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새
김주혜
초하루, 보름이면 할머니는 장독간에서 정한수 떠놓고 치성을 드렸습니다. 사악사악 손바닥 비비는 소리와 자근자근 고하는 할머니의 간원이 장독대에 햇살처럼 쩔어 있을 무렵이면 영락없이 굴뚝새가 나를 깨웠습니다. 숨소리가 늘 가빴던 내 가슴을 쓸어주시던 할머니의 손바닥은 따뜻한 약손이었습니다. 동짓달 스무하루, 그 날은 낮게 울던 굴뚝새가 요란하게 나를 깨웠습니다. 꼬부라진 할머니 등 너머로 사물들이 이름을 달기도 전에 장독대는 온통 하얀 상여꽃으로 덮여 있었고, 할머니는 그 꽃속으로 반쯤 들어가 있었습니다. 숨이 막혀버린 나는 고목껍질 같은 할머니 손을 붙잡고 ‘할머니 손은 약손, 할머니 손은 약손’ 하며 굴뚝새처럼 울었습니다.
두 통
김 주 혜
내 어릴 적 할머니는 머리가 아프면 장항아리마다 뚜껑을 열어보곤 하셨습니다. 집안 어느 곳에서든 곰팡이가 슬거나 장에 *가시가 생기면 그 집안의 *대주大主가 아픈 거라시며 광이며, 지하실 뒷마당 구석구석까지 유리알처럼 닦으셨습니다. 지금의 나 역시 머리가 아픈 날이면 집안 속속들이 살펴보며 돌아다닙니다. 요즘 나는 곳곳에서 썩는 냄새를 맡습니다. 강산이 썩고, 바다가 썩고, 거리가 썩고, 불신과 미움은 내 안에 들어와 두엄더미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된장, 고추장 항아리마다 가시를 다 걷어내도 내 머리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 가시: 음식물에 생긴 구더기.
* 대주: 집안의 가장
목각 인형
김 주 혜
내 아버지는 늘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녀와 관계를 가지면서 자연적인 그녀 얼굴에 점령되어 아버지 자신도 그녀를 닮아가고 있었다. 내 어머니는 비처럼 밤을 향해 꽂혀 그 공허함을 달래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 아버지가 보기 좋았다. 그럴 때 아버지는 낯선 사람 같았으나 그 얼굴에서 험하지 않은 산을 볼 수 있었고, 풍랑 없는 바다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가는 그물 사이에 끼어 있던 어머니는 아버지 방안 가득 쌓인 목각인형을 모두 치워 버렸다. 목각인형이 한없이 어깨를 들먹이며 떠나간 후 아버지는 늘 석양에 들어오셨다. 아버지의 산과 바다는 허물어지고 말라붙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거대한 도시의 급류 속에 이리저리 밀리며 마지막 소리를 뿌려야 할 그 순간,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에 의해 감추어진 아버지의 마지막 언어를 나는 어버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얼굴 전면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들을 수 있었다.