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의 의미는 다른 이들에게 그렇듯 내게도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인식되어졌다,
철저하게 반대로 각인되었다.
저 세상에서 철저하게 아무것도 없었다.
수많은 행성들 가운데 하나,
머리부터 발끝 사이 어딘가에 나는 존재했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어떤 건지 기억조차 못하는 채로.
오, 이곳에서 내가 만난 사람이여, 이곳에서 내가 사랑한 사람이여,
그대의 어깨에 손을 엊은 채 나는 막연히 상상해 본다.
이곳에서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
저곳에서 얼마나 많은 공허를 감내해야 했을지.
이곳에서 귀뚜라미 한 마리가 미약한 울음소리를 내기 위해
저곳에서 얼마나 오랜 적막이 이어졌을지.
이곳에서 괭이밥나무가 작은 잎사귀 하나를 피우기 위해
저곳에서 얼마나 황량한 황무지가 펼쳐졌을지.
한 줄기 햇살은 암흑에 대한 보상이고.
한 방울의 이슬은 기나긴 가뭄의 대가이거늘!
우리의 삶은 늘 별처럼 운명에 맡겨져 있으니
이곳에서 그것은 항상 예상을 빗나가고, 기대를 뒤엎는다!
울퉁불퉁한 형태와 거친 표면, 복잡한 움직임. 무거운 체중을 비껴간다!
끝없이 광활한 하늘에는 무한한 휴식.
휘청대는 자작나무처럼 형태를 이루지 못한 비정형의 공간에는 안도의 한숨이 가득!
바람은 지금 구름을 움직이거나, 아니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 이곳에 바람이 불면, 저곳에는 불지 않기에.
증인들이 입는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쇠똥구리가 오솔길에 나타났다.
짧은 생을 위해 오랜 시간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걸 증명해보이기 위해.
어찌어찌하다 보니, 나는 지금 네 곁에 서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무엇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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