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음의 놀라운 신비
— 동검도 채플, 겨울 갯가에서
살을 에는 눈바람 속 동검도 채플 앞 갯벌에 서면, 하얗게 얼어붙은 갯골 사이로 얼음장이 밀물에 실려 가는 풍경이 보인다.
우리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콧끝이 찡해진다.
얼음이 밀려가고 썰물이 되면 다시 밀려온다. 겨울 갯벌은 여름처럼 풍성하지도, 가을처럼 수확의 기쁨도 없지만, 이 텅 빔은 죽음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바다는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38만 킬로미터 떨어진 달이 곁에 있기에 물이 오고 간다.
이는 힘겨루기가 아니라 함께 있음의 결과다.
달의 중력은 12시간 25분마다 정확한 리듬을 만들고, 그 리듬 속에서 물은 섞이고 산소는 깊은 곳까지 전해지며 생명이 살아간다.
과학자들은 말한다. 달이 없다면 조석 간만의 차는 지금의 3분의 1도 안 되고, 바닷물은 정체되며, 해양 생태계는 무너진다고 한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진 채 돌아가는데, 이 기울기가 사계절을 만든다. 달이 없다면 이 기울기는 0도에서 85도까지 흔들려 계절이 사라지고 기후는 혼란에 빠진다고 한다.
지구와 달은 매년 3.8센티미터씩 멀어지고 있다. 이 사실은 지구의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45억 년 전 달은 지금보다 20배 가까이 있었고, 그때 하루는 6시간이었으며 조수는 훨씬 거셌다.
조석 작용이 멈추면 해양은 순환을 잃고 바다는 생명 없는 물웅덩이가 된다.
달은 바다를 지배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곁에 있음으로 바다를 살린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달은
지구를 붙잡지 않지만, 흔들림이 무너짐으로 가지 않도록 곁을 지킨다. 그래서 봄은 믿을 만하고 씨앗은 땅에 뿌려진다.
달이 서서히 물러나는 가운데 지구는 안정을 찾았고, 하루는 24시간이 되었으며, 생명은 숨 쉴 공간을 얻었다.
들물은 덮고 썰물은 드러낸다. 이 둘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자리를 번갈아 내어주며 생명을 유지한다.
살아 있다는 건 언제나 오고 감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달이 없으면 지구가 썩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동행하는 존재를 잃은 세계의 운명을 말한다. 생명은 강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기에 지속된다.
겨울 갯벌은 서두르지 않는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달을 기다리고 물을 맞이하며 자기 리듬을 지킨다. 하얗게 얼어붙은 갯골 사이, 얼음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느린 호흡 속에서 땅은 쉬고 생명은 힘을 모은다.
우리의 신앙도 때로 겨울을 지난다.
뜨거운 감격이 식고 확신은 흔들리며 기도는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겨울 갯벌이 말해준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고요함이 버려짐이 아니라고.
달은 겨울에도 38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바다를 끌어당긴다.
하느님도 우리가 느끼지 못할 때, 마음이 얼어붙었을 때도 곁에 계신다.
하느님은 세계를 압도하는 폭력적 힘이 아니라, 존재가 존재로 머물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에서 곁을 지키는 동반자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조석의 왕복은 계시의 방식과 닮았다. 하느님은 한 번에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인간이 숨 쉴 틈을 남기듯 물러나고 다시 다가오신다.
달이 45억 년에 걸쳐 조금씩 물러나며 지구에 안정을 준 것처럼, 하느님의 은총도 때로 물러남의 형태로 온다.
그 왕복 속에서 신앙은 익고 존재는 성숙한다.
동검도 갯벌은 오늘도 말없이 숨겨진 진리와섭리를 드러낸다.
생명은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음으로 유지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달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친구이며, 하느님은 세계의 지배자가 아니라 동행자시다.
함께 있음은 계절을 타지 않고, 관계는 화려함이 아니라 신실함으로 지속된다.
채플 앞에서 얼음이 밀려가고 밀려올 때, 우리는 안다.
하느님을 따라서 하느님과 함께 동행 하려는
신앙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리듬을 신뢰하는 일임을 알게 된다.
존재를 살리는 힘은 지배가 아니라 동반이라는 것을. 세계는 언제나 그렇게 함께 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봄은 반드시 온다. 겨울 갯벌이 알고 있듯이. 떼야르 드 샤르댕이 말하듯, 세상은 거대한 흐름 속에
, 흐름 위에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우주의 완성을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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