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자는 아버지를 추억할 수 없다. 유복자로 태어나지 않은 대개의 시인들은, 생애의 어느 시점에 이르러 아버지를 노래하고 싶어한다. 다름아니라, 아버지를 저승으로 떠나보낸 직후에. 한 편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아버지에 대한 연작시를 쓴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수십 년 동안 애창되어온 가요의 제목 그대로, 자신의 불효를 자책하면서 시인들은 몇 편의 시로써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한다. 나는 공교롭게도 몇 년 전부터 한 해에 한 권씩 ‘아버지’를 제목의 일부로 삼거나, 아버지를 추억하며 쓴 연작시가 들어 있는 시집을 읽어왔다. 왜 시인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집중적인 탐구를 시도한 것일까. 유교적인 전통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서일까, 농경사회의 가부장제 유습 때문일까. 혹은 가족공동체에 대한 집착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워낙 각별했던 부자지간, 부녀지간이어서 그럴까. 어쨌든 ‘아버지’라는 존재는 시인 개개인의 가슴속에 크나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상호는 1996년에 『그리운 아버지』(책만드는집)를, 박서혜는 1997년에 『하늘의 집』(문학세계사)을 펴냈다. 『하늘의 집』의 연작시 <하늘의 집> 18편은 모두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은 시편이다. 김주혜는 1998년에 『아버지별』(문학세계사)을, 신달자는 1999년에 『아버지의 빛』(문학세계사)을 펴냈다. 이 가운데 세 권의 시집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것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세 권의 시집 제목에 ‘아버지’가 들어 있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모두 아버지를 여의고 난 이후에 낸 시집이며, 아버지를 소재로 연작시를 썼다는 것도 우리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김주혜의 시집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아버지를 소재로 하여 씌어진 이 시대의 수많은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김주혜의 『아버지별』은 제4부의 시 18편이 모두 <아버지별>을 제목으로 삼고 각기 다른 부제를 달아서 쓴 연작시이다. 이 시인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사무치는, 복받치는 감정을 시를 씀으로써 다스려본 듯하다.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 <아버지별 2ㅡ기도>에서의 아버지는 하느님 아버지이지만 다른 모든 <아버지별>에서 아버지는 육친이다.
저승밥 한 술 떠 굳은 입 속으로 털어넣으며 눈 감기고 귀 막고 나무못 쾅쾅 치고 징소리로 떠나보낸 별 오늘도 나는 그 별의 그림자를 찾아 떠난다 ㅡ<아버지별 1ㅡ물> 부분
왜 “징소리로 떠나보낸 별”이냐 하면, 시인의 아버지, 아니 시적 화자의 아버지는 소리꾼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소리판을 찾아 산하를 떠돌았던 것 외에도 웬 여자와 정분이 나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더니,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소리꾼을 아버지로 둔 딸자식의 애증의 수십 년 세월이 담겨 있는 시 몇 편은 뭇 독자를 감동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북이 불러들이던 온 산하, 소나무의 향기, 불타는 바위 산의 환희, 온몸이 따로 노는 듯한 그 황홀함의 노래, 고음으로 칠수록 더욱 고요해지고 빠르게 가라앉을수록 가슴 밑바닥에 고인 찌꺼기들을 끌어올리던 그 붉은 울음을 나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북은 아버지의 전부였다. ㅡ<아버지별 3ㅡ북> 부분
