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결혼, 여름

주혜1 2009. 12. 19. 12:17

 

 

결혼. 여름 - 알베르 카뮈

책세상, 2008, 개정 1판 6쇄

 

 

 

결혼

 

티파사에서의 결혼

 

p14

우리는 사랑과 욕정을 만나기 위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우리는 교훈을 찾는 것도 아니요, 위대해지는 데 필요하다는 그 어떤 쓰디쓴 철학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태양과 입맞춤과 야성의 향기 외에는 모든 것이 헛된 것으로 여겨진다.

 

p15

나를 온통 휩싸는 것은 자연과 바다의 저 위대한 무분별의 사랑이다. 폐허와 봄의 결혼 속에서 폐허는 다시금 돌들이 되어, 인간의 손길로 닦여진 저 반드러운 손때를 이제는 다 버리고 자연 속으로 돌아와 있다.

 

p17

나는 전라의 몸이 되어 아직 대지의 정수로 향기가 배어 있는 몸을 풍덩 바닷물에 던져 땅의 정기를 바다에 씻어야 한다. 그리고 그토록 오래 전부터 땅과 바다가 입술과 입술을 마주하고 열망하던 포옹을 나의 피부 위에서 맺어주어야 한다.

 

 

제밀라의 바람

 

p27

내가 이 세상의 모든 '훗날에'를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것은 나의 눈앞에 있는 현재의 풍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죽음 다음에는 또 다른 삶이 온다고 믿는 것이 내게는 즐겁지 않다. 내게 죽음이란 닫혀버린 문과도 같은 것이다. 죽음이란 그저 내딛어야 할 한 발짝 발걸음이 아니라 끔찍하고 추악한 모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p29

항상 놀랍다고 여겨지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세련된 의견이 분분하면서도 죽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매우 빈약하다.

 

p30

죽음에 대한 나의 모든 공포는 삶에 대한 질투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알제의 여름

 

p34

무언가를 배우고 교육을 받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이곳에서 얻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 고장에는 교훈이 없다. 이곳에는 약속받을 것도 없고 엿볼 만한 것도 없다. 이 고장은 베푸는 것, 그것도 아낌없이 다 베푸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사막

 

p53

산다는 것은 물론 표현한다는 것과는 어느 정도 반대되는 것이다. 토스카나파의 대 화가들에 의하면 산다는 것은 침묵과 불꽃과 부동 속에서,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증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p54

화가들은 어떤 미소나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부끄러움, 후회나 기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뼈가 튀어나오고 들어간 모습과 끓는 피의 얼굴을 그린다. 여원 한 선(線)들 속에 딱 고정되어버린 그 얼굴들로부터 화가는 정신의 저주를 영원히 추방해버린 것이다. 희망이라는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육체는 희망과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니까 말이다. 육체가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피의 고동소리뿐, 육체만이 아는 영원은 무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그림 <태형(苔形)>이 그렇다. 이제 금방 깨끗이 청소한 듯한 뜰 안에서 매 맞고 있는 그리스도나 사지의 근육이 무지스러운 형리는 다 같이 그 자태에 있어서 마찬가지로 오불관언의 표정을 엿보게 해준다. 그 까닭은 그 태형에 계속된 뒷 장면이나 순간이 삭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의 교훈은 화폭의 틀 안에서 정지되어 있는 것이다.

 

The Flagellation(1455) - PIERO della FRANCESCA

 

 

 

p61

인생은 '해와 함께 떠올라 해와 함께 져가는 것 col sol levante col sol cadente'

 

p63

지오토가 그린 성 프란체스코 성인의 저 내면적인 미소가 바로 행복에 대한 욕구를 지닌 사람들의 삶을 정당화해준다고 말한다 해도 그것 역시 독신(瀆神)이 될 수는 없다.

  Legend of St Francis (1297-99) - GIOTTO

 

 

p64

지성이 아름다움 속에 몸을 던지면 허무로 식사를 하게 된다.

 

p68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 속에서 부활하여 무덤을 나오는 그리스도의 시선은 인간의 시선이 아니다. 그의 얼굴에 행복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그려져 있지 않다. 보이는 것은 다만 성난 듯 맹렬하고 영혼 따위는 담겨 있지도 않은 어떤 위대함뿐인데 나는 그것이 살려는 결단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자는 백치와 마찬가지로 별로 말이 없는 법이니까. 이 같은 순환현상은 나를 황홀하게 한다.

