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서정범-
결혼을 하고서 얼마 안 되어 있었던 일이다.
아내는 비위가 약한 편이라 식사 때 불결한 이야기가 나오면 슬그머니 숟가락을 놓았었다.
그러던 아내가 첫아기를 낳은 후 달라진 일이 생겼다. 아내와 저녁을 함께 들고 있는데 아기가 옆에서 생리적인 작업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 자식의 생리적인 작업의 소리지만 입맛이 달아나 아내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숟갈을 놓았다.
아기가 작업이 끝난 것을 살핀 아내는 숟갈을 놓고 기저귀를 척척 갈더니 다시 숟갈을 들고 푹푹 퍼서 먹는 것이 아닌가. 난 이상해서 아내에게 밥이 맛있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무엇이 더럽냐며 내 몸에서 나온 아기가 내 몸에서 나온 젖을 먹고 나온 것인데 황금조각같이 아름답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자의 아름다울 미(美)는 양(羊)과 대(大)가 합쳐진 글자이다. 양고기는 맛이 있어 많이 먹는다고 해서 ´맛나다´가 ´아름다움´의 뜻을 지닌 자로 된 것이다.
이렇듯 중국사람은 아름다움을 맛에서 느끼는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오늘날 중국요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이아닐까. 그런데 우리말 ´아름답다´의 어원은 무엇일까.
´아름답다´의 ´답다´는 여자답다, 학생답다, 꽃답다와 같이 접미사로서 명사를 형용사로 전성시키는 구실을 한다. ´아름답다´의 ´아름´은 명사라 하겠는데 옛말에서 내것[私有]의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아름답다는 ´내것답다, 나답다´의 뜻을 지닌다고 하겠다.
내 자식의 몸에서 나온 배설물까지도 ´아름답게´ 보는것은 바로 ´아름답다´의 어원과 공통된다고 하겠는데 내 자식의 것이기 때문이리라. ´고슴도치 제 새끼 함함하다´는 속담도 있거니와 아무리 곰보일지라도 서로 사랑하게 되면 오목오목한 데마다 사랑이 샘솟듯 퐁퐁 솟는다고 한다. 내 사람 내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 것답다´ ´나답다´의 생각이 나에게서 내 가족으로, 내 가족에서 이웃으로 퍼진다면 황금조각의 아름다움이 곳곳마다 샘솟듯 퐁퐁 쏟아질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인칭의 복수를 나타내는데, 어근(語根) ´울´은 본디는 사람의 뜻을 지니는 말이다. 어른(成人)의 ´얼´ 사람[私]의´알´과 ´울´은 같은 어원을 지니는 말이다. 몽골(mongol)어에 올오스(olos, 人)가 있는데 어근은 ´올´이다. 이렇듯 ´울·얼·알·올´은 사람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우리´가 복수를 나타낸다는 것은 사람을 개인적인 면에서 인식한 것이 아니라 협동체의 하나로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들, 당신들의 복수를 나타내는 ´들´도 본디는 사람의 뜻을지닌 말이다. 꾀돌이 할 때 ´돌´, 그 또래 할 때 똘(돌) 키다리 할 때 ´달´과같이 사람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나´라고하는 말은 자음 ㄴ에 모음은 ㅏ다. ´너´는 ㄴ과 모음은 ㅓ다. ´이니, 저니´의 ´니´는 ㄴ과 모음 ㅣ이다. ´이니´는 ´이분´ 또는 ´이 사람´의 뜻을 지닌다. ´누´가 할 때는 ㄴ과 ㅜ고, ´당신네, 승혜네´의 ´네´는 ㄴ에 ㅔ다. 사람을 가리키는 ´나, 너, 누, 니, 네´ 등이 자음 ㄴ과 모음의 차이에 따라 어사가 분화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언어분화의 하나의 현상이지만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나와 너 등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가 모두 같은 어원을 지닌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는 나와 너가 따로의 것이 아니라 나와 너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을 볼 수 있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남[他], 놈[者], 님[主·君]도 같은 어원을 지니는 말이다.
너나할것없이 현대의 물질문명은 나를 잃게, 잊게 하는 경우가 있다. 물질문명의 껍데기 속에 웅크리고 나만을 지키려고 했지 ´너´와 ´나´를 하나로 툭 터놓고 서로의 교류를 잃고 잊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답지´ 못할 때에는 분수에 맞는 처신을 못 한다. 아름답다의 어원에서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내 것답다´ ´나답다´가 되려면 나를 되찾고 나를 살피고 나를 확인하는 일이며 너를 나와 같이 여기는 아름다운 일이며,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길이라 하겠다.
나 아닌 것을 ´나답게´ 여기는 것에서 우리 민족은 ´아름다움´을 발견해 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은 시각적이거나 미각적이거나 청각적인 것이 아니고 ´아름답다´ 어원에서 보여 주는 바와 같이 공동체 의식을 지닌 정신적인 심미안(審美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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