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스크랩] 제10회 노작문학상(露雀文學賞) 수상시

주혜1 2012. 2. 13. 09:47

2010년 제10회 노작문학상(露雀文學賞) 수상시

 

 

다행한 일들

 

김소연

 

비가 내려, 비가 내리면 장롱 속에서 카디건을 꺼내 입어, 카디건

꺼내 입으면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조개

기가 만져져, 아침이야

 

비가 내려, 출처를 알 수 없는 조개껍데기 하나는 지난 계절의 모든

바다들을 불러들이고, 모두가 다른 파도, 모두가 다른 포말, 모두가

른 햇살이 모두에게 똑같은 그림자를 선물해, 지난 계절의 기억나

않는 바다야

 

지금은 조금 더 먼 곳을 생각하자

런던의 우산

퀘벡의 눈사람 아이슬란드의 털모자

너무 쓸쓸하다면,

 

봄베이의 담요

몬테비데오 어부의 가슴장화

 

비가 내려, 개구리들이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려, 언젠가 진짜 비가

리는 날은 진짜가 되는 날, 진짜 비와 진짜 우산이 만나는 날, 하

의 위독함이 우리의 위독함으로 바통을 넘기는 날,

비가 내려,

 

비가 내리면 장롱 속 카디건 속 호주머니 속 조개껍데기 속의 바다

물고기들이 더 깊은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모두가 똑같은 부레

지녔다면? 비가 내릴 일은 없겠지,

비가 내려, 다행이야

 

*출처: <문학과 사회>, 2010년 여름

*수록시집: 김소연 시집 <눈물이라는 뼈> 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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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10회 노작문학상(露雀文學賞) 수상자로 김소연 시인 선정



제10회 노작문학상(露雀文學賞) 수상자로 선정된

김소연 시인

 

노작문학상(露雀文學賞) 감상적인 서정시를 추구해 온 홍사용의 사상과 민족애,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대내외에 널리 알림으로써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고양하고 문학을 통해 좀더 아름답고 순수한 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제정되었는데 노작문학상운영위원회가 주관하고 화성시가 후원하는 2010년 올해 제10회 노작문학상(露雀文學賞) 수상자로 김소연 시인이 선정되었다.

 

김소연 시인은 1967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여 가톨릭대 국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하였으며 1993년 《현대시사상》에 시 〈우리는 찬양한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으로 『극에 달하다』(1996),『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눈물이라는 뼈』(2009)와 산문집 『마음사전』(2008) 등이 있고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 중에 있다.

 

이 상은 매년 1회씩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제1회 노작문학상 수상자로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를 펴낸 안도현 시인이 선정되었으며, 이후 이면우·문인수·문태준·김경미·김신용·이문재·김행숙 시인 등이 수상한 바가 있다.

--- 수상소감 -----

나는 내 시가 싫습니다

 

김소연

 

세상은 나날이 비루해지고 있는데, 시인의 언어는 나날이 아름다워지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는 건지, 그것을 질문하기 위해 또 한 편의 시를 씁니다. 쓰고 나면 또다시 실의에 빠지고 치욕을 느낍니다. 어째서 이것은 박제된 야생동물처럼 되고 마는 걸까, 어째서 이것은 창백한 밀랍인형처럼 되고 마는 걸까, 언제나 나는 내 시에 대한 혐오에 시달립니다.

 

나는 내 시가 싫습니다. 파리해서 싫습니다. 나는 시가 싫습니다. 시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싫습니다. 땀처럼 짜지도 않고, 눈물처럼 맑지도 않고, 밥처럼 든든하지도 않아 싫습니다. 주먹처럼 휘두를 수 없어서 싫고, 칼처럼 찌를 수 없어서 싫고, 피처럼 낭자하지도 못하여 싫습니다. 나는 특히, 요즘의 내 시가 싫습니다. 감수성의 과잉, 시정신의 과잉, 시적이고 미적인 것의 과잉, 태도의 과잉, 진심의 과잉, 이 모든 초과들이 싫습니다. 길 위를 함부로 지나가는 과적차량처럼 느껴져서 싫습니다.

 

누군가는 내 시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고맙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의지가 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매혹이라고도 말합니다. 누군가는 아프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시시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소중하다고, 누군가는 엉터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말들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당신의 해석들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을 때에 겪었을 법한, 무수한 오해이자 무수한 결례들이 나에게 점점 더 온순한 시를 쓰게 합니다. 얼마 걷지 않은 시인의 길이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사랑에 관해서 당신들의 가장 안쪽에, 자객처럼 숨어 있고 싶어졌습니다. 사랑을 재현하지 않고 제시하기 위해, 복사씨 살구씨처럼 웅크려 있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간절해집니다.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가는 한 시인의 모습을 내게서 봅니다. 제대로 된 여자가 되어가는 한 시인의 모습을 내게서 읽습니다. 내가 분명히 꿈꿔왔고 기다려왔던 것이지만, 이 꿈을 폐기하고 싶어 간절해집니다. 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가 한 발짝 한 발짝 세상을 향해 뒤뚱거리며 걸어 다닐 때에나 나올 법한, 그런 노래들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도 된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간절히 듣고 싶습니다. 저는 이 상을 그래도 된다는 뜻으로 받겠습니다.

 

 

 

노작문학상 수상소감

출처 : ♣늘푸른 나무♣
글쓴이 : 예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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