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문학기행>
숲속의 문학기행에 다녀오면, 온몸에 새싹이 돋고 산소가 가득하다. 뿌리 깊은 나무가 흙과 물을 머금어 푸르름을 되찾듯, 그 힘으로 한 해를 살아간다. 숲의 공기 속에 스민 문학의 향기는 산소보다 더 강한 영혼의 숨결 같고 찌든 마음을 말끔히 씻어 낸다.
이 모임의 뿌리는 대학 교수님께 닿아 있다. 그분은 숲속의 정원사처럼, 우리를 제자리에 심고 햇살로 길러 주었다. 한 구절의 시, 한 줄의 문장이 흙 속 씨앗처럼 움트도록 곁에서 물을 주고 양분으로 키웠다. 몇 해 전, 교수님은 장자의 나비처럼 홀연히 날아올라, 이승의 가지에서 손을 놓으셨다. 남은 우리는 허공에 매달린 잎사귀처럼 한동안 흔들렸지만, 이내 서로를 붙잡아 뿌리를 다시 단단히 내렸다. 교수님이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고 당신의 업적을 하나도 남기지 말라던 말씀이 마지막 수업이고 유언이었으리라.
"스스로 창작하라. 스스로 걸어라." 그 침묵 속의 교훈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교수님이 운영하던 이름을 사용할 수 없어서 비슷한 이름으로 바꾸었다. 교수님이 사용하시던 '문학과 창작' 간판을 거두고 <문학의 창>이라는 새로운 창문을 열었다. 창은 바람이 스며드는 길이고, 빛이 드나드는 길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글과 삶을 드나들며, 새로운 호흡을 이어가고 있다.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 신앙이다. 한 문우는 수업 도중, 마우스를 쥔 손끝에서 숨결을 놓았다. 그 순간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퇴장’이라 불렀다. 글을 쓰다 떠난 자의 영혼은, 분명 문학의 하늘에서 별빛이 되었을 것이다. 남은 우리는 문인장으로 그를 배웅하고, 유고 시집으로 그의 목소리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남의 일을 제 일처럼 나서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문학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지탱하는 신앙이자 서로를 묶는 끈이다.
나는 수십 년을 돌아 문학의 문턱에 다다랐다. 세상은 글쓰기를 사치라 말했지만, 내게는 마음을 치유해 주는 가장 절실한 양식이었다. 누군가는 밥을 먹지 않으면 허기가 진다지만,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공허해진다. 물질의 빵이 배를 채운다면, 문학의 빵은 영혼을 채운다. 글의 세계에 들어서면 허기와 고단함이 사라지고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문학은 하루아침에 열매 맺지 않는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 나무는 꽃을 피운다. 그러다 인연이 닿으면, 그 꽃은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그래서 나는 늘 기다리고, 읽고 또 쓰고, 문학인의 몸을 만들기 위해 다시 기다린다.
인생 삼모작 길목에서 그림과 문학을 벗으로 삼은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사람들은 노후를 위해 보험을 들고 저금을 하지만, 나는 문학이라는 안식처를 들었다. 문학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은 늘 고요했다. 마치 호수 위로 햇살이 잔잔히 부서지듯, 마음의 물결이 한없이 맑아졌다. 문학을 하는 동안 나는 현역 학생처럼 산다. 나이를 잊은 채, 늘 새 교재를 받아든 신입생처럼 설레며 살아간다.
문인들은 대체로 맑다. 욕심과 사심이 많으면 글은 흐려지고, 돈의 무게를 등에 지면 '시'는 날개를 펴지 못한다. 우리는 욕심 대신 고요를 택했고, 사치 대신 글을 택했다. 그 선택이 우리를 같은 숲에 모이게 했다.
일 년에 한 번, 숲속 문학기행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세상살이에 묻은 먼지를 털고, 내면의 거울을 닦아 내는 의식 같은 시간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듣는 새소리, 바람이 건네는 속삭임은 시의 문장처럼 다가왔다. 월정사로 향하는 전나무길 곳곳에 써 있는 문장들이, 문인들을 환영하듯 우리를 반긴다. 또 오래된 절터인 원주의 거돈사지는 광활한 절터에 흔적만 남아 문인들이 이니라면 관광거리가 아니라고 등 돌릴 귀한 장소를 다녀 왔다.
문우들과 둘러 앉아 나누는 시 한 편, 웃음소리 한 줄은 세상의 어떤 잔치보다 푸짐하다.
그 하루가 지나면, 나는 다시 일 년을 견딜 힘을 얻는다. 숲은 해마다 조금씩 변신 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는 늘 새롭다. 문학이 우리를 묶어 주는 푸른 덩굴이기에, 그 덩굴은 서로의 가슴을 단단히 감아 새 줄기로 차 오르게 한다.
문학기행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어린 시절 첫 소풍을 기다리던 설렘과 닮았다. 바람에 실린 노래처럼, 숲속의 하루는 내 삶의 가장 맑은 음표가 된다. 숲이 곧 문학이고, 문학이 곧 나이기에 다시 숲을 찾을 내년 기다리며 한해를 가볍게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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