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가능성들
바슬라바 쉼보르스카
영화를 더 좋아한다.
강가의 떡갈나무들을 더 좋아한다.
인류를 사랑하는 자신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자신을 더 좋아한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고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것을 비난하는 것이 곧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예외를 더 좋아한다.
일찍 떠나기를 더 좋아한다.
의사와 다른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한다.
세밀한 선으로 그린 오래된 그림을 더 좋아한다.
시를 쓰지 않을 때의 어리석음보다
시를 쓸 때의 어리석음을 더 좋아한다.
해마다 맞이하는 특별한 기념일이 아닌
사랑의 모든 날들을 기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지만
도덕적인 사람을 더 좋아한다.
너무 쉽게 믿는 친절보다
사려 깊은 친절을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하는 나라를 더 좋아한다.
약간 주저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질서 잡힌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 1면보다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들을 더 좋아한다.
꼬리의 일부를 잘라 내지 않은 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기 때문에 옅은 색 눈을 더 좋아한다.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말한 많은 것들보다
여기에 말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더 좋아한다.
별들의 시간보다 벌레들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더 오래, 그리고 언제라고 묻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모든 존재가 그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갖고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을 더 좋아한다.
류시화가 엮은 시모음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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