이 시를 보면 아버지는 소리만 한 것이 아니라 고수(鼓手)를 겸했던 것도 같다. ‘1 고수 2 명창’인데,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다. 아무튼 아버지는 바람둥이에 한량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내 아버지는 늘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녀와 관계를 가지면서 자연적인 그녀의 얼굴에 점령되어 아버지 자신도 그녀를 닮아가고 있었다. 내 어머니는 비처럼 밤을 향해 꽂혀 그 공허함을 달래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 아버지가 보기 좋았다. 그럴 때 아버지는 낯선 사람 같았으나 그 얼굴에서 험하지 않은 산을 볼 수 있었고, 풍랑 없는 바다를 볼 수 있었다. (…) 아버지의 산과 바다가 허물어지고 말라붙기 시작하자 야수적인 도시의 발톱이 아버지를 이리저리 거대한 급류 속으로 밀어 넣었다. 드디어 아버지가 마지막 소리를 뿌려야 할 그 순간,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에 의해 감추어진 아버지의 마지막 언어를 나는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얼굴 전면에서 흘러나오는 아우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ㅡ<아버지별 4ㅡ목각인형> 부분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에 ‘그녀’가 늘 함께 있었다. 아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아버지 방 안 가득 쌓인 목각인형(그녀의 물건들)을 모두 치워버렸고, 목각인형(그녀)은 한없이 어깨를 들먹이며 떠났으며, 그 후 아버지는 늘 석양에 들어오셨다. 그녀를 떠나보낸 후 아버지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방황의 나날을 보냈던 모양이고(“야수적인 도시의 발톱이 아버지를 이리저리 거대한 급류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나이 들어 겪은 산전수전(“아버지의 산과 바다가 허물어지고 말라붙기 시작하자”)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병이 들어 몸져눕게 되었다. “마지막 소리를 뿌려야 할 그 순간”, 즉 임종이 가까워진 어느 순간, 그녀가 돌아옴으로써 시는 극적인 반전의 순간을 맞이한다. “얼굴 전면에서 흘러나오는 아우성”이 의미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 얼굴로 소리쳐 부른 노래는 판소리가 아니었을까. 노래가 아니었다면 통곡이었으리라. 이 시에는 이렇듯 몇 사람의 생애가 담겨 있으며, 애증의 드라마가 들어 있다. 시가 지나치게 산문조 내지는 설명조여서 읽어나가는 동안 시다운 맛을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야기 시’의 모범적인 작품으로 평가할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아버지별> 연작시 가운데 최고의 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다섯 번째 시이다.
그는 평생을 소리소리 지르며 살았다. 살잽이꽃 한 장 한 장 발뒤꿈치 밑에 깔고 으흐흥 으흥 으흥 흥타령으로 목청을 턴다. 결발부부 수십 년에 산 첩첩, 주름살 첩첩, 장지문에 들기름 쩔 듯 목구멍에 배인 육자배기, 칵, 가래 올리는 일갈로 휘몰이, 잦은몰이, 시원시원 넘어간다. 70평생 따라다닌 두두두두우 그 눔의 북소리가 웬수로다. 시절이 하 분분하니 일모청산 하직하고 눈 질끈 감고 떠나버릴 텐데,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관 속에 들었건만 나는 못 잊겠네. 푸너리 장단이 메너리조로 바뀌고, 괭매, 괭매, 괭매 삘리리리이…… 산 설고 물 설은 이곳이 어드메냐. 궁글채 손에 들고 진양조로 넘어간다. 오매오매 우리 오매 불쌍한 우리 오매 알토란같은 처자식 놔두고 나 혼자 어찌 가란 말이오. 으흥 으흥 으흐흥…… 소리소리 구절마다 가지색 살잽이꽃이 이슬에 젖은 눈가로 오슬오슬 가라앉는다. ㅡ<아버지별 5ㅡ살잽이꽃> 전문
이 시의 특장(特長)은 의성어와 의태어, 구어체와 사투리가 적절히 환기하는 토속적인 분위기일 수 있다. 흥타령, 육자배기, 판소리 가락이 넘나들어 시의 운율이 충분히 살아 있는 것도 특장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시적 화자의 아버지인 ‘그’가 시의 중반에 접어들어 화자 ‘나’로 탈바꿈한 사실에 더욱 주목하고 싶다. 첫 문장 “그는 평생을 소리소리 지르며 살았다”로 미루어보건대 소리꾼 아버지를 둔 내가 한 명 관찰자로서 아버지의 생애를 돌이켜보면서 시가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시의 중반에 이르러 ‘그’는 ‘내’가 되어 있다. 그것도 관 속에 든 시신의 존재로. 시신의 몸에서 분리된 혼은 저승길로 가면서도 소리를 한다. “오매오매 우리 오매 불쌍한 우리 오매 알토란같은 처자식 놔두고 나 혼자 어찌 가란 말이오.”는 판소리의 한 대목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혼이 목을 놓아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혼은 자신의 어머니를 외쳐 부르며 처자식과의 이별을 못내 서러워한다. 살아생전에 제대로 못 보살핀 처자식이라 회한이 많아 혼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리라. <아버지별 7―일기>의 내용을 사실 그대로라고 간주한다면 자식은 모두 아홉이었다(“아들 하나 낳아 잃고/딸 아홉 눈 한번 찡그리지 않고 키웠소”). 