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눈을 비워야 빛을 담는다/ 조광호신부

주혜1 2025. 9. 30. 10:24

눈을 비워야  빛을 담는다
― 오늘 교회가 다시 서야 할 길

오늘의 그리스도교회는 점점 사람들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본래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거룩한 공동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웅장한 성당과 초대형교회, 거대하고 화려한 성지 조성,  수 십년 동안 한국교회는  끊임없는 모금과 행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신성은 외형으로 포장되고, 복음은 은총이 아니라 거래의 언어로 변질되었습니다. 교회가 돈과 권위를 좇을 때, 사람들은 교회를 더 이상 생명의 공동체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곳은 복음을 증언하는 자리가 아니라, 복을 사고파는 무당의 시장처럼 보일 뿐입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미 오래 전에 이 길의 위험을 꿰뚫어 본 듯합니다. 그는 신비주의를 황홀경이나 주술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깊은 사유와 영혼의 탐구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하느님 안에서 바라보려 했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하지만 깊습니다.
“눈이 색깔에 대하여 순수하므로 모든 빛깔을 볼 수 있듯이, 영혼도 비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눈이 제 색을 고집하면 세상의 색채를 잃듯, 교회가 자기 권위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빛을 볼 수 없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인간 안에 살아 있는 **‘영혼의 불꽃’**을 주목했습니다. 이 불꽃은 감각이나 지식이 닿지 못하는 깊이를 직관하게 하는 내적 힘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비우고 이 불꽃을 따를 때,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대가 단 한순간만이라도 자신을 온전히 놓아 줄 수 있다면, 그대는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그 단 한순간의 비움을 두려워하며, 더 큰 건축과 더 많은 행사, 더 많은 재정을 쌓아 올리려 합니다. 결국 그 욕망은 교회의 영혼을 가리고, 교회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에크하르트가 말한 내면의 고독은 오늘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길입니다. 사막의 고독이나 웅장한 제의의 장엄함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자기 자신을 비우는 고요. 그 자리에서만 하느님은 드러나십니다. 눈이 순수해야 모든 색을 담듯, 영혼이 비워져야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가 서야 할 길은 어디입니까?
교회는 먼저 문화 속에 영성을 스며들게 해야 합니다. 음악과 미술, 문학과 영화, 건축과 공동체의 삶 속에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야 합니다. 문화는 곧 인간의 영혼이 남긴 흔적입니다. 그 흔적을 영성으로 빛나게 할 때, 사람들은 다시 교회를 살아 있는 샘으로 느낄 것입니다.

둘째, 교회는 영혼의 불꽃을 지켜내야 합니다. 현대인은 더 이상 외형적 권위에 매혹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내면의 고요, 자기 영혼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입니다. 교회는 이 갈망을 존중해야 하며, 피정과 묵상, 예술적 체험, 생태적 영성으로 영혼의 깊이를 열어 주어야 합니다.

셋째, 교회는 겸손한 대화와 연대를 실천해야 합니다. 에크하르트가 특정 전통을 넘어 보편적 언어로 하느님을 증언했듯, 오늘 교회도 종교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눈이 자기 색을 고집하면 다른 빛을 보지 못하듯, 교회가 자기 고집에 갇히면 세상을 향한 시야를 잃습니다.

넷째, 교회는 삶과 영성을 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와 일상이 따로 있지 않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단순히 “살기 위해 산다”는 투명한 태도 속에서 노동과 관계, 공동체와 자연 안에 스며 있는 하느님의 현존을 증언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교회는 소외된 사람들과 소외된 자연을 향한 연민과 책임을 져야 합니다. 가난과 병, 전쟁과 이주로 고통받는 이들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신음하는 숲과 바다, 오염된 공기와 무너지는 생태계 속에서도 하느님의 울음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가 이들을 외면한다면, 교회는 이미 복음을 배반한 것입니다.

맑은 눈은 소외된 이웃을 보고, 영혼의 불꽃은 상처 입은 자연의 신음을 느낍니다. 교회가 이 눈과 불꽃을 지켜낼 때, 교회는 참으로 하느님의 교회가 됩니다.

오늘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권위와 외형적 성공을 내려놓고, 눈처럼 맑은 영혼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 문화 속에서 영성을 드러내고, 소외된 사람과 상처 입은 자연을 향한 연민과 책임을 실천하는 일. 그때 교회는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웅장한 건물이 아니라, 맑은 눈과 비워진 영혼, 연민으로 가득 찬 가슴이야말로 오늘 하느님의 거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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