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일몰.1

주혜1 2006. 11. 24. 18:11
 


일몰1



강이 먼저 주홍빛 자리를 편다

서서히 주저앉는 그를 지켜보는 일은 잔인하다

폭발적인 힘을 가진 그가 저렇듯 약해지다니

지저귀던 새들도 둥지를 튼 지 오래

하나둘씩 켜지는 등불 아래 그는

눈부시도록 위대한 준비를 한다

황금빛 강 사이로 붉은 길을 열고

흰 무명 바지저고리 살포시 여미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듯

힘겨운 이별 숨을 몰아쉰다

꼼짝 않는 내 어깨를 도닥이며

처음부터 나는 혼자였다고

주는 것밖에 할 줄 모르던 그가

가져가는 게 많아 미안하단다

그는 찬란했다. 다만,

외로운 생의 전부를 토해놓느라

잠시 숨가쁠 뿐인 그를

바라보는 강물이 더 아파하는

거추장스런 허물을 벗는

마지막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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