아내와 아홉 자식을 혹처럼 생각하고는 소리판을 찾아다닌 70년 생애였으니 회한이 없을 리 없는 것이다. 마지막 대목, “이슬 젖은 눈가”의 주인공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니라 숨은 시적 화자인 자식이 아닐까. “두두두두우 그 눔의 북소리”에 홀려 산하를 떠돈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해 가지색 살잽이꽃이 이슬에 젖은 자식의 눈가로 오슬오슬 가라앉는 것이 아닐까. 연작시 일곱 번째부터 열한 번째까지는 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겨서 쓴 시이다. 열세 번째부터 열여섯 번째까지에서는 할머니와 어머니, 삼촌과 숙모 등을 등장시켜 스산하기 짝이 없었던 가족사의 일부를 들려준다. 이런 시들도 다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지만 보다 더 주목을 요하는 것은 아버지의 와병에서 임종까지의 과정을 묘사한 시와, 연작시의 마지막 작품이다.
아버지는 온몸의 피를 다 쏟으시려나 보다. 유리병 속의 노란 수액들이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는 동안 나는 웃고 있었다. 어떻게 살 수 있겠니. 괜찮아요. 나쁜 피는 다 쏟아야 한 대요. 순하게도 내 말을 믿으시는 아버지의 위 속으로 얼음물을 연신 넣으며 출혈이 멈추기를 기다린 나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고, 차츰 아버지의 동공은 열리고 있었다. ㅡ<아버지별 6ㅡ꽃눈> 부분
무슨 병인지 아버지는 피를 계속해서 쏟으며 죽어갔다. 고통의 극한지점에 선 아버지는 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요청하고, 딸은 의사가 물을 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면서 매몰차게 거절한다. “5월 꽃눈 내리는 날, 아버지는 물 한 모금 주지 않는 나를 원망하며 하얗게 가셨다”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는 김주혜 시인이 18편의 <아버지별> 연작시를 쓰고 시집의 제목을 ‘아버지별’로 삼은 이유가 밝혀져 있다. 아버지의 임종을 그런 식으로 지킬 수밖에 없었던 자책감이 여섯 번째 <아버지별>을 쓰게 했을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이런저런 상념을 전개하던 시인은 마지막 18번의 시에 가서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 그 자체, 즉 만인의 아버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본다.
저 산이, 나무가 쓰러질 듯 기울고 있다 그러나 보아라 소나무 잣나무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들이 모진 비바람, 끈질긴 시달림에도 성처난 손과 손 짓무른 어깨와 어깨를 껴안으며 산비탈 바위너럭에서 단단히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것을. ㅡ<아버지별 18ㅡ뿌리> 부분
아버지를 표상하는 산과 나무가 쓰러질 듯 기울고 있을지라도 그의 아들, 그리고 아들의 아들들이 모진 비바람이 불어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비탈 바위너럭(바위너럭은 ‘바위너설’이나 ‘너럭바위’의 오기인 듯)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나이가 들어 죽는 순서를 밟게 될지라도 자식을 뿌린 것으로 모든 아버지는 일차적인 소임을 다한 바, 그의 2세들이 이 세상의 한 귀퉁이에 뿌리를 내려 세상의 일부를 튼튼히 떠받칠 것이라고 시인은 은유적으로 말한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의는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 자체에 있다는 세대교체론을 시인은 연작시 18편의 결론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땅 속으로 뿌리는 내려 생장하는 존재인 나무에 빗대어 아버지를 노래하되, 밤의 길손 내지는 후손을 인도하는 별이 되었다는 설정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가 존재함으로써 자식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것이며, 아버지가 되어야 내 오랜 고뇌의 진원지였던 아버지의 고뇌를 조금은 알게 되지 않는가.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버지의 어머니를 사랑했기에 생겨난 나라는 존재, 세상의 모든 숨쉬는 존재는 아버지 없이 생겨날 수가 없다. 