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게
윤문자
가까스로
치음齒音으로 말을 건넸더니
초경처럼 찌르르 울어버린 소녀였다가
살래살래 고개를 젖는 방년芳年의 처녀였다가
이윽고 활활 타오르는 중년의 여자였다가.
꽃잎 유언
윤문자
꽃나무 그늘 아래
나비가 한 마리
떨어져 있다
그가 남긴
유언장
나도
꽃
잎.
분홍 장갑
윤문자
처음엔 손을 잃어버린 것 같았지
어머나 내 장갑, 하고 두 손을 비비다가
아! 맞다 잃어버린 건 장갑이지
손만 안 잃어버렸으면 됐지
장갑이야 다시 사서 끼면 되지
장갑을 잃어버리고 나서
손의 존재가 생생하게 살아나게 되었어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 상점 진열대에서
똑같은 장갑을 만난다면 그때 다시
어머나 내 손, 하고 두 손을 비비게 될 때까지는
잃어버렸다는 생각까지 잃어버리기로 했어. -시집, 분홍장갑(문학아카데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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