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교회의 시대가 저물고..../조광호신부

주혜1 2025. 8. 24. 23:12

교회의 시대가 저물고
영성의 시대가 오는가?

요즘 종교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가 하나 있다. "종교의 시대가 저물고 영성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이야기다.

기성종교 지도자들은 심기가 불편하지만
이 주제는 이제 신학자들과 종교 학자들 사이에서, 각종 종교 관련 세미나나 학술회의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며 받아들이고, 또 어떤 이들은 종교 전통의 위기라며 우려를 표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변화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속수무책으로 남아있는 교회는 남아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기존 종교기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영성'이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성(Spirituality)은 라틴어로 '호흡'이나 '생명력'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

영성(靈性)이라는 말은 본래 '영적인 성질', 즉 인간이 단순히 육체적·심리적 차원을 넘어서 초월적 차원과 소통하는 내적 힘을 가리킨다.

철학적으로는 '정신의 초월적 성향', 종교적으로는 '하느님·신·궁극적 실재와의 관계'라고 이해된다.

인간이 자신을 넘어서는 세계(초월, 궁극적 실재, 신적 차원)를 향해 열려 있는 능력이나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적 영성, 불교적 영성, 샤머니즘적 영성, 개인적 영성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개인이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 신성한 무언가와 직접 만나는 영적 경험을 말한다.

더 광범위한 지평으로 그 개념을 확장시키면, 종교가 교회나 절 같은 곳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신을 만나는 것이라면, 영성은 각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디서든 거룩한 존재와 만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영성이라 할 것이다.

종교가 "이렇게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영성은 "직접 느껴보라"고 말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일반적 현상 가운데 하나는 교회나 사찰의 출석률이 계속 줄고 있지만 명상센터나 요가원은 북적인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나는 영적이긴 하지만 종교인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필자가 40여 년 전 독일에서 젊은이들에게 "나는 하느님이나 예수님은 좋다, 그러나 교회는 싫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그저 젊은이들의 반항심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미 그때부터 종교와 영성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그들은 목사나 신부가 일방적으로 설교하는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 명상하거나 자연 속에서 평안을 찾는 것을 선호한다. 불교에서 가져온 명상법, 힌두교의 요가, 아메리카 원주민의 자연 영성 등을 자유롭게 섞어서 자기만의 영적 방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현대 사회는 개인의 선택권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냥 믿으라"는 말에 만족하지 않는다. 인터넷 덕분에 세계 각지의 다양한 종교와 영적 전통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도 한 이유다.

이런 변화 앞에서 기존 종교기관들은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전통적으로 종교는 "우리만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성직자가 가르치고 신자가 따르는 수직적 구조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런 방식에 식상함을 느낀다.

기성종교에서 볼 때
젊은 세대가 교회나 절을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직자 수도자 지망자들이 줄어들고. 아예 없어지는 형편에 놓였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찾는 것은 딱딱한 교리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체험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의 모든 지혜에 접근할 수 있는 세대에게,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서 듣는 설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기존 종교기관들은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 아니다. 오히려 이 변화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핵심은 본질은 지키되 방법은 바꾸는 것이다.

먼저 교회는 자신의 본래 역할을 되돌아봐야 한다. 종교의 진짜 목적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키고 삶에 깊은 의미를 주는 것이다. 이 본질적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바뀐 것은 사람들이 이 목표에 접근하려는 방식이다.

사목자의 설교를 일방적으로 듣는 시간만 있을 게 아니라, 신자들이 자신의 영적 경험을 나누고 서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명상이나 관상기도 같은 직접적인 영적 체험 프로그램을 늘려야 한다.

"무조건 믿으라"가 아니라 "함께 찾아보자"는 자세가 필요하다. 의문이나 회의도 신앙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젊은 세대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이 익숙한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만 옳다"는 배타적 자세보다는 "다른 전통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개방적 자세가 현대인들에게 더 어필한다. 물론 자신의 정체성을 잃으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전통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전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토마스 머튼 같은 신비주의자들의 영향으로 관상기도 운동이 부활했다. 이는 개인의 깊은 영적 체험을 중시하면서도 전통적 신앙과 조화를 이루는 좋은 예다.

개신교에서도 리처드 포스터 같은 사람들이 '신영성 운동'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복음주의 신앙과 개인적 영성 추구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다. 또한 불교의 마음챙김 명상이 기독교 영성과 만나서 새로운 형태의 기도법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핵심 정체성은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되, 유행에 휩쓸리지는 않으며 현대적 심성프로그램을 복음적 가치로 승화시킨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고 실천하는것이다
중요한 것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영성 시대의 도래를 무작정 환영할 필요도 없고, 무조건 거부할 필요도 없다. 개인적 영성 추구에도 분명 한계와 문제점이 있다. 체계적인 지도 없이 혼자서 영적 길을 걷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상업적으로 포장된 가짜 영성에 속을 수도 있다.

반면 기성 종교기관이 지닌 장점들.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영적 지혜, 검증된 수행법들, 그리고 무엇보다 .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공동체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공동체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결국 미래는 종교와 영성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종교기관은 개인의 영적 추구를 억압하지 말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동시에 개인적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공동체와 전통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영성의시대에 종교의 역할은 다음과 같아야 할 것이다.

첫째, 자신의 본질적 사명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사람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키고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이 종교의 진짜 역할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둘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는 용기를 가져야 할것이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셋째,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다른 전통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신자들의 다양한 영적 표현을 인정하며, 의문과 회의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넷째, 보다적극적 투자로 프로그램 개발과 인재 양성을 해야 할 것이다. 현대인의 영적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해야 할것이다.

영성 시대의 도래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종교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면 더욱 고립될 것이고, 변화에 지혜롭게 대응하면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