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문학아카데미 1회 졸업생의 신화
문학아카데미 1기 김주혜 시인이 4년 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수상했을 때. 인터뷰를 하고 나는 “화려한 슬픔의 별”이라고 썼다. 글의 시작은 이렇다.
가장 아름다운 이름의 문학상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올해에는 김주혜 시인이 받는다고 한다. 시회에 잘 나오지도 않고, 동안거 끝나면 곧바로 하안거를 준비하며 용맹정진하는 수도자처럼, 남몰래 숨어서 가끔 시퍼런 시의 칼날만을 번쩍 내보이곤 하는, 강호의 숨은 고수 김주혜 시인을 찾아내어 뽑았다니, 늦은 대로 시인상을 뽑는 시인들의 눈밝음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한다고 했던가. 김주혜 시인의 시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세 권의 시집 『때때로 산이 되어』(1992), 『아버지별』(1998), 『연꽃마을 별똥별』(2008)을 다시 읽고, 그의 진가를 확인한 기쁨으로 여진(餘震)처럼 가슴이 뛰고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 멋쟁이 아버지 등 시인의 어렸을 적 집안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책읽기를 좋아하다가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게 되어, 장호 선생님, 이성교 선생님 등으로부터 격려를 받았고, 대학에서 학보사 기자 활동을 하였던 것과 목월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던 학창시절 이야기도 들었다. 86년 주부백일장에서 시와 산문 두 가지가 다 장원으로 뽑혔고, 그를 계기로 고삐가 풀려서 시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나머지 이야기보다는 문학아카데미 첫 등단작품인 김주혜 시인의 90년 『민족과문학』 당선작을 한 번 더 읽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섬진강산 물고기 한 마리를 욕조에 풀어 놓았다
놈은 낚시바늘을 입에 꽂고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튕겨져 나온 회색빛 눈망울을 굴리며
부르튼 입술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놈은 함성을 지르고 싶은 것을 참고 있음이 분명했다
비틀거리면서도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치는 것만 봐도 알수 있다
내버려 둔다 (제깐놈이 별 수 있을라구)
놈은 미친 듯이 속력을 낸다
내 눈은 똑같은 속도로 따라간다
놈은 마치 꺾을 수 없는 냉정함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 같다
내가 다가가자 놈은 다시 사나운 자세로 몸을 떨며
물 밖으로 튀어 오른다
완전히 지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너와 나 모두)
―김주혜 「스트레스」 전문
우리를 놀라게 했던 「매생이를 아시는지요」도 있다.
“…대보름달이 뜨면 몸이 뜨거워진다고 했더니 남녘 시인이 화들짝 놀라며 매생이 같은 여자란다 펄펄 끓는 국물에 매생이를 넣으면 퐁퐁퐁 뿜어져 나오던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고 금세 새치름한 진초록빛 바다가 차갑게 펼쳐진단다 그 냉랭한 자태에 속아 그만 덥석 떠먹다가는 영락없이 혓바닥을 데이고 만다니, …매생이국 같은 여자! 겉으로는 차거워 보이지만 건드리면 뜨거운 열정이 훨훨 살아나는 여자 멋지다 내가 그런 여자라니 //…내게 데이고 싶은 사람, 어디?”(「매생이를 아시는지요」)
탐방기는 이렇게 끝맺고 있다. “황혼이 와 있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황혼처럼 멋있는 시간도 없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시인이 피워 매단 전조등 「연꽃마을 별똥별」을 읽으며, 앞으로 남은 시간이 행복하기를 빈다.” 시인이여, 행복하신가요?
끝내기는 「연꽃마을 별똥별」이 맡는다.
그가 보고 싶어 연꽃마을로 달려왔다 숨은 듯이 참선을 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부좌하고 앉은 그의 손가락 끝에 잠자리가 날아와 앉았다 잠자리도 몸을 떠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별똥 한 줄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하늘에서 내 안으로 곧장 날아왔다 동쪽으로 갈까 서쪽에서 잠을 잘까 이 하늘 저 하늘 떠돌던 별똥별이 한달음에 달려 왔다 한꺼번에 연꽃마을 내 가슴 어둠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울음덩이가 불로 타오르고 물보라로 꽃을 피웠다 내 안에 연꽃 향기가 가득 찼다
―김주혜 「연꽃마을 별똥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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