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시인은 이미 아카데미 행사때마다 자주 뵈어서 얼굴은 익숙해 있었지만
내가 늘 그렇듯이 얼굴따로 이름따로 시 따로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카데미 편집부에 잠깐 있을때 김주혜씨의 시를 받아 매킨도시 컴퓨터로 펼쳐놓고 하나 하나 읽어보며
내 정서와 맞게 가슴에 잔잔하게 와 닿는 시를 여러개 발견하고 어떻게 생긴 분일까 하고 궁굼히 여겼었다
그 궁굼증은 김주혜 시인이 아카데미를 방문하여 가까운 시일안에 풀렸다.
얼굴을 보는 순간 이미 알고있었던 분임을 알고는 얼굴따로 이름따로의 내 모자람을 또 한번 뉘우쳤다
이번에 시집이 완성이 되어 나도 잠시나마 편집에 관계가 되었다는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가벼운 흥분까지 느끼며 시집을 펼쳐들었다
편집할때 여러번 읽었던 시 들인데도 시의 느낌이나 정서가 원고로 볼 때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옴을 느끼며
나 혼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김주혜씨의 신작 시집을 읽다보니 역시 처음 볼때 부터 내 마음에 와 닿던것이
다시 봐도 좋구나 싶다
참 표현을 기가막히게 했구나 싶어 내 메모장에 메모까지 해 두었던 시 부터 소개해 보고자 한다
내린천, 레프팅 / 김주혜
그렇게 신나게 놀아줄 줄은 몰랐어라
내 허리를 감싸고
내 목을 끌어안고
은밀한 몸짓으로 가슴을 더듬더니
파르르 떨리는 두 다리를 감싸더니
숨소리도 거친 물마루가 성큼 다가서더니
순간, 페로몬 향기에 취한 벌처럼
비틀거리는 나
숨이 막히고 팔다리가 풀어지며
내 몸을 안고 빙글빙글 뒹구는 그의
몸을 끌어안으며 작살에 꿰듯
한몸이 되고 말았어라.
그저 늘 묵묵히 흐르기만 하더니
그저 늘 궁시렁거리기만 하더니
그저 늘 어깨춤만 추더니
시인은 내린천에서 레프팅을 타는 상상을 하며 사랑의 유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잘못하면 유치한 발상이 될수도 있는 정경을 레프팅 타는 놀이에 둘러대어
참으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표현 하고 있다
한 행씩 읽을 때 마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나오며 "뭘 했다는 소린지 다 안다 다 알어 " 하는
농담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리프팅 탈때 그 울렁울렁 하며 빙글빙글 돌때의 즐겁던 광경도 아니 떠 오를수가 없다
시의 오묘한 맛이다
감칠맛 나는 시라고 아니할수가 없다
박제천시인의 해설을 읽어보아도 김주혜 시인의 진솔하고 재치있는 점을 지적하며 명쾌한 어법과
재치있는 반전을 지적하였다
한번 읽은시가 머릿속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그 시의 이미지가 선명하고
표현장치가 잘 가동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벙어리 사랑' 이라는 시를 두번째로 소개 하고 싶다
벙어리 사랑 / 김주혜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무가 입을 열고 나무가 몸을 열어
내 몸의 독소를 빨아먹으면
나는 해독된 채
나무의 입에
나무의 가슴에 수런수런 움을 틔운다.
한 열정적인 나무를 내 안에 들여앉히고
나는 벙어리 사랑을 시작한다.
눈멀고 귀먹어도 나는 상관이 없다.
내 가슴은 기쁨의 물결로 언제나 촉촉하니까
온통 부스럼을 앓는 사랑이라도 나는 괜찮다
그 부스럼조차도 꿀처럼 달콤한 냄새를 뿜으며
내 눈먼 사랑 앞에 반짝이는 이름 하나로 남아 있으니
나무가 뜨거운 육질의 입김을 내밀던 어느 날
나는 이 버거운 나무를 베기로 한다.
내 사랑의 운명은 외로움
완강한 열정으로 자리잡은 나무의
마디마디에 내 겨울을 매달고
연초록 숨을 쉬고 싶은갈망을
니제 이슬방울에 묻혀
나는 내 나무를 잃는다.
가슴속에 가지를 움트게 하던 그 봄날의 기억만으로
나는 나무로 부터 돌아서서 아득한 피안으로 흘러갈수밖에
나무가 떠나버린 빈산에서 이제 나는.
시를 쓴다는것은 사랑을 하는일이라고 어느 시인의 에세이 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시인은 세상을 사랑하고 나아가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 보고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 깊이 사랑을 가득 품을 수록 말은 아끼는 것이다
본시 사랑이 말로 사랑한다 사랑한다 남발 하는 사람치고 정말로 깊이 사랑하는 것 인지는 의심이 가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외국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사랑한다고 표현을 해야 남자가 여자한테 이혼당하지 않고 살수 있다지만
한국 정서에는 평생 신혼시절이 아닌 이상엔 사랑한다는 소리를 거의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사랑이 없어서 그런것일까? 그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 처럼 끈끈한 정으로 얽히고 섥히는 국민성도 드물것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벙어리 사랑을 하는것이라는 소리가 맞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제목부터가 말 못할 무슨 애틋한 사연이 있었나 보다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주위 사람 들에게 늘 마음으로는 좋아하면서도 표현 한번 안 하고 사니 나를 두고 하는 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시가 또한 우리가 늘 쓰고 싶어하는 시가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시도 나에겐 가슴에 남는 시로 다가왔다
3연에 "내 사랑은 외로움" 이라고 시인은 고백한다
사랑은 사랑할수록 외로운 것이다
더더욱 말 한마디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벙어리 사랑은 얼마나 외로울 것인가
떠나간 사랑의 상처를 꺼내어 가슴속 커가는 나무에 주렁주렁 언어의 열매로 매달아 가다가
마지막 부분에 나무 조차 떠나 버린 빈산이라고 반전을 하여 외로운 화자를 더욱 적막의 세계로
끌여들여 독자의 가슴에 여운을 남겨주고있다.
글 : 최가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