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신 영
너무도 긴 여행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를 이유 삼아 나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리움의 깊은 우물 물을 퍼내느라….
이렇게 긴 시간의 기다림의 편지를 이제야 쓰나 봅니다.
세상 사는 일이 빚이라고….
'인연의 빚'이라고 말하던 그대의 음성이 들립니다.
차마 잡지 못하고 삭여야 했던 시간.
그대의 가슴에 하나의 빚으로 남았을 나의 존재가
더는 무거운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이제야 조금은 너른 하늘 아래에서 여백을 틀고 앉았습니다.
그대라는 이름이 내게 이토록 큰 하늘이었나 봅니다.
아직도 남은 그리움의 시간은 이생을 마치고 돌아가는
귀향길에서 덜어질까 싶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과 시간의 틈새에서 그대를 만납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그대의 숨결을 느낍니다.
인연이라는 것은 이토록….
처절하고 가혹한 형벌인지도 모릅니다.
풀지 못할 숙제로 남아 한 생의 울타리에 오르다 지는 넝쿨처럼….
잊을만하면 또 오르고.
이 가을 아픈 가슴앓이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해보지만, 그것도 잘 모를 일입니다.
갑자기 튀어나와 온몸을 마비시키고 마는 그 가을 병의 정체를...
아직 현대의학에서는 고칠 수 없는 병인가 봅니다.
아마도….
가을은 모두가 그립습니다.
내 어머니의 숨결도….
그리운 내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도….
어릴 적 뛰어놀던 소꿉친구들도 그리운 날.
모두가,
이 가을에는 그리움입니다.
낮은 언덕배기에는 가을 햇볕에 타들어 풀이파리 고개 숙이고
청초한 구절초 하나 피어 나를 기다렸지요.
그 홀로 핀 구절초꽃도 그리움입니다.
이 가을.
"그대는 무슨 생각에 젖어 있나요?"
"혹여, 멀리 있는 '당신의 그대' 생각하고 있을까?"
이처럼 아름다운 계절에 그 누군가를 생각할 이 있음은
감사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은 여전히 말간 빛이기 때문입니다.
말간 영혼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에….
열심히 사는 그대가 고맙습니다.
자신을 덜어내는 그대의 삶이 그래서 그리운가 봅니다.
욕심 없이 내어 놓는 그대가.
그대에게 비친 내가 늘 부끄러웠습니다.
달려가 욕심부리고 싶다가도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시간입니다.
가을이면,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과 들녘과 노을이 서성거리는
이 가을이면….
가슴앓이에 몸과 마음이 견디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올가을에는 가을 앓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를 위해 기도를 시작하기로 작정을 했기에...
그대를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한 기도일 겝니다.
욕심을 덜고 싶기에….
이 가을 저 파란 하늘처럼 말간 마음이고 싶습니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맺어진 인연들 모두에게 이 가을이 축복이길….
그렇게 오늘도 기도합니다.
여름내 바쁘다는 핑계를 이유 삼아 잊었던 얼굴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마음의 교감을 시작합니다.
"찌릿찌릿 흐르는 이 전율에 공명할 인연들에…."
이 아름다운 계절에 행복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그대에게도 이 말간 기운을 보냅니다.
이 가을도 행복하소서!
09/21/2008.
하늘.
*사진은, 흰벌님의 사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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