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예동산'으로 오세요" |
|
춘천 예예동산' 권태환(서울대 명예교수),유명애 화백 |
[ 지난 5월 6일 춘천에 사시는 유화백 선배를 찾아가는 길은 마냥 들떠있었다. 대학 학보사 시절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유선배님에게서 나의 인생의 전부를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 유선배는 내게 까마득하게 높은 산 같은 존재였다. 그 선배가 쓰는 글 하나하나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입이 딱 벌어져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무게였기에 감히 그 앞에선 고개조차 들지 못하였다. 대부분 그렇게 잘난 선배들은 고개가 뻣뻣해서 후배들을 옴짝 달싹 못하게 야단치고 호통을 치는데 유선배는 얼마나 자상한지 손수 자신이 기사를 고쳐주며 다독여주며 기를 살려주신 기억이 난다. 나는 그런 선배를 멀리 떨어져서 경외스럽게 바라보기만 하였지 감히 "나 언니 좋아해요" 라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선배를 존경하였기에 대학 분규 때 선배언니가 선동이 되어 나서는 길에는 빠짐없이 참석을 하였고, 뭐든지 언니가 하는 일은 옳았다. 옳게 생각되었기에 졸업을 했어도 언니가 나서는 길은 언제나 참석하여 도울 수 있는 한 돕고 싶었던 기억도 있다. 졸업후 나는 나대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심한 회오리바람을 겪었고 선배언니가 궁금했어도 거기까지 살필 여유가 정말로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40년이 지난 시간에 우연히 정말로 기적처럼 언니의 소식을 엉뚱한 곳.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곳에서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던 것이다. 강선생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뻔한 만남이 예예동산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 선배의 기사가 실린 곳곳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제야 찾은 나를 탓해본다. 어쩌면 나의 어려웠던 인생에 큰 보탬이 될 수도 잇었을 텐데 미련하게도...그러나 아직도 나는 살아가는 방법에 미숙하다. 선배를 졸졸 따라다니며 배워야겠다. 그 산 같은 마음 그 강 같은 사랑을...!
여기 선배부부의 집 예예동산을 소개한 기사를 싣는다. ] |
|
|
|
|
김유정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는 춘천시 신동면 증3리. 산국농장 비탈길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집 한 채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문 앞에는 '예수 안에서 예술의 기쁨과 쉼을 누리는 곳' 이라는 의미와 '예수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한다' 는 두 가지 뜻에서 지어진 ‘예예동산’이라는 팻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袖該茱?손님을 반기는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하는 환영인사와 방명록에 쓰여진 글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왔으며 편안한 쉼을 누리고 돌아간 흔적을 보여준다.
▲ 방명록 첫 페이지에 쓰여있는 '예예동산' 소개글 ©강은혜 | | '예예동산'을 지키는 동산지기는 권태환 집사(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유명애 권사(화백, 전 진흥아트홀 관장) 부부다. 예예동산은 지어진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부가 깨끗하고 단아했다. 곳곳에 아름다운 수채화 그림들이 걸려있고, 가지런히 꽂혀져 있는 책들과 함께 기도의 처소, 쉴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하여 지치고 곤한 영혼들이 머물러 갈 수 있는 회복의 장소로 꾸며놓았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이곳에 집을 지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라고 고백한다. 유 권사는 “원래 이 땅이 건축허가가 날 수 없는 곳이었죠. 춘천시가 이곳을 웰빙 도시로 만들기로 하면서 고도제한이 160m에서 180m로 바뀌었어요. 건축허가가 안 나던 땅이 허가가 나게 된 거죠.”라고 간증했다.
“서울에서 사는 것 자체는 풍요로워 보여요. 하지만 사람들 마음은 그렇지 못해요. 시끄럽고 개인적인 생활공간에서 바쁘게만 살다 보니 누가누구인 줄도 모르고 서로 나누고 함께하는 삶을 누리지 못하거든요.” 이들 부부는 생활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으로 서울에 있던 집을 팔고 이곳으로 이사 왔다. 이곳에 터를 잡은 후 경험하고 변화한 것들이 도시에 살 때보다 더 많다고 말한다.
▲ 권태환 교수 "진정한 공동체, 나눔의 문화가 회복되어야 해요." ©강은혜 | | 처음 터를 잡고 왔을 때 이곳 사람들이 마음만은 풍요롭고 넉넉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 마음도 어느새 도시민의 문화에 길들여져 있음을 알게 됐다. 권 교수는 “시골도 이제는 공동체 의식이 많이 약화 됐어요. 그 예가 예전에는 마을에 농기구 하나가 있으면 돌아가며 같이 썼는데, 지금은 아무리 비싸도 한 가구당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개인의 소유물이 된 지 오래예요.” 라며 집집마다 문을 열어 빌려 쓰고 돌려주는 나눔의 문화, 진정한 의미의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사라졌음을 안타까워했다.
