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남편의 국화꽃

주혜1 2009. 9. 9. 08:23

1.남편의 국화꽃  

퇴근길에 남편이 불쑥 노란 국화다발을 내밀었습니다.

"웬 꽃이래? 생일도 아닌데."
"당신한테 주는 가을 편지야."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아무 이름도 붙지 않은 날
꽃을 선물한 건 난생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꽃병에 꽃을 꽂아두자 남편도 흐뭇해했습니다.


"그렇게 좋아? 이거 단돈 천 원으로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걸 몰랐는걸?"


다음 날 퇴근길에 남편은 또 꽃을 내밀었습니다.
문제는 그 후에 생겼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퇴근하는 남편의 손엔
국화다발이 들려 있었습니다.

집안이 온통 꽃밭으로 변했고
꽃을 둘 마땅한 장소를 찾는데
점점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됐습니다.


물병에 담아 신발장에 국화꽃을 올려 놓기도 했지만


이젠 온집이 국화꽃 천지였습니다.


"어우, 이젠 사양해.
꽃이 너무 많으니까 둘 데도 없잖아요".

혹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기분에 취해서 꽃을 사거나
아님 꽃집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매일 들르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오늘도 꽃을 사 오면 꼭 따져봐야지 하고
잔뜩 벼르던 날 남편은 다행히 꽃을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핀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자, 이거."
세상에! 꽃 대신 속옷에 넣는 고무줄과 옷핀 좀약을
잔뜩 사들고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남편의 그 이상한
사들이기는 계속됐습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물었습니다.
"대체 왜 그래요 당신. 왜 자꾸 이런 걸 사 날라?"
잠시 머뭇거리던 남편이 머리를 긁적이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그게 말야."
얼마 전부터 회사 앞 골목에 웬 할머니가
어린 손녀를 데리고 나와 장사를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국화꽃을 팔더니 사흘 전부턴
목판에 고무줄 옷핀 같은 걸 늘어놓고 판다고 했습니다.

"너무 딱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

나는 말없이 남편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거칠고 주름져가지만 아직 따뜻한 손.

"미안해, 당신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애쓰는데"
"아니야 여보,
그 할머니가 장사를 하는 동안은 매일 하나씩 사 와."

"그러다 집안에 고물상 차리게? 허허..."
남편의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 쓰자구요. 옷핀도 고무줄도 다 쓸 때까지 쓰다가
다 못쓰면 그땐 팔자구요.
그럼 당신같이 맘씨 고운 사람이 또 사줄 거 아니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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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둔감(鈍感) 재능

명의로 소문 난 일본의 한 대학병원 의사는 제자에게 무척 엄하고 까다로웠다.
제자들은 ‘손이 늦다’ ‘한눈판다’고 강하게 질책하는 스승 앞에서 주눅부터 들었다.
유독 한 학생만 달랐다. 그저 ‘예, 예’ 대답하며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 대신 실력을 쌓는 일에만 열중했다.
나중에 그는 스승의 수술 노하우를 온전히 전수받은 유일한 제자가 됐다.
일본 작가이자 의사인 와타나베 준이치는 새 책 ‘둔감력(鈍感力)’에서

이런 ‘지혜로운 둔감’을 예찬했다.

일반적으로 예민함이 선호되지만 실제 생활에선 둔감함이 더 쓸모가 있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이다.

‘감정이나 감각이 무디다’는 뜻의 둔감함은 단점이 아니라 ‘힘’이라는 것이다.
잠자리가 바뀌어도 코까지 골며 잘 자는 사람,
나쁜 일은 바로 잊어버리고 윗사람의 질책이나 배우자의 잔소리는

잘 흘려버리는 사람…. 이런 유형이 ‘둔감재능’의 소유자다.
게으름과는 다르다.
자신의 에너지를 주변 사람이나 환경 같은 ‘밖’을 향해 사용하기보다
‘안’으로 모아 능력을 극대화하라는 주문이다.

