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촛불에게 외 2편 / 윤문자

주혜1 2011. 2. 15. 14:25

촛불에게

 

                               윤문자

 

 

가까스로

 

치음齒音으로 말을 건넸더니

 

초경처럼 찌르르 울어버린 소녀였다가

 

살래살래 고개를 젖는 방년芳年의 처녀였다가

 

이윽고 활활 타오르는 중년의 여자였다가.

 

 

 

 

꽃잎 유언

 

                      윤문자

 

꽃나무 그늘 아래

 

나비가 한 마리

 

떨어져 있다

 

그가 남긴

 

유언장

 

나도

 

 

잎.

 

 

분홍 장갑

 

             윤문자

 

처음엔 손을 잃어버린 것 같았지

 

어머나 내 장갑, 하고 두 손을 비비다가

 

아! 맞다 잃어버린 건 장갑이지

 

손만 안 잃어버렸으면 됐지

 

장갑이야 다시 사서 끼면 되지

 

장갑을 잃어버리고 나서

 

손의 존재가 생생하게 살아나게 되었어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 상점 진열대에서

 

똑같은 장갑을 만난다면 그때 다시

 

어머나 내 손, 하고 두 손을 비비게 될 때까지는

 

잃어버렸다는 생각까지 잃어버리기로 했어.

             -시집, 분홍장갑(문학아카데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