총론은 비슷하되 각론과 그 색깔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세계적인 종교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고로 어느 종교든 다른 종교를 서로가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미 고찰했듯이 세계적인 종교는 모두가 동서양의 종교관과 철학, 가치를 골고루 포용하고 섭렵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 어느 분야든 굴곡과 갈등이 있듯이, 종교 분야에도 갈등과 충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일 줄 아는 조화로움이 있을 때 해소되고 서로 발전할 수 있다. -Nero production에서 펌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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