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타올라야 하고, 소금은 녹아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14)
1.
역설적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때 종교가 세상의 양심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으나, 이제는 세상이 종교를 염려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신흥 종교는 물론이고, 오랜 전통을 지닌 종교들까지도 사회의 신뢰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거리에서, 방송에서, 일상의 대화 자리에서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아끼곤 합니다.
존경은 옅어지고, 신뢰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단순히 외부 환경의 변화로 돌리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두려움도 이유가 되겠지만, 더 깊은 곳에는 우리 안의 계산과 이기심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옳고 그름을 몰라서가 아니라, 때로는 분별을 미루고, 진실보다 이익을, 정의보다 조직의 안위를 앞세운 선택이 반복되었기 때문은 아닌지 성찰하게 됩니다.
한편에서는 종교의 언어가 정치적 구호처럼 사용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침묵 속에 책임을 유보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2.
도를 넘어서는과도한 열정과 지나친 소극성, 이 양극단은 모두 본래의 빛과 소금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빛은 숨지 않습니다. 하지만 빛은 드러냄입니다. 어둠 속에서 빛은 자신을 지키기보다 자신을 내어주며 공간을 밝힙니다. 빛이 빛인 까닭은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태우면서도 어둠을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빛은 어떠합니까. 혹시 빛이 상대를 비추기보다 겨누는 조명으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필요한 순간에 켜지지 못한 채 가려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소금 역시 그러합니다. 소금은 드러나지 않지만 음식에 스며들어 전체를 살립니다. 소금이 소금인 이유는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녹아 사라지면서도 썩음을 막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소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특정 집단의 맛만을 강화하거나, 사회의 부패를 보면서도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지는 않은지 자문하게 됩니다.
빛은 타올라야 하고, 소금은 녹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타오르기를 두려워하고, 녹아 사라지기를 주저합니다. 그 근저에는 두려움과 더불어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이 함께 자리하고 있지 않은지 겸허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빛은 편을 가르지 않습니다. 빛은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소금은 전체를 살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새 편을 나누고, 불편한 진실은 가리며, 공동체 전체보다 우리 조직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하게 됩니다.
3.
종교는 본래 약자의 곁에 서야 할 자리였습니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진실을 말하고, 오해를 감수하더라도 화해를 선택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박수와 지지를 기대하며 진영의 앞자리에 서기도 하고, 비난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종교를 향해 보내는 차가운 시선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깊은 실망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빛이었습니까?” “아직 소금입니까?”라는 질문 앞에 우리는 겸손히 서야 합니다.
인간은 안전을 추구하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의미입니다.
의미는 언제나 일정한 위험을 동반합니다. 진실을 말할 때, 정의를 선택할 때,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힘으로 세상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를 낮추시고, 취약함을 받아들이시며,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자기 비움의 길이었습니다. 빛은 강요하지 않고, 소금은 지배하지 않습니다. 스며들고 드러나며 변화시킵니다. 약함을 통하여 강함이 드러나는 역설, 이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4.
오늘 우리는 불편한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혹시 이기심을 지혜로 포장하고 있지 않은지,
진영의 승리를 정의로 착각하고 있지 않은지,
보신주의를 신중함으로 합리화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둠을 탓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작은 빛이라도 켜는 사람입니까.
나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데 그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먼저 녹는 사람입니까.
빛과 소금은 결코 거창한 구호가 아닐 것입니다. 매일의 작은 선택입니다.
우리는언제나 질문을 던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나는 강자의 편에 서고 있습니까, 아니면 약자의 곁에 서고 있습니까.
오늘 나는 안전을 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진실을 택하고 있습니까.
오늘 나는 무엇을 내어주고 있습니까.
5.
하느님께서는 거대한 권력으로 역사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한 인간의 용기와 한 존재의 희생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옳은 길을 선택하는 힘입니다.
희생은 자기 파괴가 아니라 사랑의 충만입니다.
어쩌면 지금은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를 넘어, 종교에 대해 체념하려는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결코 편안할 수 없습니다.
빛과 소금은 타오르고 녹아내리는 고통을 동반합니다. 이기심을 내려놓는 아픔, 진영을 떠나는 외로움, 보신주의를 벗어나는 두려움을 견뎌야 합니다.
빛은 타올라야 합니다.
소금은 녹아야 합니다.
그것이 본래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ㅡㅡㅡㅡㅡ
그림 /로고스의 암호 200*200cm
유리화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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