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고사목
나무도 가슴 아픈 말에 슬퍼서 죽는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사랑이라는 말
한 마디 전하지도 못했는데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움틀 줄 모르는 나무
어머니가 나를 떠났을 때
나의 일부도 내게서 떠나버렸다
한 생을 옹이진 자식 걱정으로 건너온 길
그 수많은 길들이 산맥을 이루고
그 산맥이 바람소리를 만들고
소리는 바다를 건너와 물을 끌어왔다
얼마나 더 아수라를 건너야 아늑한 세상에 가 닿을까
내 몸이 나이테와 나이테 사이에 물길을 만들어
내 가슴에 고인 물소리를 울리게
이제 돌아가자
가서, 내 안에 어머니 시간의 결이
새로운 무늬로 솟아나 가슴 떨리게.
*연간 『가톨릭문학』 2013년 창간호
김주혜 시인은 「고사목枯死木」의 죽음을 “나무도 가슴 아픈 말에 슬퍼서 죽는다”고 첫 연 첫 행에서 그 이유를 들고 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흔한 사랑이라는 말/ 한 마디 전하지도 못했는데”라고 사랑에 인색했던 옛날을 자책한다. 결국 나무는 시적화자가 건네는 사랑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 채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움틀 줄 모르는 나무”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시인이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다가갈 수 없는 시공간적 거리 밖으로 떠나간 것이다.
3연에 이르면 다가갈 수없는 고사목의 존재는 결국 “어머니가 나를 떠났을 때/ 나의 일부도 내게서 떠나버렸다”로 그 실체가 드러난다. “한 생을 옹이진 자식 걱정으로 건너온” 어머니였지만 그 만분의 일인들 온전한 사랑으로 돌려드린 적 있었던가. 세상 자식들 대부분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어머니의 “그 수많은 길들이 산맥을 이루고/ 그 산맥이 바람소리를 만들고/ 소리는 바다를 건너와 물을 끌어”올 동안 자식이었던 우리는 늘 투정하고 귀 막고 무심했던 시간들을 살아왔었다.
어머니의 빈자리에 서게 되자 비로소 시인은 그리움과 사랑의 무한 울림에 오열하면서 "얼마나 더 아수라를 건너야 아늑한 세상에 가 닿을까/ 내 몸이 나이테와 나이테 사이에 물길을 만들어/ 내 가슴에 고인 물소리를 울리게” 라고 절규한다. 이제 어머니 살아생전의 모습처럼 시적 화자는 온몸으로 물관을 끌어올려 한 방울의 물기가 사라질 때까지 “어머니 시간의 결이 내 안에서 피고 지도록” 사랑의 삶을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희생을 통한 사랑의 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발효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수많은 생명을 다시 잉태하는 일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1990년 등단 이래 시인의 시작품들은 사물의 속성 너머에 대한 직관적 사유의 폭이 깊다는 평을 듣는다. 때문에 언어의 변용을 통하여 드러나는 사물의 변주는 그 울림의 폭 또한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분한 시행 전개로도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시인의 시적 성취가 더 깊어지길 기원한다.(김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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