둔감력은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별 흔들림이 없는 사람의 혈관은

늘 확장돼 있어 피가 잘 돈다고 한다.
장(腸)이 둔감하면 조금 상한 음식을 먹어도 탈이 덜 난다.
시각 청각 등이 너무 예민하면 이들 감각기관의 노화가

 더 빠르게 찾아온다는 학설도 있다.
치명적인 암(癌)도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면 치유 확률이 높아진다.

배우자 동료 등 인간관계에서도 완벽을 추구하면

서로 부담이 커져 유리병처럼 깨지기 쉽다.
나이 든 부부의 해로(偕老)도 둔감력에 비결이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상대에게 둔해지면 반대로 아량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심(無心)의 힘’을 강조한 책 ‘둔감력’은 일본에서 올 상반기에만

100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외부의 눈총, 조롱, 질투, 빈정거림에 일일이 반응하기보다는
자기 나름의 중심을 갖고 질기게 살라는 충고가 내게도 벌써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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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돌을 치운 사람 


어느 임금님이 백성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어서

밤중에 몰래 길바닥에 커다란 돌 한 개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갔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돌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아침부터 재수 없게 돌이 길을 가로막다니!”하고


화를 내며 옆으로 피해서 갔습니다.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도


“누가 이 큰 돌을 길 한복판에 들어다 놨지?”하고 투덜대며 지나갔습니다.


뒤이어 온 젊은이는 돌을 힐끔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얼마 뒤에, 한 농부가 수레를 끌고 지나게 되었습니다.


돌 앞에 걸음을 멈춘 농부는


“이렇게 큰 돌이 길 한복판에 놓여 있으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을 겪겠어.”하며 길가로 치웠습니다.


그런데 돌이 놓여 있던 자리에, 돈이 든 주머니와 편지가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이 돈은 돌을 치운 분의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임금님이 써 놓은 것입니다.


농부처럼 남의 불편을 먼저 헤아리고,


덜어주려고 하면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임금님이 보상 안 해 주시면 누군가 가 보상해 주실 것이다.

 

                                    4. 사형수와 딸

 

 

어느 사형수가

어린 딸의 손목을 꼭 쥐고 울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를 혼자 이 세상에 남겨두고

내가 어떻게 죽는단 말이냐"


"아버지... 아버지..."


마지막 면회 시간이 다 되어 간수들에게


떠 밀려 나가면서 울부짖는 소녀의 목소리가

한없이 애처로워 간수들의 가슴을 에어냈다.



소녀의 아버지는

다음날 아침 새벽 종소리가 울리면

그것을 신호로 하여

교수형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소녀는 그 날 저녁에

종치기 노인을 찾아갔다.


"할아버지 내일 아침

새벽종을 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종을 치시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아요"


"할아버지

제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네"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슬피 울었다.

"얘야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만약 내가 종을 안 치면 나까지도 살아

남을 수 가 없단다"

하면서 할아버지도 함께 흐느껴 울었다.

 

마침내

다음 날 새벽이 밝아 왔다.

종지기 노인은 무거운 발 걸음으로

종탑 밑으로 갔다.


그리고 줄을 힘껏 당기기 시작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리 힘차게 종을 당겨 보아도

종이 울리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하여 다시 잡아 당겨도

여전히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그러자

사형집행관이 급히 뛰어왔다.


"노인장 시간이 다 되었는데

왜 종을 울리지 않나요?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기다리고 있지 않소" 하고 독촉을 했다.


그러나 종지기 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글쎄 아무리 종을 당겨도

종이 안 울립니다."

"뭐요? 종이 안 울린다니?

그럴리가 있나요?"


집행관은 자기가 직접

줄을 힘껏 당겨 보았다.

그러나 종은 여전히 울리지 않았다.


"노인장!

어서 빨리 종탑 위로 올라가 봅시다."


두 사람은 계단을 밟아 급히

종탑 위로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종의 추에는 가엾게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소녀 하나가 매달려

자기 몸이 종에 부딪혀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그 날

나라에서는

아버지의 목숨을 대신해서


죽은 이 소녀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여

그 사형수 형벌을 면해 주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어린 딸을 부둥켜 안고

슬피 우는 그 아버지의

처절한 모습은

보는 사람 모두를

함께 울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