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왜 질문을 멈췄는가
ㅡ분열의 시대, 신앙이 다시 공적 양심이 되기까지
오늘 한국 사회는 숨 가쁜 기술 발전 속에서 깊은 균열을 동시에 겪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는 일상의 언어를 갈라놓고, 정치적 분열은 서로의 진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신뢰는 공공의 자산이 아니라 각자의 진영에서만 유통되는 희소품이 되었다.
종교 역시 이 흐름에서 비켜서 있지 않다. 교회는 여전히 헌신적으로 봉사하지만, 사회 전체가 함께 사유하는 공적 장으로서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신앙은 개인의 위안이나 내부 윤리로 남고, 사회는 교회의 언어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질문 앞에 선다.
“사회는 갈라졌고, 교회는 말이 없다”
신앙은 사회와 어떻게 다시 말을 걸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해,
2차 바티칸공의회 초석이 된
뮌헨 가톨릭 아카데미 운동은 하나의 분명한 태도를 제시해 왔다.
이 아카데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단순한 제도나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을 답으로 소유하려 하지 않고, 질문으로 열어 두는 용기다.
1. 교회는 ‘가르치는 자리’에서 ‘함께 묻는 자리’로
뮌헨의 아카데미는 교회가 사회 위에 서서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사회 한복판에 자리를 내어놓았다.
신학자만이 아니라 철학자, 예술가, 과학자, 시민이 함께 모여 질문했다.
신앙은 강단의 언어가 아니라, 광장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모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 교회가 본받아야 할 것은 교구 중심의 폐쇄적 강의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한 공개 지성의 장이다.
교회 안의 지식이 아니라, 사회와 공유되는 사유의 과정. 그 안에서 신앙은 독점적 확신이 아니라, 공동의 탐구가 된다.
2. 신앙의 언어를 공적 언어로 번역할 때
많은 이가 교회로 밀려오던 1980년대 필자는 한국천주교2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으로 주교님들을 보좌했다. 당시 나를 가장 당혹하게 만든것은 대부분 주교들이 한국사회가 교회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고계신 것을 목격했다.
오늘 사회가 교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신앙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리 설명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 존엄, 기술 윤리, 공동선, 생태 위기와 같은 시대의 질문 앞에서, 신앙은 자신의 고유한 사유를 공적 언어로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다.
설교보다 토론을, 선언보다 질문을 중시하는 태도.
교회는 결론을 내려주는 기관이 아니라, 양심이 깨어나는 과정을 동반하는 공동체가 된다.
3.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회
공적 장으로 나서는 순간, 교회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뮌헨의 전통은 분명히 말한다.
비판을 피하는 교회는 안전해 보일지 몰라도, 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 자신도 질문과 성찰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할 때, 신앙은 방어가 아니라 증명이 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한국천주교회는 내부적 비판과 성찰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교도권에 지극히 예민한 교회는 스스로의 성장과 쇄신, 적응에 지극히 미성숙하게 되었다.
신앙을 지키는 가장 성숙한 방식은, 신앙을 성역화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앞에 세우는 것이다.
그때 교회는 권위를 잃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얻는다.
4. 영성의 재정의: 사유하는 양심, 책임지는 시민성
오늘 우리는 영성을 쉽게 감정이나 치유의 영역으로 축소한다.
물론 위로는 필요하다.
그러나 신앙의 영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영성은 사유하는 양심, 책임지는 시민성, 공동체적 선택으로 확장될 때 완성된다.
신앙은 나를 평안하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세상을 더 책임 있게 만드는 힘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적 신앙의 자리이며, 아카데미 운동이 꾸준히 지켜온 핵심이다.
마무리 말: 신앙은 다시 질문이 되어야 한다
2차 바티칸공의회의 초석이 된
뮌헨 가톨릭 아카데미 운동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분명하다.
신앙은 답이기 전에 질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6년의 한국 가톨릭 교회가 이 정신을 이어받는다면, 교회는 다시 사회의 양심이 될 수 있다. .
높은 자리에서 말하는 권위가 아니라, 깊은 자리에서 함께 묻는 지성으로서. 그때 신앙은 다시 살아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다시,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ㅡ조광호신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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