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이야기

김용준

주혜1 2014. 9. 12. 20:41

[자화상, 김용준]

상허 이태준을 따라 성북동 산첩 계곡을 자적하던 근원 김용준이 종래엔 붓끝을 튀기는 혁명 전야의 전선까지 동행을 한다. 그 연유야 어떻든 상허 따라 순장(殉葬)을 주저치 않았던 근원의 행보는 그들의 예술과 문학과 우정이 유기적으로 얽혀 통합하는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본래 상고적, 고답적으로 분류된 본태성의 고완파들이었다.

상허가 고완품이라 고상하게 이름 붙인 골동품과 문인화, 하물며 매화의 완상(阮賞)에서 조차 그들은 옛 정조(情調)에 숨을 고르면서 그 정적에다 귀를 귀울였던 '누마루'隱士들이었다. 수연산방에서 노시산방으로, 수향산방으로 이어지는 그들 산방 예술의 붓은 바로 완상에서 비롯한다.

매화 완상의 백미를 보여주는 근원의 '매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수묵 빛깔로 퇴색해 버린 장지 도배에 스며드는 묵혼처럼 어렴풋이 한두 개씩 살이 나타나는 완자창 위로 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그렇게도 고요하게 필 수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