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금편계/정호정

주혜1 2014. 9. 16. 16:33

금편계金鞭溪

정호정

 

금편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면

그 물에 발 담근 바위산들 달려온다

헤어진 지 그 얼마만인가 반갑다 반갑다

바위 틈새마다에 나무들 거느리고 달려온다

켜켜이 겹쳐지다 곧추선 바위벽에 발 디딜 틈을 보아

길을 만들고 경개景槪를 살펴 가며 구름다리도 놓아 보고 시집에 경계로 오기

하루해 저물도록 주고받던 이야기

긴 이야기를 안은 바위산들

너요 나요 너요 나요 달려온다

 

금편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면

흐르는 물소리로 오는 바위산들

내 안의 바위산들

삐지고 퉁그러진 모가 깎이고 더께 앉은 허물이 씻기고

 

무구삼매無垢三昧에 든

 

눈 감은 바위산들

너요 나요 너요 나요 달려온다.

 

 

 

*금편계: 중국 장가계 세계자연유산공원. 중국 첫 국가삼림공원 동부에 위치.

배를 띄우는 뜻은

어제는 땅에 묻힌 배 한 척을 보았네 (을 표현)

정호정

 

 

물소리를 들으려 배를 만드네

수백 년의 오동나무를 베어 배를 만드네

길게 잘라 놓은 통오동나무를

끌과 까뀌로 파고 깎으며 배를 만드네

늘어붙은 집착근을 파내고

부어오른 욕심살을 깎으며 배를 만드네

물 위에 훌쩍 떠오를 오동나무배

한가운데 몸 뉠 방 하나 넉넉히 잡아 놓고

머리맡 발치께를 환히 틔워 놓고

물소리를 들으려 배를 만드네

즈믄 해를 견딜

생칠에 생칠을 하며 배를 만드네

 

물소리에 잠들다 물소리에 잠 깨고 싶어

수백 년의 오동나무를 베어 배를 만드네

 

스며 고였다 아득히 흘러갈

물소리는 애초부터 내 안을 흐르는 소리.

 

 

내 안 깊은 동굴에

정호정

1

 

물방울이 떨어지며

내리 굳은 혹은 솟아오른

종유석. 석순

 

서로

닿으려다

물방울이 멎은

 

더는

내리지도 솟지도 못하는

 

그저

바라보아 좋은

사이.

 

2

 

신침神鍼

 

한 방에

 

신선 될라.

 

 

묘상일지苗床日誌

정호정

 

 

양자강의 철갑상어가 산란을 하러 강물을 거슬러 오른다 웬만한 너럭바위나 물살 빠른 폭포쯤은 거뜬히 뛰어넘지만 갈주패댐*에서는 어쩌지 못한다 높이가 70 미터나 되는 댐 벽에 부딪쳐 만신창이 되고 기절하기는 보통이다 인공으로 부화시킨 치어를 방류하지만, 내가 놀던 물가의 물냄새 머리 땋아 풀각시 만들던 각시풀냄새 모래자갈 퍼내고 웅덩이를 만들던 모래자갈냄새, 냄새를 맡지 못한 철갑상어는 돌아오는 길을 모른다

 

누군가 갈주패댐 아래

양자강 철갑상어의 산란터를 만들고 있다 물 잔잔한 고향을 만들고 있다.

 

 

 

*갈주패댐: 양자강 위에 건설한 첫 댐. 중국 현존의 최대의 수력발전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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