“농민 자살 문제도 심각해요. 사람들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는 일도 빈번했고 이혼한 가정도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이 있죠.” 유 권사는 그들의 문제를 가만히 들어 보니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회복 되는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마음의 문제였어요. 마음에 진정한 의미의 여유와 평화가 없으니까 약을 먹어도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유 권사는 ‘예예동산에 와서 변화된 사람’ 하면 미셸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예예동산에 오기 전에는 명품치장을 취미로 살던 여자였다.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자기밖에 몰랐던 미셸에 대해 유 권사는 “처음에 말도 못했죠. 화장지는 왜 이런 거 쓰냐며 불평만 했어요. 자기 것만 추구했던 삶의 방식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없었던 거예요. 자신의 문제를 누구한테 쏟아 낼 데가 없다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였는데 말이죠.”라고 말하며 예전 일을 떠올렸다.
“아침은 준비해 주되 서로 약속하고 당번을 정해 빨래, 청소 등은 스스로 하도록 삶 속에서 훈련시켰어요. 좀 급하고 어려울 때는 도움을 요청하라고 미리 말을 해 주었죠.고요한 이곳에서는 일을 끝내놓으면 나머지 시간이 많이 생겨요. 그때는 성경을 영어로 쓰라고 했죠.” 영어로 성경을 쓰며 생활속의 훈련을 경험한 미셸은 5개월이 지난 후 확연히 달라졌고 예전에 만나던 친구들도 그녀의 달라진 얼굴을 보고 놀라워 했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 것만 챙기던 사람이 예예동산을 떠나기 전에는 다 나눠주고 돌아갔어요. 그런데도 예수님 때문에 마음이 기쁘다고 했어요. 지금은 같이 살던 동네 친구도 전도해서 예수님 믿게 됐다는 소식도 들려와요.” 이 이야기를 하는 내내 유권사의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들 부부는 섬김과 나눔이 있는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일들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고 있다. 예예동산에 들어오면 신발장 왼쪽에 옷과 앞치마가 있고 양말까지 준비되어 있다.주민들이 밭일하다 갈아 신고 싶으면 마음껏 갈아 신도록 준비해 두었다.또 수채화가인 유 권사는 9명의 마을 아이들을 모아 그림을 가르치며 전인적인 공동체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편지에는 ‘미술학원에 가는 것보다 예예동산에 오는 것이 훨씬 재미있어요.’라고 적혀있다. 예예동산에 와서 ‘진짜 즐거움’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 매일 아침, 성경통독을 하는 권태환, 유명애 부부 ©뉴스파워 강은혜 | | '예예동산'에서는 매일 새벽 6시가 되면 찬송을 부르고 성경통독을 한다. 유 권사는 생활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며 “10명이 같이 살고 싶어요. 일하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성경읽기도 함께하는 거죠. 성경을 읽으면서 삶의 문제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복음이 전해질 거예요.”라고 예예동산의 비전을 나눴다.
동산 바로 뒤에는 밭이 있다. 늘 먹을 것이 풍부해서 20명의 손님이 와도 거뜬하다는 유 권사 부부는 “요새는 교회 안에서도 나눔 보다 챙기기에 바쁜 게 현실이에요. 교회에서 떡을 돌리면 분명히 남아야 되는 음식이 중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 나눔의 의미가 퇴색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라고 말한다.
권 교수는 경험을 나누며 “아이들이 종종 '예예동산'에 오면 이거 먹어도 되냐고 물어봐요. 솔직하게 말하고 함께 먹고 나누는 거예요.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공동체 훈련이 되면서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배우는 거죠.”라고 말한다. 권 교슈는 또 “빈부격차 문제도 사회보다 교회가 더 심해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일 안 되고 있는 게 한국 교회예요. 목사님들이 은퇴하면 시골 교회에 가서 봉사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야 해요.”라며 생활공동체를 향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 유명애 권사 "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같이 도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를 공유해요." © 뉴스파워 강은혜 | | 그 말에 유 권사도 “그렇지 못하면 젊은 목사들 시골교회로 파송을 좀 시켜줘서 한 달에 한 번은 십일조라도 시골교회에 드리도록 해야 해요. 주위에 어려운 교회 목사님들 많은데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시골에 있는 교회들을 돌보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진정한 공동체성이 전해져야 할 곳은 바로 시골에서부터예요.”라며 거들었다.
“예수원이 수도공동체라면 '예예동산'은 생활공동체가 목표예요.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공동체의 시작이에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같이 도우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위로를 공유하는 거죠.” 예예동산은 삶을 예술처럼 살 수 있는 친구들이 함께 모여 천국 가는 그날까지 기쁨으로 주를 찬양하고, 피곤하고 지친 이웃들이 찾아와 쉬는,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쉼의 동산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