 

Resurrection(1463-65) - PIERO della FRANCESCA

 

 

 

 

여름

 

미노타우로스 또는 오랑에서 잠시

 

p98

플랑드르의 어떤 거장들의 그림에서는 놀라운 규모의 한 주제가 줄기차게 되풀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벨탑의 건설이 그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풍경들이며 하늘로 기어오르는 바위들, 일꾼들과 짐승들과 사닥다리들과 괴상한 기계들과 밧줄들이 우글거리는 절벽들이다. 더구나 인간은 거기서 공사장의 초인간적인 규모의 크기를 헤아리게 하기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랑 시 서쪽 산마루 위에서 눈길을 던지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The Tower of Babel(1563) - Pieter BRUEGEL the Elder

 

 

 

편도나무들

 

p109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감탄해 마지않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힘으로는 그 무엇의 기초도 마련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힘 있는 것은 둘밖에 없습니다. 칼과 정신이 그것입니다. 결국에 가서 칼은 언제나 정신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하고 나폴레옹은 퐁탄에게 말했다.

 

p111

우리가 비극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인 것과 절망을 혼돈하고 있다. "비극적인 것이란 불행을 향하여 한바탕 크게 내지르는 발길질 같은 것이리라."라고 로렌스는 말했다. 이야말로 건전하고도 당장에 적용할 수 있는 생각이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발길질을 받아 마땅한 것들이 많다.

 

 

명부의 프로메테우스

 

p118

오늘날의 인류는 오로지 기술만을 필요로 하고 오로지 기술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류는 그의 기계들 속에서 반항하며 예술과 예술이 전제로 하는 것을 한갓 장애물로, 속박의 표시로 여긴다. 그와 반대로 프로메테우스의 특징은 그가 기계와 예술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늘의 인간은 정신이 잠정적으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육체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신이란 것이 과연 잠정적으로 죽을 수 있는 것일까?

 

p122

사슬에 묶인 영웅은 신들의 천둥번개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그의 조용한 믿음을 잃지 않고 지니고 있다. 바로 이렇게 하여 그는 그의 바위보다도 더 모질고 그의 독수리보다 더 참을성이 있는 것이다.

 

 

헬레네의 추방

 

p137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의 위협 앞에서, 자기에게는 오직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은 안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단 한 가지 우월성 외에는 그 어떤 우월성도 없다고 말했다.

 

p141

우리들에게는 다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 자존심이란 바로 제 한계에 대한 충실함이요, 제가 타고난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력 있는 사랑이다.

 

p142

스스로 인정하는 무지, 광신의 거부, 세계와 태두리짓는 한계, 사랑받는 얼굴, 그리고 끝으로 아름다움, 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 사람들과 한데 어울리게 되는 우리의 진영이다.

 

 

수수께끼

 

p146

나는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에다가 이름을 붙여보았다가 앞서 한 말을 취소도 하고 했던 말을 되풀이하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물러서곤 한다. 그런데 남들은 나보고 결정적인 이름들을, 아니 단 하나의 이름을 대라고 오금을 박는다. 그러면 나는 불끈하여 대든다. 이름 붙여진 것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해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이런 것이다.

 

p153

우리가 실제로 무엇이며 마땅히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만으로도 우리의 삶을 채우고 우리의 노력을 다 바치기에 충분하다.

 

 

티파사에 돌아오다

 

p158

저녁이 되어 몸을 들여놓고 쉴까 하여 찾아드는 요란한 불빛의 카페들에서 나는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낯이 익은 얼굴들에서 내 나이를 읽어내곤 했다. 나는 다만 그 사람들이 나와 함께 젊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젊지 않다는 것을 알 뿐이다.

 

p165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그저 운이 없는 것이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니까 말이다.

 

p167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 하면 모멸당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해내기가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나는 절대로 그 어느 한쪽에 불충실하고 싶지는 않다.

 

 

가장 가까운 바다

 

p175

서로 사랑하면서 헤어진 자들은 고통 속에서 살지 모르나 그것이 절망은 아니다.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눈에 눈물 없이 이 귀양살이를 참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기다린다. 어느 날이 와서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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