김주혜의 아버지 추도 시편이 독자의 뇌리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대교체에 대한 나름의 상상력이 적절한 시적 형상화에 힘입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대상으로 하여 시를 쓸 때 못다 한 효도에 대한 자책감이 시를 쓴 동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아버지’라는 한 인간의 됨됨이를 그리는 데는 방해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를 소재로 했으면서도 그가 살았던 그 시대의 면면과 집안의 분위기, 아버지로 인한 성장기의 갈등, 아버지의 계급적인 환경, 또 아버지의 인간적인 풍모와 품성 같은 것이 간과되는 경우도 있다. ‘훌륭했던 분’, ‘나를 지극히 사랑했던 분’이 사실이었다 할지라도 애도의 감정이 지나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화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앞 세대 아버지들이 과연 그렇게 훌륭하기만 했던가? 아버지가 초월의 대상이나 극복의 대상이었을 때, 그 시는 오히려 더욱 현실감 있게 우리에게 와 닿지 않을까. 내가 그린 아버지가 나의 친아버지든 그렇지 않든 이 땅의 한 못난 인간이었을 때, 독자의 느낌은 일반적인 애도의 차원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슬픔에 잠겨 있는데 독자는 도무지 시인의 감정에 동화되지 않을 때, 그 시는 성공작이 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시가 몇 편 있다. 문인수의 <풀뽑기>, 홍신선의 <치매>, 신경림의 <아버지의 그늘> 같은 시들. 문인수와 홍신선의 시에 나오는 아버지는 치매 환자로서 자식에게 엄청난 무게의 짐을, 그것도 아주 여러 해 지운다. 신경림은 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를 증오하며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늘> 부분
시인의 말 그대로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는 시적 화자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지난 시대 우리 아버지의 한 일반적인 초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싶다. 천하의 바람둥이, 노름꾼, 생활무능력자, 폭력가장, 그도 아니면 사상 바람에 휩쓸려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이 땅의 아버지들. 소설작품에서도 헤아릴 수도 없이 만나게 되는 그런 못난 아버지들을 시작품에서는 왜 만나기가 어려웠을까. 왜 시인들은 아버지를 가난한 농투성이(이성복의 <꽃 피는 아버지>, 김용택의 <논>)와 어부(나해철의 <榮山浦 9>), 또는 광부(신진의 <아버지, 바람이 되어>)로 그리고 싶어했을까. 혹은 왜 자애로운 어르신네(김광규의 <나의 자식들에게>, 정대구의 <아버지>)와 시대의 희생양(배창환의 <아버지>, 박덕규의 <깊은 산 아버지>)로 그리고 싶어했을까. 다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지만, 다소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마도 시인들이 자신의 체험에 너무 강하게 포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가 시인의 실제 체험의 산물이든 추체험의 산물이든 상상력의 산물이든 중요한 것은 ‘감동의 정도’에 있다.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모는 도무지 드러나 있지 않는 반면, 그분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추모의 정만이 시의 문맥에 확연히 드러나 있을 때, 공감과 감동의 진폭은 그만큼 약해지게 마련인 것이다. ‘효도’가 우리 사회의 커다란 미덕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유교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가족주의의 허상을 깨뜨리는 시가 있다면 혹자는 더 친밀한 아버지상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아버지의 위상은 지난날과 분명히 달라져 있다. 보험금을 탈 욕심으로 자식의 손가락을 가위로 자른 아버지가 다 있고, 바람을 피운 아내에 대한 복수심으로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아버지까지 나타나는 것이 오늘의 슬픈 세태요, 이 시대의 일그러진 아버지 상이다. 아버지의 권위는 온데간데없으며, 명예퇴직이다 퇴출이다 하여 경제 한파에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는 아버지는 부지기수이다. 당대적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문학일진대, 지금은 새로운 아버지 상을 정립해보는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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